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회사 사람들 이야기 #1
-이번 화부터는 캐나다 게임 회사를 다니면서 직장 동료들과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글을 이어 나갈 계획입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A 회사 사람들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A 회사는 나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캐나다로 온 후 첫 번째 직장에서 8개월만에 회사의 경제적인 사정상 정리 해고가 되고 난 후 1년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어느 곳에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2번째 직장을 알아보던 그 시간이 너무 길고 힘들게 느껴져 게임 회사에서의 나의 커리어가 이렇게 저물어 가는구나 매일매일을 낙담하며 보내던 순간 나의 손을 잡아 기회를 준 것이 바로 A 회사였다. 작은 규모의 모바일 게임 개발사였고, 대부분 구성원들의 나이가 평균적으로 어렸다. 이제 막 학교, 학원을 마치고 온 사람들도 많았다. 연봉, 회사의 규모, 복지, 이딴 것들은 내게 안중에도 없었다. 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다시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프로젝트 초기에 합류 해 처음 만난 팀원들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아직 팀이 완벽히 구성되기 전이었다. 그때 우리 팀의 프로듀서 이안은 지독한 워커 홀릭이었다. 언제 잠을 자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늘 늦게까지 일에 몰두했고, 사무실 안에서는 피곤한 기색 없이 에너지가 넘쳐흘렀다. 그 는 가끔 전혀 이해되지 않는 프랑스 식 농담을 단체 채팅창에 던지곤 했으며 약간은 과한 제스처와 높은 톤의 목소리로 자신이 유쾌한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려는 듯 보였다. 오랜 기간 업계에서 일을 해온 사람답게 능숙하게 사람들을 관리했고, 일에 관해서 철저했다. 나와 팀원들은 종종 그가 사람보다 일을 우선시하면서 나타나는 냉혹함에 불평하고는 했지만 일을 진행 해 가는데 있어 추진력과 깔끔한 일처리에 대해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입사 초창기 나는 이안이 너무 무서웠다. 아직도 한국식 직장 문화가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에 직장 상사인 그는 내게 아주 먼 거리의 사람이었다. 가끔씩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안부를 물어도 대화가 길어질까 두려워 짧게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기 일쑤였고, 그가 나의 이름을 부르기라도 하면 귀신이라도 본 듯 깜짝깜짝 놀라기를 반복했다. 나의 이런 태도에 그도 아마 짜증 꽤나 났을 것이다. 한두 번이면 모를까 이런 태도가 계속 이어진다면 실례라는 생각에 고치려고 노력했지만 이안의 목소리만 들려도 몸은 경기하듯 반응했다.
회사의 넉넉하지 않은 예산 때문에 그는 팀원들을 마구 몰아붙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화장실 가는 시간 조차 아껴 가며 하루 종일 일에 몰두해야 간신히 내게 주어진 일을 마칠 정도였는데 초기에 나는 도저히 이런 스케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나 빼고 다른 디자이너들은 척척 맡은 일을 잘만 해 내고 있어 나는 그 들과 더욱 비교가 되었다.
어느 날, 내게 주어진 작업을 끝내고 이안의 확인을 받기 위해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내 책상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게임 안에 들어가는 관리소 건물을 만드는 것이 내 업무였다. 내 옆에는 기획일을 맡고 있는 미리암도 이안의 의견을 듣기 위해 같이 서 있었다.
팔짱을 끼고 내 작업물을 보고 있던 이안은 대뜸,
[ 당신이 작업한 건물 옆에 저 멍청해 보이는 차는 뭐지요?]
그의 직설적인 표현에 잠깐 말을 잃을 정도로 당황했다.
[관리소 건물 옆에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만들어봤어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내 설명을 들은 그는 언짢은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나는 어색한 웃을을 띄며 곧이어 대답했다.
[차를 없애고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 볼게요.]
대답을 들은 이안은 별다른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풀이 잔뜩 죽었다. 컨셉 아티스트도 없는 상황에서 기획자의 말만 듣고 프로젝트 초기에 디자인 컨셉을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이게 맞는 건가 싶을 때가 많았다. 오로지 이안의 마음에 드는 작업물을 아주 빠른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제출해야 했다. 차라리 어디가 맘에 들지 않으니 고쳐 달라 라고 말을 해주지..... 아, 말했구나. 멍청한 차…..
[ 나는 그 차 마음에 들어요.]
미리암은 내 어깨에 손을 가볍게 올렸다 떼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렵게 다시 잡은 직장에서 너무 잘하고 싶었던 의욕만 앞서 극도로 긴장한 탓일까? 이상하게도 나는 좋은 결과물을 좀처럼 내지 못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인데 왜 이렇게 잘 안 풀리까 싶을 정도로 실수의 연속이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지만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또 언제 저걸 고치지 싶은 게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멍청한 차가 주차되어 있는 관리소 건물이지만 나는 그 멍청한 차를 가진 건물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 했다. 주섬주섬 짐을 싸서 사무실을 나섰다. 진이 쏙 빠진 채로 집에 돌아와 대충 샤워를 하고 침대에 풀썩 엎드린 채 쓰러져 누웠다. 남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나 회사 잘릴 것 같아…….]
말 그대로 오랫동안 기다려 간신히 이직한 직장에서 곧 잘릴 것 같은 공포감이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