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호사K Oct 21. 2023

서럽게 아파서 원내 진료 본 날 : 방광염 투병기


아픈 것도 서럽지만 환자를 서럽게 하는 건 질병 그 자체가 아니다. 치료받는 것도 에너지와 시간, 경제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조금 심한 방광염을 겪은 적이 있었다. 주말부터 화장실에 급하게 계속 가고 싶고, 계속 소변을 더 보고 싶지만 나오지는 않는 잔뇨감을 느꼈다. 그러다 화요일에 소변에서 피가 섞인 게 육안으로도 보이고 피 냄새가 나서 깜짝 놀라 병원에 갔다. 연관짓기는 힘들지만, 일시적으로 좌하복부에서도 아린 통증이 심해져서 서있기 힘들기도 했다.


혹시나 최근 건강검진과 관련해 다학제적인 질병인가 우려스러워, 바로 우리 병원에 갔다. 원무과 전화를 통해 일반의 외래 진료를 예약했고, 얼굴이 익숙한 펠로우 선생님이 계셨다. 오랜 시간 기다려 본 진료에서는 스트레스와 관련된 급성 방광염일 거라고 하셨다. 여러 소변 검사를 다 해본다고 소변 검체통만 5개를 받았다. 시간되면 비뇨기계 CT도 찍어봐도 좋다고 하셨지만 일단 항생제와 배뇨 보조제 처방을 받았다. 진료 후 처방에 따라, 오랜 시간을 기다려 원내에서 주사 처치를 받았다. 항암 병동 옆에 있는 원내 주사실에서 Trison kit의 항생제 반응 테스트를 하고, 30분 정도에 걸쳐 정맥 주사를 맞으며 소파 의자에 기대 앉았다.


직원들이 쉴 틈없이 바쁘게 돌아가는데도 계속해서 환자들이 몰려온다. 일찍 처치를 받고 쉬고 나머지 일도 해야하기에 조급해지는 환자의 입장을 알면서도, 혼자 초조하다고 달라지는 건 없기에 마음을 놓아버렸다. 11시 쯤에 병원에 갔는데 외래 예약 시간까지 기다리고, 진료 보고, 검체 검사하고 주사 처치 기다렸다 맞고 약 받고 수납한다고 4시 30분쯤 볼일이 다 끝났다. 상급종합병원 진찰료 24000원, 검사 종류가 많아서 검사료 86000원 정도에 하루 진료보고 검사, 약처방하는데 13만원이 들었다. 그래도 진료 기다리며 병원에서도 계속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하루 만에 항생제 처치 후 확연히 증상이 없어졌다. 5일치 항생제를 다 먹고 지금은 괜찮다. 검사 결과를 보니 소변에서 RBC, WBC와 bacteria가 나와 요로감염에 의한 급성 방광염을 증명할 뿐 특이사항은 없어 보인다.


수술실에서 일하면 물도 못 마시고 화장실도 못 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식사 교대 때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꼭 가고, 비타민C를 꾸준히 챙겨먹는다.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어쩔 수 없이 내외부적 스트레스로 인해 몸이 약해지는 시기가 있어 가끔 방광염이 오곤 했다. 주변 선생님들도 같은 환경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 불편함을 잘 아신다. 내가 급하게 치료받은 걸 알고, 주변 선생님들이 나도 방광염때문에 힘들어봤다면서 건강 잘 챙기라고 많이들 말씀해주셨다. 이해받을 수 있어서 많이 감사하고 다행이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 순서를 기다리면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데 속상하기도 했다. 최근 건강 검진 결과나, 보험 가입 시 5년 이내 진단과 수술력을 근거로 잡힌 부담보 조건같은 게 생각하기 싫었는데 계속 생각났다. 덤덤하게 진료를 보고 받는 편인데도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다. 악취가 나는 쓰레기에 방향제만 계속 뿌려대다 보면 악취가 자연적으로 사라지는 게 빠를까, 코가 멀어버려 무덤덤해지는 게 빠를까. 스스로 낫지 못할 질병이기에 몸에서 악소리를 내며 호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치료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래도 답답하고 못 참겠어서, 건강으로 지키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원에 온다. 체력과 에너지도 시간도, 돈도 많이 들지만 지키고 싶은 게 있기 때문에. 내게 아픔을 두렵게 하는 건 무엇일까, 지키고 싶은 건 무엇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출근일에 문자 하나로 사직한 선생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