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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수술실 나이트 근무 이야기 2

나이트 근무, 밥 챙겨먹기의 기술


나이트 근무 때는 도시락을 수령받아먹는다. 우리 병원은 도시락 종류를 선택 가능한데, 빵이나 라면 등이 든 '간편식', 샐러드 한 그릇인 '건강식', 한식 도시락인 '일반식'이 있다. 수술실은 한 달 전에 나이트 근무 예정자들에게 도시락 종류 신청을 받아서 일괄적으로 신청하고, 사원님이나 막내 근무자가 직원 식당에 가서 근무자 도시락을 수령해 가져온다. 정규 수술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응급 수술은 언제 끝나는지에 따라 밥을 먹을 수 있는 날도 있고, 못 먹고 버리거나 집에 가져가는 날도 있다.



데이나 이브닝 번은 식당 운영 시간이 있어서 그 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는다. 나이트는 도시락이라 먹는 시간은 자유로우나, 언제 무슨 응급 수술이 들어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일찍 밥을 먹는 걸 선호한다.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도시락 특성상 몇 시간 전에 미리 만들어졌고, 상하지 않게 냉장 보관하다 보니 맛보다는 '깨어서 움직이기 위해' 먹는다.



아무래도 '야식'을 먹다 보니 소화가 잘 되지는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식사 시간 때문에 새벽 늦게 밥을 먹기도 하는데, 샐러드나 한식 도시락은 아무래도 음식 미관과 맛이 떨어져 간편식을 많이 선택한다. 빵, 컵라면, 계란, 두유, 프로틴 셰이크 등 언제 먹어도 퀄리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가공식품이 그나마 맛이 낫다 보니, 건강한 식단은 먹기 힘들다.



생체 리듬에 역행하다 보니 천천히 조금씩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기 마련이다. 나는 안 먹는 것보다는 먹어야 힘이 나는 편이라서 밥을 먹지만, 새벽에 움직이다 보면 배가 아프거나 가스가 차고 했다. 연달아하는 나이트 근무 마지막 날에는, 거의 소화 능력이 떨어져서 조금만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어쩔 수 없이 소화제를 찾게 된다. 자라오면서 소화제는 거의 먹은 적이 없었는데, 나이트 근무하고 나서부터는 개인 사물함과 집에 소화제는 필수의약품으로 챙겨둔다.



나이트 전후 수면과 그 사이 일상


나이트 퇴근하고 바로 잠들 수 있으면 운이 좋지만, 대부분은 긴장하며 일했기에 각성이 많이 되어 있다. 따뜻하거나 미지근한 물을 마셔주고, 커튼과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 최대한 환경을 어둡게 하고 안대를 낀다. 수술방 전체를 돌아다니기 때문에 발과 다리가 아플 때도 많아 자기 전에 다리를 올리고 마사지를 가볍게 하기도 한다. 정말 피곤해서 깊게 잠들 때도 있고, 주변 세상 돌아가는 소리에 짧게 선잠을 자고 깨기도 한다.



출근 전에는 가볍게 저녁을 먹고 1-2시간쯤 짧은 수면을 취하고 가면 좀 덜 졸리긴 하다. 어차피 깨있어야 할 거, 평소에 잘 못 먹는 카페인 센 커피를 오후에 일부러 마시기도 하고 출근한다.



연달아 있는 나이트 사이에, 퇴근 후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좀 쉬다 보면 어느덧 저녁이 되고 출근시간이 된 느낌이다. 나의 일상을 보살필 에너지 수준이 현저히 낮아져 음식도 간편식이나 배달 음식으로 대충 먹는 경우가 많다.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야간 근무 후는 의욕도 체력도 잘 안 따라주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그냥 자고, 먹고, 쉬면서 소진된 신체의 욕구 충족을 우선으로 삼아주고, 웬만해서는 중요한 개인 일정이나 업무를 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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