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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호사K Oct 21. 2023

출근일에 문자 하나로 사직한 선생님

병원에서 일어난 응급 사직 이야기 


주말 지나고 월요일 이브닝 출근을 하니, 조심스럽게 "OO샘 응급 사직했대. 들은 거 있어?"라는 선생님들이 계셨다. 금요일까지 멀쩡히 출근해서 평소처럼 퇴근한 신규 선생님이 갑자기 월요일에 응급 사직하겠다며, 출근 못하겠다며 연락을 했다나. 그것도 같은 과의 프리셉터 선생님, 차지 선생님, 수선생님께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동기들한테도 별 말을 하지 않았어서 아무도 알지 못했던 심경의 변화였다.


그런데 그 사직의 방식이 참 안타깝고 아쉽기 그지 없었다. 그 선생님은 독립하여 데이 근무를 거쳤고, 해당 일이 첫 이브닝 출근날(오후 출근)이었다. 그날 아침에 수선생님께 문자로 출근 못하겠다고 연락을 했단다. 그래서 수선생님이 먼저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다고 한다. 차지 선생님은 뒤늦게 수선생님에게 전해들었다고. 그리고는 그 신규 선생님은 같은 과 동료 선생님들께 일말의 연락도 하지 않고 변명도 핑계도 없이 조용히 수술부, 파트, 과의 단톡방을 나갔다.


하필이면 그날부터 그 과에 협진에 케이스가 어려운 환자 수술이 있어서 선생님들도 수술에 집중하랴, 갑작스런 소식에 혼란스러우랴 많이 힘드셨었다고 들었다. 건너 듣는 같은 과 당사자 선생님 이야기만으로도 깨진 신뢰에 대한 허탈함, 허무함, 그간의 주고받았던 애정과 노고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인력 관리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것에 대한 어이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은 부서 수선생님, 수술간호 팀장님 사직 면담을 하고 2개월 정도의 근무 후 그만두는 걸 '응급 사직'이라 부르니 그 선생님으로서는 병원에 이례적인 기록을 남긴 경우다. 인력을 새로 배정 받든, 기존 인력 로테이션을 하든 인력 관리 상 2개월 정도의 트레이닝 기간이 필요하기에, 부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개인 사유로 그만둘 때에도 2~3개월 전에 사직 면담을 하는 게 관례적이다. 어느 직장이든, 인수인계와 인력 관리로 부서는 돌아가게 해야 하므로 적어도 1달은 기간을 잡지 않던가?


기본적인 영어 단어나 수술 용어를 공부해오지 않아 가르치는 사람들을 당황시키고, 일 배우는 게 상당히 더디어 그 과의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 잘 부탁해. 혼자 할 수 있어야 하니까, 혼자 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필요하면 도와줘." 소리를 많이 남기게 했고, 얌전한 성격임은 알지만 선생님들께 다가가는 것도 물어보는 것도 없었다던 신규. 주변에서 선생님이 따라오는 속도에 맞춰서 도와주려고 노력했고, 그 노고를 감수한 사람들 덕분에 자신은 한 발짝 뒤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는(진료과에 쉴드 쳐주고, 사고 치지 않게 도와주고, 혼자 해야 할 일을 나눠서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 점은 몰랐을 것이다. 책임감도 안 느껴지고 그만둘 때에도 자기 입장, 자기 생각밖에 안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어떤 점이 어떻게 힘들었다 표시를 하든, 퇴사할 때 명확히 알려주든지 해서 변화가 생길 수 있게 해야할텐데 그런 과정도 없이 "못할 것 같아요."라는 말로 갈무리된 이야기... 사직한 선생님이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의 공백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카더라 소문만 작게 퍼지다 잊혀진 이야기다. 신규 선생님이라서 해당 과에서 트레이닝 받고, 오후 수술 어레인지도 그 과 위주로 하다보니 다른 과 선생님들은 잘 만나보지도 못했을 사람이라 소문이 오래 가진 않았다. 어차피 그만 둔 사람에게 열과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도 없고, 사람들은 자기 앞의 일들 만으로도 바쁘다. 갑자기 퇴사 소식을 들어 연락을 한 동기 신규 간호사한테는 '그래도 데이 때는 갑자기 그만두면 과에 인력이 없을까봐 최대한 버티려고 했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고. 그래서 동기는 그 간호사가 사직 의사를 미리 충분히 밝히고 그만둔 걸로 알았다고, 출근날 그런 식으로 그만둔 지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어떻게 혼자서 그런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는 게 그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구나 생각했다.


언론으로 보도되는 태움으로 몸과 마음 건강을 많이 상한 간호사 이야기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 것일까 생각해봤지만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은 협조적으로 잘 도와주고 성격도 밝은 분들이시고, 그 과의 진료과가 유난히 까탈스럽거나, 비난적이거나, 언어폭력을 행하는 과도 아니다. 수술의 난이도도 평이한 과에 속하는 마이너 과다. 응급 사직한 신규 간호사에게 대체 직장과 동료는 뭐였을까? 오고가며 인사를 건네고, 수술이 넘어 와 수술할 때에도 태연스럽게 일하더니 갑자기 그런 일을 저지르는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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