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야, 괜찮아

이브닝 근무 중에 다른 방에 가서 순회간호사 교대를 맡았다. 그런데 들어가는 순간, 방이 엉망인 게 한 눈에 보였다. 복강경 수술이 다 끝나고 배를 꿰매고 있는데 거즈 카운트도 못 한 상태였다. 기구 멸균 의뢰 사인지도 같은 게 여러 개 있거나 나오지 않은 기구 사인지가 펼쳐져 있고, 기구 정리는 하나도 안 되어있었다.

수술 스케쥴 이상으로 플랜이 변경되어 힘든 수술을 한 모양이었다. 소독간호사도, 순회간호사도 힘들고 정신 없어 보였다. 순회간호사를 보던 선생님은 우리 과 신규 선생님이었는데, “선생님~ 제가 최대한 정리해본다고 했는데 사인지가 너무 엉망이어서 죄송해요.”라며 당황하고 지친 눈빛으로 인계를 주었다.

어느 정도 아는 수술과 기구들이어서 괜찮다고, 밥이나 맛있게 먹으라고 하고 방에 남아 기구를 정리했다. 단일공 복강경 수술이라 꿰매는 일이 금방이었고, 스크럽 선생님은 오더 수행과 원무 전송도 할 게 많아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며 후다닥 움직였다. 환자 퇴실하고, 다음 수술도 진행하고 전체 수술이 끝난 후 수술실 입구로 나갔다.

남은 수술이 적어서 조금 여유가 있나 싶었는데, 신규는 아니지만 아직 일이 서툰 선생님의 국소 수술하는 걸 백업해서 좀 도와주라고 하셔서 또 수술방에 들어갔다. 서툰 선생님 뿐 아니라, 아까 만났던 우리 과 신규 선생님이 응급 수술 시험 공부를 위해 방에 함께 들어와 있었다.

응급실 경유 환자인데, covid 검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은 채로 급하게 수술을 진행하게 되었다. KF94마스크와 N95마스크를 끼고 환자를 맞는다. 혹시 모를 감염 예방을 위해 수술실 전처치실을 들르지 않고 방에서 수술전 상태확인을 하고, 공조를 음압으로 돌려 수술을 진행하며, 마취회복실에 가지 않고 회복도 방에서 진행하였다. 서툰 선생님께 입구에서 하는 환자 확인을 방에서 할 경우는 어떻게 하는지, 수술 진행이 빠른 국소나 척추 수술에는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지 설명하는데 마스크때문에 자꾸만 숨이 찼다. 수술 때 c-arm을 보며 연속으로 방사선 촬영을 해야 해서, 무거운 납가운과 목 보호대도 하고 있으니 체력이 금방 달렸다. 그래도 신규 선생님이 배운다고 함께 방에 들어와있는데 나라도 설명을 해줘야겠다 싶어 전반적인 수술 세팅, 프로시져와 주의사항, 해당 응급 시험과 관련된 팁 등을 소곤소곤 알려줬다.

마치는 길에 탈의실에 함께 갔는데 신규 선생님이 갑자기 딸기 주스를 건네주면서 “선생님, 00번 방에서 아까 정말 죄송했어요. 너무 엉망인 채로 넘겨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어요.”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이전 순회간호사와 인계를 불충분하게 주고 받아 당황한 나머지 일이 꼬여서 그런 것 같았다.

세상에, 딸기 주스 후배님,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야 괜찮아. 그 시기에 아무리 일머리가 좋고 혼자 공부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잖아. 일 하다보면 말로 다 전하지 못할 응급 상황도 많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공감하고 배려를 해주니. 

물론 나도 정돈되지 못하고 미완성인 인계를 줄 때면 미안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일을 이것밖에 못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지나가는 감정이더라. 어떻게 항상 나와 타인의 기준을 충족하면서 사랑받으면서만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지의 지라고, 너는 네가 모르고 부족한 것을 알고 있으니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배워나가며 사랑받으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