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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박마차 Dec 01. 2020

눈물의 밴쿠버 공항

캐나다 이민 초장부터 고난의 연속


[ 출입국 관리 직원이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아서 비행기를 놓쳤어요! 질문을 엄청 많이 했어요!]
선생님에게 고자질하는 어린 학생 마냥 나는 격앙된 목소리로 다급하게 티켓팅을 도와주던 여직원에게 서툰 영어로 외쳤다. 내가 늦고 싶어서 늦은 게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그녀와 그 주변에 있던 다른 2 명의 직원들은 나의 말에 여유롭게 씩 웃어 보였다. 웃어? 지금 이 상황이 웃겨? 어이가 없어 그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우리가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가장 빠른 몬트리올행 비행기는 5시간 후에 있어요. 비행기 값을 다시 낼 필요는 없어요.]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또다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 제 짐은요? 벌써 하나가 떠났어요.]
[ 짐은 걱정 말아요. 지금 부치는 짐 들과 같이 찾을 수 있어요.]
그녀의 설명을 듣고, 다시 한번 씩 재차 묻고는 마침내 안심을 할 수 있었다. 친절한 직원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새로  끊은 티켓을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초 지종을 설명했다. 5시간 이상을 더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기내용 캐리어 하나를 들고 다음 비행기를 탈 때까지 기다릴 장소를 찾아 나섰다. 비행기를 놓칠까 전력 질주를 한 탓에 비 오듯 흘린 땀이 식기 시작하면서 한기가 몰려왔다. 공항 안에 스타벅스 앞을 지나며 배고프고 목이 말라 샌드위치와 커피가 간절했지만 영어로 주문할 용기도 기운도 남아있지 않았다. 또다시 당황 스런 상황이 조금이라도 내게 생긴다면 제2의 시작이고 나발이고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 같아 무서웠다. 그래, 참고 말지…... 바짝 마른입으로 입 맛을 다시며 돌아서는데 좀 전에 출입국 심사에서 당한 일이 생각이 나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녀의 냉랭한 초록색 눈이 떠올랐다. 그렇게 까지 차갑게 굴 필요 없었잖아요!!라고 따져 묻고 싶었다. 눈물이 터져 나오는기 시작하는데 도저히 막을 재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뒤섞여 버렸다.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는 동안에도 자꾸 눈물이 터져 나와 다시 씻기 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는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너무 바보 같아서 밉기까지 했다. 간신히 맘을 추스르고 화장실 밖으로 나와  최대한 사람들이 오가지 않는 곳을 찾아 그곳 의자에 앉았다. 이미 저녁이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땀으로 젖은 옷 때문에 몸이 덜덜 떨려왔다. 다행히 가지고 있던 기내용 캐리어에 겨울 스웨터가 있어 꺼내 입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잠이 쏟아졌다. 잠든 사이 누가 내 짐을 훔쳐 갈까 싶어 가방의 손잡이를 손에 꼭 쥔 채 어색한 자세로 잠이 들었다 깨다를 반복했다.

몬트리올행  비행기에 올라타자마자 말 그대로 기절한 듯 쓰러져 잠이 들었다.  무사히 마지막 비행기를 탔다는 안도감 때문에 피곤이 밀려왔다. 덕분에 5시간 거리의 비행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비행기 도착 후 짐을 모두 찾고 남편이 기다리겠다고 말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서 공항은 한산했다. 짐을 끌고 얼마쯤 걸었을까 저쪽에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한 달 전 한국을 떠날 때 보다 훨씬 말라 몸이 반쪽이 되어 있었고 피부는 햇빛에 그을려 까맣고 윤기 없이 까칠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속이 복잡 스러웠다. 한 달 동안 도대체 무슨 고생을 했길래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분명 한국에서도 입고 있었던 같은 검은 바람막이 재킷을 입고 있는데 지금이 훨씬 초라해 보였다.
 훗날 들은 얘기 지만 당시 남편도 나를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내가 입고 있었던 몸에 맞지도 않는 큰 운동복을 보고 도대체 어디서 저런 큰 옷을 사 입고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공항을 떠나 렌트한 낡은 아파트에 드디어 새벽 2시가 넘어 도착했다.  좁은 계단을 지나 통로로 가는 내내 남편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집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마. 몇 달 있다가 다른 집을 알아보면 되니까.]
남편의 우려와는 다르게 방 한 칸은 아주 작았지만 깨끗했다. 비행기와 공항을 낯선 사람들과 함께 떠돌다 온 나에게 그 방은 더할 나위 없이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다. 공동으로 쓰는 샤워실에서 대충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사과 한개와  시리얼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거의 24 시간 만에 먹는 제대로 된 끼니였다. 남편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았지만 밀려오는 잠을 이길 수가 없어 나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그렇게  5일 동안 간단히 요기만 하고 계속 잠만 잤다. 수업이 있어 아침에 나가는 남편에게 인사도 못하고 줄 곧 잠만 잤지만 피곤이 쉽사리 풀리질 않았다. 좀비처럼 잠만 자다 6일째 되는 날 남편과 집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전 날 밤 비가 내려 공원 전체에 싱그러운 풀 냄새가 가득했다.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좋았다. 모든 걱정과 나쁜 기억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는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을 언제 느껴 봤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덧붙이자면, 밴쿠버 공항에서 겪은 일을 어느 날 친구들에게 말할 기회가 있었다. 그 둘 모두 브라질에서 이민과 취업을 각각 목표로 온 사람들이었다.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캐나다에 오고 난 직 후 이 경험담을 여기저기 꽤나 떠들고 다녔다. 아직도 그 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듯 흥분해서 이야기를 마치자 사람 좋게 생긴 내 친구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 그건 별 것 도 아니야. 이민 심사대에서 우리 브라질 사람들은 남자는  마약 딜러, 여자는 창녀 취급을 받지. 의미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어. 그게 그 사람들 일이야. 그렇게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으니까.]
친구들의 농담이 섞인 말이었지만 그 후로 나는 더 이상 밴쿠버 공항 사건을 떠들고 다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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