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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Nov 24. 2020

밴쿠버 공항에서 생긴 일 #1

밴쿠버 공항이 싫은 이유

(Photo by Suganth on Unsplash)



몬트리올은 아쉽게도 한국에서 직항 노선이 없다. 한국에서 캐나다를 올 때 나는 보통 토론토를 거쳐 몬트리올로 오기 때문에 밴쿠버 공항은 처음 한국에서 입국할 때 비행기를 국내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딱 한번 방문해 봤다. 그렇지만 나는 밴쿠버 공항에 안 좋은 기억이 있다.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양가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공항에서 짐을 부치려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 한분과 따님으로 보이는 (나중에 알고 보니 며느리였던) 여성분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말을 건네 왔다.

[저... 죄송한데 캐나다 가는 비행기 타시는 거지요? 저희 어머님이 밴쿠버에 방문하시는데 비행기를 혼자 타고 가셔야 해서요. 혹시 비행기 타는 곳까지만이라도 같이 가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립니다.]

어차피 가는 길이고 나도 혼자 비행기를 타니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부모님들과 눈물의 이별식을 마치고 마침내 게이트 안으로 오늘 처음 만난 할머니와 함께 들어갔다. 치료를 받는 동안 몸무게가 생애 최저를 기록하고 있는 데다 엄마가 비행기 안에서 편하게 입으라고 사주신 위아래 엷은 회색 운동복은 몸에 맞지 않아 남의 옷을 빌려 입은 양 커서 몸을 더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게 만들었다. 화장끼 없는 민 낯에 눈물 콧물 얼룩진 얼굴로 낯선 할머니와 나란히 대기 의자에 앉았다.

[새댁은 어디까지 가요?]

[저는 몬트리올까지 가요.]

[혼자 가는 건가?]

[네. 남편이 먼저 가 있어요.]

[나도 우리 막내딸을 보러 가는데, 딸이 이민 가고 난 후 처음 가는 거어요. 8년 만이네 8 년.......]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듯 잠시 말 끝을 흐리시더니, 이내 다시 대화를 이어 가셨다.

[딸은 거기서 자리 잡고 일하다 보니 바쁘고, 나보고 오라고 오라고 하는데 내가 무서워서 비행기를 탈 수가 있어야지. 미루고 미루다 이러다 생전에 못 가겠구나 싶어서 이번에 용기를 냈어요.]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와 우리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듯 해 괜스레 서글퍼졌다. 부모님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 오고 싶을 때마다 비행기 표 망설임 없이 끊어서 올리도 만무하고, 나도 남편과 모든 걸 다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니 할머니의 막내딸처럼 정신없이 살 것이 뻔했다. 할머니는 8년 만에 가시지만, 우리 부모님은 언제쯤 오실 수 있을까? 짧은 대화를 끝으로 아무 말 없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비행기를 타면서 각자의 자리를 찾아 헤어졌다.


비행기를 타고 밴쿠버까지 가는 내내 나는 한 숨도 잘 수 없었다. 몸은 너무도 피곤했지만 긴장한 탓에 정신이 그렇게 또렷할 수가 없었다. 밴쿠버 공항에 내려 몬트리올행  비행기 편으로 로 이기지도 못할 만큼 큰 이민 짐 4개를 옮겨야 하는데 고작 주어진 시간은 1 시간 10 분 정도였다. 짐을 찾는 장소와 어디로 가서 국내선을 타야 하는지 하루 전 날 남편이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입국심사를 하는 곳에서 대답해야 할 예상 질문과 답도 미리 적어 연습을 해 뒀으니 당황만 하지 않으면 시간 안에 몬트리올 공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항엔 남편이 마중 나와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고 맘을 다독이며 연습한 대답을 되뇌었다.


마침내 비행기가 멈추고 서둘러 빠져나와 입국 심사를 위해  줄을 섰다. 정확히 그때 무슨 질문을 받았는지 기억이 또렷하진 않지만 내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몇 가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자 빨간 도장을 쾅! 하고 찍어주며 손가락을 가리켜 저 쪽으로 가라고 안내해 줬다.  아니! 이렇게 쉽게 통과하다니! 안도의 한 숨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제 잽싸게 짐을 찾아야겠다 싶어 룰라 랄라 이동하는데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편에 있던 사무실로 들어가라며 손으로 가리켰다. 영문도 모르고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가자 제복을 입은 이민관들이  굳은 표정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잔뜩 위축된 채로  마냥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는데 근육이 뻣뻣하게 굳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얼마를 기다렸을까 금발 머리를 가지런하게 땋아 내린 젊은 이민관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 이름을 불렀다. 소리를 지르거나 강압적으로 굴진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심문을 당하는 것처럼 내가 한 대답에 꼬리에 꼬리를 물어 쉴 새 없이 질문을 해 댔다. 영어가 익숙지 않았던 나는 식은땀을 흘려가며 최선을 다해 대답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맘에 들지 않는 듯했다. 당황하며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나를 뚫어져라 지켜보고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핸드폰과 여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라고 명령했다. 여권과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자리를 떠난 그녀는 20분 후에 다시 돌아와 테이블 위에 내 여권과 핸드폰을  툭 내던지며,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어떤 설명도 없이 가도 좋다는 말과 함께 휙 돌아섰다.  어찌나 차갑게 굴던지 눈물이 핑 돌았다.


몬트리올행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무실에서 나오면서 완전히 방향을 잃어버렸다. 공항 직원들에게  물어 물어 간신히 국내선 방향으로 있는 힘 ,없는 힘을 쥐어짜며 뛰기 시작했다. 무거운 짐까지 더 해져 온 몸에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헐레벌떡 뛰어가는데 저쪽에 국내선 체크인을 하는 곳이 보였다. 내가 마지막 승객인 듯 대기 라인 없이 텅 비어 있었다. 뛰는 내내  손에 꼭 쥐고 있던 여권과 티켓을 보여주자 직원들도 재빠르게 행동했다. 나는 짐을 부치기 위해 서둘러 무빙 벨트 위에 짐가방을 하나 올렸다. 티켓을  체크 인 하던 직원이 나에게 안타깝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이런.... 비행기 놓쳤네요....]라고 말했다.

나는 하던 동작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직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쪽 무빙 벨트 뒤편 어딘가로 내 짐 가방 하나가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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