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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병원 구성원

내가 다니는 병원에서 '환자 경험'을 한다는 것


예전에 부인과 외래 진료를 보고 나서 속수무책으로 속상하다 느낀 때가 있었다. 교수님 진료 전 초음파실에 다녀왔었다. 전공의 선생님이 초음파로 자궁과 난소를 사진찍고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보시면서 사이즈 표시하고 꽤 오랜 시간 마킹하시길래, 무언가 이상 증상이 있나 싶었다. 그런데 초음파실에서 촬영하면서도 아무 설명도 없었는데, 다시 돌아간 교수님 진료실에서도 아무 설명이 없다. 교수님은 의무기록을 보시면서 "괜찮네요. 내년에 다시 추적관찰합시다. 안녕히 가세요."가 끝이었다.


무언가 찜찜하게 생각해 내 환자등록번호를 검색해 의무기록을 살펴보니 초음파 사진과 함께 전공의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교수님 말처럼 완전히 괜찮은 것은 아니었고, 당장에 치료를 요할 정도의 사이즈가 아니고 추후 관찰이 필요한 자궁내막 폴립과 낭종이 적혀있었다. 물론 생리 주기에 따라 자궁과 난소 양상이 계속해서 달라지므로 추적관찰할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렇게 아무런 설명도 안 해주고 괜찮다는 말로 안심시키기만 하는 게 옳은가? 의무기록을 확인한 이후로 부족한 설명에 조금 서운했던 게 사실이다. 환자인 나는 어디까지 알아야 내 신체 상태에 대한 정확한 식견을 가지면서도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질병력에 대해 신경쓰는 부분이기도 하고, 성인기 이후로 생리 때마다 통증으로 힘들어하면서 스트레스 받아 더 그랬을 것이다. 당장 취할 수 있는 치료법이 있지도 않은데 일찍부터 스트레스 받는 것도 반갑지는 않으니까.


그 날로부터 반 년 정도 지났다. 어쩌다보니 정규 수술이 일찍 끝나고 산부인과 수술이 넘어와서 처음보는 전공의 선생님과 함께 수술을 진행했다. 집도의인 교수님이 메인 수술 과정을 끝내고 나가시고, 전공의 선생님과 봉합을 하는 시간에 문득 그 때 생각이 나서 슬쩍 여쭤봤다. 선생님이 수술 셋팅하는 동안 잘 모르셔서 수술방 간호사로서 도움을 드리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수술이 끝나고 여유 시간이 있어보여 말문을 열었다. 전공의 선생님께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아무 설명이 없으니 의아했죠. 특이 사항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그러셨는지 이유가 궁금했어요."라며 말씀드렸더니 "아이고,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시간이 좀 있으니 선생님 차트 같이 보면서 설명해드릴게요."라고 하셨다. 처음 만난 내게도 그렇게 마음을 써주시는 게 감사했다. 같이 나의 의무기록을 켜서 확인해봤다. 그랬더니 그 초음파 기록을 작성한 전공의가 그 선생님인 거다. 



‘세상에나, 원내 직원들이지만 이렇게 세상이 좁을 수 있냐고요.’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라 정말 화들짝 놀랐다. 짧은 대화에서 혹시나 비난의 투로 들렸을까 실례한 말이 없나 무척 당황스러웠다.전공의 선생님이 "어머, 이거 제가 했던 초음파네요.하핫."하시면서 사진과 기록을 함께 다시 살펴보셨다. 교수님이 초음파실에 보내는 경우는 꼼꼼하게 보라고 보내시는 경우라며, 그래서 작은 경우도 모두 마킹하고 기록한다고 했다. 그래서 부위별로 사진찍고, 이상이 의심되는 부분에 사이즈 표시하고, 기록에 "환자분께 설명X."까지 적어두었다고. 초음파실에서 초음파를 보면서 의심 부분에 대해 직접 말씀을 안 하시는 경우는, 내가 진료보는 교수님께서 '초음파실 전공의와 교수의 설명이 다르면 환자들이 의심하고 불안해한다.'며 본인 이외의 사람이 설명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인터넷 검색으로 알게 되었 듯이, 자궁내막 폴립은 치료를 요하지 않을 정도의 사이즈였고 생리 양상에 따라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 있어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의미로 교수님이 설명을 안 하신 것 같다고 하셨다. 교수님께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인이 환자 진료에 대해 책임감, 실력을 갖추신 분이니 같은 과의 의사로서 존경하시는 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이때까지 초음파 보면서도 교직원이라고 신경써서 제일 싼 초음파 수가를 매겨주신 거라는 얘기도 해주셨다. 산정이 조금 애매한 부분이라 비싼 초음파를 매길 수도 있지만, 교직원들은 신경써서 싼 수가를 매겨주신다나. 몇 번이나 선생님께 시간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혹시나 나도 모르게 실수한 부분이나 기분나쁜 부분이 있었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전혀 그런 느낌 없었다며 괜찮다고 말씀해주시고, 본인의 할 일을 마치시곤 총총 수술방을 떠나셨다.


얼굴도 모르는 전공의 선생님이기에 여쭈어볼 수도 없었고, 안다고 한들 수술실에서 일하면서 각자 일이 바빠 물어볼 여유도 쉽사리 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오해를 풀 기회가 찾아왔고, 우연 혹은 직감이 대화의 물꼬를 트게 했다. 교수님과 전공의 선생님께서 나쁜 의도가 있어서 한 행동은 하나도 없었을텐데 나는 걱정이 앞서 내 마음대로 짐작하고 멋대로 힘들어했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은 언제 어떤 식으로 얽혀서 서로 상처와 쓰다듬을 주고받을 지 모른다. 그 누구도 함부로 평가하고, 비난하고, 무시할 수 없는 이유를 다시 한번 겸손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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