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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희박 Jan 11. 2019

나는 캣맘인가

세 번째 이야기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했다고 주변인들에게 말하자 첫마디는    

  

“우와. 그럼 너 캣맘이야? 그런데 조심해, 꼭 헬멧 쓰고 밥 주고”였다.      


  그럼 나는 “에이~ 내가 캣맘은 무슨. 그냥 귀엽고 안돼 보여 밥 주는 거고 요즘 설마 돌 던지는 사람이야 있겠어?”라고 말했는데 얼마 뒤 난 돌 맞은 거에 버금가는 상처를 받게 된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난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사료와 물을 들고 길고양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고양이들은 날 기다렸다. 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아이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지난밤 주었던 플라스틱 물통은 재활용 쓰레기통에 분리수거 한 뒤 새로운 물통에 깨끗한 물을 담아주는 것이다. 


  가끔은 Lee도 함께 내려가 밥을 주며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얼굴을 익혔다.     

     

  그러던 어느 날 못 보던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곳에 가면 밥 준다는 소문이라도 났던 것일까? 이미 4마리에게 밥을 주고 있던 터라 한 마리 더 느는 건 큰일 아니지만 이러다 아파트 고양이가 다 여기 모이면 어떡하지? 나중에는 길 건너 아파트 고양이까지 오는 건 아냐? 하고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중  누군가 옆으로 쑥 들어왔다.      

캣맘_“ 아 밥 주시나 봐요? 양이 좀 많은 거 같은데...?”


나_“ 아... 안녕하세요. 제가 잘 몰라서.. 양이 많나요?”


  가볍게 눈인사 후 그녀는 재빠르게 비닐봉지에서 캔을 따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이어서 한 캔을 더 따더니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끼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던 뉴페이스에게 참치를 따로 줬다. 식탐 많은 검둥이 녀석이 일어나 새로 온 고양이 앞에 있는 참치를 먹으려고 하자


“ 안돼! 네 건 저기 있잖아. 같이 나눠 먹어야지” 하며 그 고양이가 편안히 먹도록 도와줬다. 


캣맘_“어젠 벤치에 누군가 심한 욕을 써붙여 놓았더라고요. 고양이 밥 주지 말라고요”


나_ “어머 진짜요? 전 전혀 몰랐어요.”


캣맘_“그래서 제가 때서 버렸어요. 고양이 밥 준다고 개체수 늘어나는 것도, 병균을 옮긴다는 것도 다 잘못된 정보인데 왜들 그러는지... 추운 겨울만이라도 버틸 수 있게 해 주면 좋으련만. 전 그럼 다른 애들 또 밥 주러 가야 해서 이만.... 수고하세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파트 정원 풀숲에서 정말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크고 뚱뚱한 갈색 고양이가 나타났다. 나는 너무 놀라 눈을 못 떼고 있었는데 그녀가 “라이언! 이리 와. 너는 밥 저기서 먹어야지.” 하고 부르자 놀랍게도 그 거대한 고양이는 그녀를 따라 사뿐사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후 난 두 가지를 반성을 했다. 하나는 고양이 차별도 아니고 새로운 고양이가 나타나면 같이 잘해줘야 되는데 왜 내가 정든 애들만 밥을 챙겼을까 하는 것이다. 똑같이 종일 굶고 있던 녀석들일 텐데 누군 주고, 누군 주지 않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인데... 내가 저 고양이었으면 얼마나 서러웠을까 생각하니 정말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의 센스 없는 작명 실력이었다. 나는 4마리의 길고양이들에게 갈색이, 반반이, 검둥이 1, 검둥이 2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아파트 캣맘은 그 크고 헐크같이 생긴 고양이에게 ‘라이언’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 따라 운명이 정해진다는데 나는 정말 성의 없이 이름을 지어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캣맘도 무엇도 아니었다. 그냥 내 눈에 띄었고 정든 녀석들만 편애하는 못난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 길고양이 밥을 주기 시작했다고 말하며 은근 불쌍한 동물을 돕는 사람인척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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