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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수술실 신규 간호사의 자신과 겸손 그 사이에서


직장 생활에 있어서 '스스로 해낼 수 있음'을 믿고 자신있게 행하는 게 어렵지만 중요하다. 한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더욱 주눅이 들어 실수하기 쉽고, 집중이 힘들고, 과도한 긴장과 소진 속에 지치기 때문이다. 시간과 노력이 합쳐지면 할 수 있는데도 겁나고 긴장해서 못하게 될 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자기 확신을 타인에게 드러내는 건 여전히 조심스럽도록 권장된다.


원래 병동 혹은 중환자실을 희망 부서로 생각해두었다가 수술실에 발령된 신규 선생님들이 계시다. 일부는 수술실 간호사 일에 만족하고, 일부는 자신의 원래 꿈을 좇아 로테이션을 한다. 사직 수준의 이벤트가 있지 않는 이상은, 이왕 적응해서 일하기 시작해서인지 1-2년 정도 경험하고 원내 로테이션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로테이션하겠다 걸 아니꼽게 보는 사람은 없다. 간호사들에게 평생 직장, 평생 동료의 개념이 있는 것도 아니니, 자신에게 더 잘 맞고 더 일하기 좋은 환경이 있다면 이를 좇아 가는게 뭐가 나쁘겠는가. 보통 원내 로테이션 같은 경우, 전자의무기록의 '희망부서신청'란에 부서를 기입해두면 수선생님이 살펴보실 수 있고 그 부서에 사직, 휴직 등으로 자리가 나면 수선생님이 현재 로테이션 갈지 확인해서 로테이션이 결정되게 된다. 이전부터 "원래 원티드가 OO이여서, 수선생님이 1년만 채우면 보내주시기로 하셨어요. 자리가 나면 보내주신대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왔던 신규 선생님이 있었는데 최근에 로테이션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인데 그 선생님의 태도 때문에 말이 나왔다고.


로테이션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해당 과의 수술 트레이닝을 중단한 선생님이었다.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수술방은 돌리지 않았고(수술방에서 특정 방에 속해 수술 트레이닝하는 걸 ‘방을 돈다’고 말한다), 적당히 쉬운 수술에 기능할 만큼 트레이닝하고 이브닝 듀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해당 과 선생님들의 로테이션할 선생님에 대한 나름의 배려와 존중이었는데, 지나친 자신만만함이 불편하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쉬운 것들만 배우고 했으니 쉽게 생각하는 모양이지. 배운 것도 잘 못하고 꼼꼼하지도 않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힘들게 하면서, 말은 공부해왔으니 자기만 믿으라고 한단다. 하지도 못하면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 하는 만큼 고생을 해봐야지." 



그 신규와 같은 과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 참 그 마음을 모르지 않겠더라.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은 내가 그 사람과 마땅히 나눠야 할 짐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 더 고생해서 힘들었다'고 느꼈을 때 나왔었다.


신규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로서 배우는 속도와 과정이 있고, 고연차의 지식과 경험을 쉬이 흉내내지 못한다. 신규 간호사가 '나는 이제 이 정도 하면 잘하는 거지. 이 정도면 괜찮은 거지.'하는 자신감으로 더 겸손히 배우려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신규가 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리해서 시키지 않으려고 윗사람들이 중간연차, 고연차들에게 힘든 역할들을 맡기고 있음을 알게 된 건 나도 일하면서 1년이 지났을 때였다. 



나도 이전의 과에서 나온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과 특정 수술에 해당 과의 신규 선생님이 스크럽 공부를 하거나 순회 간호사를 하면서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할 줄 몰라요."라며 인력 배정을 계속 거부만 하니, 나만 이브닝 때 계속 스크럽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상대적으로 쉬운 수술에 앉아서 일하고, 나는 개복술이라 계속 서서 긴장감 속에 급박하게 일하고. 



'할 줄 못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기회를 만들어 배워야지. 순회 간호사를 보면서라도 익히든지. 언제까지 못할건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시간 수술에 힘이 들고 사람이 미워지더라. '과 사람이 나만 있나? 왜 저 선생님은 쉬운 일 하지?' '나 없어도 어차피 언젠가는 다른 사람 시켜서 할 거면서'같은 생각들까지. 우스운게 나도 신규 시절에 같은 과 선생님한테 이런 말을 들었었다. 선임 선생님은 약간의 푸념과 울분을 섞어 "얼른 네가 배워서 해야지~~."라며 눈치를 주셨었다. 이런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하니 친구가 나더러 "이제 너도 꼰대 다 되었다. 조심해야겠다!!"고 웃었다. 그만큼 힘들고 지치니까 꼰대 마인드가 생기긴 하던데, 개인적으로 숨기는 데 제법 신경써야 했다.


특정 대상을 향한 미운 마음을 간호사 생활을 하면서 선명히 배워가고 있다.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길게 보고 살면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부정적인 마음을 받으며 사는 것도 괴로울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 부족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꾸준히 겸손한 태도로 알며 나아가려고 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 자신의 지식과 행위 능력을 믿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들에 항상 열려 있고 타인의 경험을 통해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자신과 겸손 그 사이에서... 자신이 배려받고 지나간 일들도 많았음을 잊지 않는다면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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