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번째 이야기
바니는 길에서 생활하다 내게 입양되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야외 공간에서 살던 아이가 갑갑한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생활하니 답답하진 않을까 생각했다. 언젠가 한번 밖으로 데리고 나가줘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산책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니가 집에 적응하고 나면 산책 고양이가 가능한 시도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생각보다 적응력 빨랐던 바니는 집으로 데려온 지 하루 만에 집안 탐색을 마치고 자기 잠자리를 정했다. 그리고 나도 잘 따랐다.(나만 잘 따르고 Lee나 외부인에게는 곁을 주지 않았다)
몇 달의 시간을 함께 지내며 각종 검사도 마쳤고 중성화 수술도 끝나서 슬슬 밖으로 같이 나가보려고 나름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선 고양이 가슴 줄을 구매했다. 끈으로만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조끼 형태로 되어있어 고양이들이 편안해한다고 해 그것으로 결정했다. 배송은 하루 만에 도착했고 난 즉시 바니에게 입혀보았다.
좀 작게 나왔다는 후기가 있어 M 사이즈를 구매했는데 3kg가 채 안 되는 바니에게는 너무 컸다. 그래도 등판이 벨크로로 되어있고 조끼가 안 열리게 연결되는 끈도 있어서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잠시 입혀보았다.
바니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있다 곧 조끼를 벗으려 백스텝을 밟으며 바둥거렸다. 옷을 벗으려 노력하다가 테이블 다리에 조끼가 걸리게 되었는데 바니가 힘을 주자 조끼가 거꾸로 쑥 빠졌다.
나 : 아.. 자칫 벗겨질 수도 있긴 하겠지만 벨크로 테이프를 좀 타이트하게 붙이면 괜찮겠는데...?
나는 조끼를 조금 타이트하게 입히고 줄을 채운 후 과감히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집안에서부터 1층까지는 품에 안고 내려갔다.
바니를 고향방문시켜준다 생각하니 살짝 설레기도 하고 흥분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바니는 아파트 1층 화단으로 가자 갑자기 내 품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난 손에 줄을 꼭 쥐고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순간! 바니는 곧장 가슴 줄을 한 채로 화단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혹시 바니가 원래 살던 곳으로 가는 건가? 하고 최대한 고양이가 뛰는 방향으로 같이 뛰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마치 내게서 도망가려는 듯, 나에게서 탈출하려는 듯이 이쪽저쪽 화단으로 미친 듯이 들어가려고 했다.
난 마음이 복잡해지며 가슴 줄을 놓지 않고 내쪽으로 잡아당겼다. 바니는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화단 사이에 오도 가도 못한 상태로 나를 보며 울었다. 몹시 불안한 눈빛으로.
나 : 바니야.. 괜찮아? 왜 그래... 원래 살던 집으로 가고 싶은 거야?
난 바니를 붙잡아 가슴에 다시 안고 예전에 저녁마다 밥 주던 벤치로 갔다. 그곳에 가면 길고양이 시절을 기억하며 혹시 옛날 생각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데리고 간 것이다.
벤치에서 바니는 조금 얌전해져서 난 앞으로 몇 번 시도를 하면 산책 고양이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손에 줄은 꼭 쥔 채로 바니를 벤치에 잠시 내려놓았다. 바니는 얌전히 있는 듯하다가 갑자기 벤치 밑으로 뛰어내려 잽싸게 화단으로 또 뛰어갔다. 순간 난 줄을 꽉 잡고 있었는데 이번엔 아까와 달리 좀 불안했다. 바니가 화단에서 뒷걸음을 치며 조끼에서 몸을 빼내고 있던 것이었다.
속으로 안돼 안돼!! 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바니는 조끼를 벗어던지고 화단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순간 내 머릿속은 너무나 복잡해지고 마음은 참담했다. 집고양이 생활이 너무 싫어서 도망을 친건지, 갑자기 밖으로 나와 불안해서 도망을 친건지 알 수가 없어서였다.
잠깐이지만, 만약 바니가 불러도 돌아오지 않으면 저대로 보내줘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밖으로 돌려보내도 이런 식은 아니다. 마지막 남은 접종이라도 다 끝내고 보내줘야지 하고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했다.
나 : 바니야~ 바니야~ 집에 가자 여기 추워~ 집에 가자 바니야~
바니는 내게서 멀리 도망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 손에 잡힐 정도의 거리에 있지도 않았다. 사철나무로 구성된 화단 뒤쪽으로 숨어있었는데 고양이를 잡으려면 반대편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살살 달래며 나무 뒤쪽으로 다가가자 바니는 또 잽싸게 뛰어서 이번에는 아슬아슬한 난간 쪽으로 뛰어갔다.
결국 난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있는 화단 사이를 무릎으로 기어서 바니에게 다가갔다. 마침 전화기도 안 들고 내려와서 Lee에게 고양이 간식이나 장난감 좀 갖고 오라고 연락도 못하는 상황이라 미치고 팔짝 뛰는 심정이었다.
우선 고양이 시선을 잡고 주의를 끌기 위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나뭇가지를 들고 바닥을 툭툭 치며 바니를 불렀다. 한참을 나뭇가지로 바닥을 치며 손에 잡고 끌자 바니는 관심을 가지며 계속 나무를 쳐다보며 집중하고 있었다.
다행히 멀리 도망가지 않고 계속 한자리에 있기에 나는 엎드려 기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리고 드디어 손에 잡히는 거리가 되자 난 바니가 입고 있는 티셔츠를 확 잡아챘다. 조끼를 입힐 때 혹시 벨크로가 털에 붙을까 봐 티셔츠 위에 조끼를 입혔는데 그게 신의 한 수였다.
다행히 바니는 한 번에 내손에 잡혔고 내가 다시 안자 얌전히 있어 집으로 들어올 수가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바니는 꼬리를 내리며 안방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나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Lee에게 밖에서 있었던 상황을 하소연하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Lee : 와.. 밖에 지금 강풍 불고 비 오고 난리야. 바니 못 데려 왔으면 너 지금쯤 울면서 뛰쳐나갔겠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저 녀석은 밖에 비바람에 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걸 알기나 할까? 바니는 밖에 다녀온 날 하루는 풀이 죽은 것처럼 얌전히 보내었고, 다음날부터는 다시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갔다.
아.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만 들리면 꼬리를 내리며 침대 밑으로 숨는다. 문이 열릴 때마다 밖에 나간다는 생각이 드나 보다.
결과적으로 길고양이 출신 바니는 완전히 집고양이가 되었고, 바깥 생활은 전혀 그립지가 않고 산책 고양이는 물 건너간 상황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