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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응급 상황에서 생명을 붙들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


내가 속한 수술과의 환자가 내부 출혈로 심정지가 생겨, 심폐소생팀을 끌고 수술장에 와 급하게 수술 스크럽에 들어갔다. 이전 수술 환자가 방금 나가 기구 정리하던 와중에, 응급으로 수술이 붙는다는 소식을 들은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가 끝나자마자 마취과와 진료과 의사가 환자를 끌고 뛰어 들어온다.


당시 그 과의 개복 수술 준비물을 챙길 수 있는 사람이 나 밖에 없어서, 물품 준비용 카트를 끌고 급히 방과 중앙 창고를 오가며 수술 준비를 했다. 멸균 드렙, 거즈, 결찰용 실, 니들 류, 시린지, 블레이드 류, 클립 종류, 소방, 퍼스팬, 석션, 보비 ... 개복 수술의 흐름을 머릿속에서 생각하며 과에 맞는 특수 재료들을 뛰어다니며 챙겨 넣는다. 수술 세트와 기구, 장비도 준비해 와 순회간호사에게 인계를 주고 급하게 수술상을 풀고 손을 씻고 들어간다.


구역의 마취과 교수진과 액팅이 모두 달라붙고 진료과 교수 2명, 펠로우 2명, 레지던트 1명이 동시에 손을 씻고 들어오던 순간. 아, 잘 해야 한다, 정신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마음에 손놀림은 빨라지고 집중하느라 정말 정신은 하나도 없었지만 오히려 손은 떨리지 않았다. 심장혈관외과 협진이 있을 때, 그 과 선생님들이 특수 기구와 재료를 준비하며 소독간호사로 들어와 주시고 나도 상을 정리하고 실을 만들며 보조했다. 그리고 협진 교수님이 빠지고 다시 손을 바꿔 스크럽을 했다. 


수술 영역에서는 큰 소리가 오고가지만 그렇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멸균영역 내외부 영역에서 해동이나 조제 과정이 필요한 지혈제를 재촉하는 의사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느라 나도 몇 번 소리치며 진정시킨다. 집도의는 손상된 혈관을 꿰매고 피떡을 제거하고 작은 혈관을 헤모락과 헤모 클립으로 정리하고 지혈제를 뿌린다. 배액관을 깊숙이 넣고, 배에 잔뜩 들어갔던 거즈 류를 꺼내 계수를 확인하고, 배를 닫기 시작했다. 다행히 100장이 넘는 거즈 류도 계수가 모두 맞고 봉합 과정에서는 특이 사항 없이 수술이 마무리되어, 환자는 급히 중환자실로 전동되었다. 수술 침대에서 이동용 침상으로 환자를 옮기는 걸 보조하는데, 피를 잔뜩 흘린 환자는 사지가 차가웠다. 그렇게 마취과가 많은 피를 밀어내며 수혈을 했는데도... 버텨주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상황이 진정되고 나니 주변이 보인다. 바닥이 창상에서 흘러나온 피와 핏덩이가 뚝뚝 떨어지는 거즈로 가득하고, 분주히 기구와 수술재료를 꺼내느라 여러 방을 오간 병원 구성원들의 발자국으로 엉망이다. 방은 물론이고 복도 곳곳에도 피발자국이 선명하다. 나도 스크럽 가운을 입고 있었음에도 바지에도 신발에도 피가 많이 튀어 있었다.


환자를 내보내고 피범벅이 된 수술방을 청소 사원님들이 오래도록 정리하며 닦는다. 선명한 피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순회간호사 선생님은 퇴근 시간이 되어 떠나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수술 전 과정을 복기하며 약물과 사용재료와 수술간호기록 상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한다. 초응급으로 진행되어 수술방을 도와 준 손이 많다 보니, 당연히 누가 했으려니 싶은 일들도 종종 되어 있지 않다. 순회간호사가 해야했을 일들도 하나씩 다 살펴보고 마무리 짓는다. 발판과 침대에 묻은 피를 닦고,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방의 장비와 세팅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정리된 수술방을 스쳐지나가는 이들은 그 혼란이 있었다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런 스크럽도 다 해보는구나, 그리고 할 수 있구나.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응급 상황이지만 어느새 주변의 도움으로 해내는 때가 되었구나. 오늘은 다행히 인력 상황이 괜찮아 다른 과 선생님들, 순회간호사 선생님들이 여럿 도와주실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분산되어 있지만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하나의 팀으로 움직이는 분위기, 여러 부서의 협력과 협동, 응급 상황 대처에서 빛나던 다양한 과의 고연차 선생님들이 안팎에서 잘 대처해준 덕분에 무사히 수술을 끝낼 수 있었음을 안다. 


문득 내가 중증 케이스를 다룰 능력의 구성원이 있는 큰 병원에 있다는 것이, 피내음처럼 진하고 강하게 뇌리를 스친다. 자꾸만 만나 보지도 못한 환자의 삶과 보호자가 안쓰럽다. 병원의 모든 지식과 경험, 의료 재료와 신기술을 총동원해 생명을 붙들고 있다. 부디, 괜찮아 지시기를, 마음이 너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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