상근직 근무같은 규칙성이 있는 수술실 데이 근무
여느 때처럼 알람을 듣고 눈을 뜬다. 데이 듀티 때는 근무표 변동이 적어 몸이 기상 시간을 기억한다. 조금이라도 더 자기 위해서 알람을 최대한 늦춰도, 늦잠에 대한 긴장감에 알람보다 일찍 눈을 뜨는 일이 잦다. 세수, 양치, 간단히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사원증을 챙겨 나선다. 수술실로 들어갈 때에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펜, 네임펜, 사원증, 휴대폰만 들고 들어가기 때문에 출근길 가방도 단촐한 편이다.
운동화를 신는 이유는 등산로 겸 지름길로 출근하기 위해서다. 10분 정도의 시간 단축이 있을 뿐 아니라 아침의 산길은 새소리로 가득해 특히 좋다. 아침의 산길은 서늘하지만 청명하고 쾌적하며, 산뜻한 생기로 가득차있다. 날벌레가 없을 뿐더러 동네의 크고 작은 새들이 노니는 소리가 들린다. 최근에는 딱따구리와 어치(산까치)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출근길에 병원 통로와 수술장 출입구에서 사원증을 찍고 입장한다. 외래 환자가 오기 전, 아침의 병원은 출근길 직원들의 조용한 흥분으로 가득하다. 탈의실에서 수술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수술모자, 수술용 마스크를 끼고 신발을 바꿔 신으며 수술실 제한구역으로 들어 간다. 수술방을 둘러보며 환경 점검 리스트, 장비 점검 리스트에 사인하고 첫 수술에 맞추어 방을 세팅한다. 우리 방의 지혈제와 유착방지제 사용량과 재고량을 비교하고 전체 스케쥴을 살피며 수술에 필요한 진료재료와 기구를 준비한다. 환경 소독 티슈로 무영등, 수술 침대에 튀어있는 소독제와 피를 닦고 자주 만지는 컴퓨터와 수납장, 장비, 메이요 스탠드와 수술 상을 청소한다. 중앙창고와 비멸균 물품 보관실에서 방에 부족한 소모 재료를 가져와 채워넣고, 수술 기구를 정리할 때 쓸 세척카를 가져온다.
수술실 식당에서 과별 컨퍼런스 겸 해 짧은 간식 시간을 가지고, 8시 첫 수술을 위해 방에 들어온다. 과별 의사 선생님, 마취과 선생님이 입구에서 환자를 모시고 오면 수술방에서 수술 전 상태 확인을 한번 더 시행한다. 환자의 이름, 생년월일 혹은 등록번호, 수술 부위, 수술 방법, 욕창과 관련한 피부 상태, 항생제와 반창고 등 기타 알러지 여부를 구두로 확인하고 수술 팀원들과 공유한다. 각종 검사에서 혈액이나 체액 감염, 비말 감염, 접촉 감염 등 감염 주의 환자는 수술방 출입구에 감염 주의 표지를 부착한다. 마취과 의사가 마취를 시작하는 사이 수술실 간호사는 수술상에 멸균포를 깔고 수술재료와 수술 기구를 개봉한다. 수술의 난이도에 따라, 오버타임을 하는 주간에 따라 함께 일하는 선생님 중 누가 먼저 소독간호사가 될 지 정해 손을 씻고 들어간다.
스크럽대에서 머리카락이 빠져나오지 않았는지, 마스크는 제대로 씌여있는지 거울을 보며 확인하고 수술용 손소독제로 손을 씻는다. 스크럽 간호사가 수술상을 차리는 동안 진료과 의사가 환자를 수술 자세에 맞게 체위 변경 시키고 손을 씻고 들어온다. 수술 가운을 입히고, 장갑을 씌우고 환자에게 멸균 수술포를 적용해 수술부위만 노출시킨다. 각종 전기 소작기와 특수 기구에 라인을 연결하고 수술을 위한 준비가 완료되면 타임아웃을 시행한다. 마취과, 진료과, 수술간호사가 환자의 이름과 신상을 확인하고 정확한 수술부위와 수술명을 재인식하며 수술 중 필요한 준비 사항, 주요 특이 사항을 공유한다. 수술용 칼이 환자의 피부를 절개하며 수술은 시작된다.
짧은 수술이면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되고, 긴 수술이면 몇 시간씩 지속되기도 한다. 식사 교대를 위한 오전 출근자가 와서 밥교대를 해주고, 밥과 물을 먹고 다시 돌아와 인계를 받고 일을 시작한다. 예측가능한 평온한 수술 진행이 지속되기도 하지만, 중증도와 난이도가 높은 수술을 주로 하는 대학병원이다보니 수술 중 응급 상황이 생기는 일이 더 잦다. 다른 과 협진 상황이 생겨 진료 재료나 수술 기구, 장비를 빌리기 위해 수술방 사이 인계를 주고 받고, 수술 지원이 지체되지 않도록 뛰어서 가지고 온다. 그러다 보면 이브닝 번이 출근하는 시간이 온다. 인력이 되어 바꿔줄 사람이 있으면 진행하는 수술과 남은 수술에 대해 인계를 준다. 뒷사람이 일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챙겨진 것들을 한번 더 확인하며 도와주고, 데이 번 방장과 액팅은 각자의 역할로 다음날 수술을 준비한다. 다른 방에 넘어간 수술과 관련해 인계를 주고 받고, 다음날 수술 준비를 하고, 전날 사용한 진료재료를 정리한다. 그러면 어느 덧 퇴근시간이다. 같은 과 사람들이 함께 모여 당일 발생한 인계 사항이 있으면 인계받고 탈의실로 향한다. 하지만 수술을 바꿔 줄 사람이 없으면 현재 방의 수술이 끝날 때까지, 다른 방에서 현재 수술을 트레이닝 받은 사람이 바꿔주러 올 때까지 끝없는 잔업이 지속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대화와 상황이 펼쳐진다. 수술하는 의사의 성향에 따라 평온하기도 긴장되며 불편하기도 하다. 환자의 이전 수술력과 현재 목표로 하는 수술 과정에서의 특이도에 따라 업무 난이도에 조금씩은 변주가 있는 편이다. 그래도 데이 근무의 가장 큰 장점은 '예측 가능한 업무량과 규칙성이 주는 안정감'이다. 전날 일정이 확정된 정규 수술을 지원하기 때문에 전날 환자의 의무기록을 살펴 어느 정도로 수술 난이도가 진행될 지 알 수 있다. 타과 수술이 넘어오거나 응급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같은 방 방장-액팅 2명이서 소독간호사와 순회간호사를 번갈아하기 때문에 둘만의 팀웍도 생긴다. 손이 착착 맞으면 수술이 힘들어도 업무가 할만하다고 느껴진다. 서로의 성향과 스타일을 파악해 어떤 동선과 경로로 일을 하면 더 좋아하는지, 어떤 점에 강하고 약하니 서로 신경을 써줘야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할 일이 빼곡하고 휴식 시간 없이 돌아가는 데이 근무지만, 적절한 긴장감과 안정감이 섞인 업무를 좋아하는 성향에 제일 잘 맞는 듀티다. 이브닝처럼 모르는 수술에 순회간호사로 가서 긴장하고 배워가며 힘들어할 일도 적고, 내가 할 수 있는 내 몫의 일만 잘 하면 하루 근무가 끝나기 때문이다. 수술실 간호사는 수선생님과 차지 선생님이 트레이닝을 반영해 배정한 월별 근무표가 있지만, 인력 변동과 휴일과 나이트 근무자, 수술 트레이닝 등으로 크고 작게 변화한다. 근무 듀티에 대한 선택 권한이 없기에, 나에게 잘 맞는 듀티가 있는 달은 그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