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 강가로 들어가다.

바라나시의 첫 경험

by 조작가

바라나시, 강가(Ganga)로 들어가다.


바라나시의 작은 공항에 드디어 발을 딛게 되었다. 뿌연 공기가 가득했고 공항에서 나서자마자 관광객에게 주어진 [제1미션-흥정의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적절히 상대할 만한 공항의 Prepaid taxi를 타려는데, 정가를 불렀지만, 왠지 미덥지 않아 좀 버텨 보았다. 서성대고 있으니, 20루피를 깎아주겠다는 기사 아저씨가 나섰다. 흥정을 해보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덥기도 하고 지친 마음에 OK. 공항의 낯선 기운에서 어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택시기사를 따라나서며 물었다.


“당신 차 좋은 거야?”


0.5초 만에 부질없는 질문이라 생각했다.


“NO problem!”


그는 자신감 있는 대답과 함께 그 옛날의 포니를 연상하게 하는 작은 소형 자동차를 가리켰다. 세면용 수건으로 덮어 씌운 소박한 시트 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어차피 럭셔리함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고, 바퀴는 잘 붙어있으니, 굴러가겠지. 돈을 받고 손님을 태워가려는 건, 충분히 제 기능을 하는 물건이겠거니. 하는 갑자기 긍정 세포가 자라나 순순히 따랐다. 어쩌면 비행 여정 내내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문화의 부딪힘에 지쳐있었기 때문이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핸드폰의 지도 앱을 켜고 GPS를 확인하며 택시에 올랐다. 몇백 미터 달리고 있을 때였나, 드디어 이 차의 참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NO side mirrors. NO windows.


안도의 순간은 짧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유리창이 없는 문짝, 사이드 미러가 없는 차를 타보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바라나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 우리 차도 그에 합류하여 한 덩어리다. 그나마 지붕이 있는 게 다행이다. 덮개 없는 트럭에 올라탄 말, 소들도 가관이다. 그들 나름의 VIP 대접일까. 길 위에는 각종 가축, 각종 차량과 인간들이 엉켜가는 무법지대가 있었다. 그 혼돈의 길을 따라 바라나시 시내로 진입했다.


NO sign. NO line.


모든 것이 구분 없이 엉켜있으면서도 모든 존재가 이미 정해진 길을 가는 듯 각자의 방향으로 향했다. 여기가 인도인가 보다. 그렇게 아무 문제없이 모두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가지 못할 길은 없었고, 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듣던 대로의 <NO Problem>의 철학이다. 뭔가 헛헛한 웃음이 새어나기도 하고, 이 혼란의 길 위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니, 아이러니다. 무법천지 길을 달려 무사히 바라나시의 중심, ‘고돌리아’ 사거리에 도착했다. 여기도 역시, 온갖 탈 것, 인종, 동물이 만나고자 약속이라도 한 듯. 역시, 한데 모여 엉켜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꺅꺅대는 원숭이들의 싸움 소리가 내려 꽂혔다. 놀라 멈칫하다 보니, 눈앞에는 끔벅거리는 큰 황소 한 마리가, 역시 소만큼 큰 눈동자의 인도인들은 어수룩한 이방인을 빤히 훑으며 지나간다. <인도 여행을 위한 지침들>을 잘 가다듬어 되새겨 볼 때였다. 이 모든 장애물을 무심히, 재빠른 걸음으로 지나쳐야 한다. 바닥에 널린 소똥과 경적들이 만들어내는 소음 잔치를 일단 피하고자 일단 무조건 골목으로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이 보였다. 바라나시의 어느 골목이든 강가로 향한다더니. 번잡했던 시내의 매연이 무색하게 시원한 물맛 공기가 반긴다. 아직 오후, 해가 떨어지려면 여유가 있었다. 강에 홀린 짐승처럼 정처 없이 강변을 따라 걸어 올랐다.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바로 강이 보였다. 번잡했던 시내의 매연이 무색하게 시원한 공기가 반긴다. 쓰레기, 소똥, 소, 그리고 씻는 자들, 강변에 가득 찬 작은 배. 인도 관련 다큐멘터리와 여행책자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이다. 겨울철이라 듣던 것보다 냄새가 그리 지독하지는 않다. 아직 오후, 해가 떨어지려면 아직은 여유가 있다.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일단 정처 없이 강변을 따라 걸어 올랐다.


강변에 자리 잡은 바라나시_Varanasi는 오래전부터 인도 문화의 명소로 여겨지는 장소다. 이곳을 찾는 일이 힌두교도의 인생 최대의 목표라는데. 강물의 더러움과 오염도를 생각하는 속세의 눈을 가진, 바라나시 1일 차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아직 그들의 뜻을 조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강 건너편에는 작은 모래땅이 있고, 그 주변을 돌고 오려는 사람들을 위한 나룻배들도 여럿 대기 중이다. 당시에는 별것 없어 보이는 모래를 보러 대체 거기까지 왜 갔다 오는가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불교도들은 갠지스강을 경계로 사바(속세의 세계)와 해탈의 땅이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한단다. 나처럼 유적지를 찾아 헤매는 사람도, 산꼭대기를 어떻게든 정복하고 깃발을 꽂아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그 해탈의 땅을 짚고 오는 것이 생의 한 목적이자 버킷리스트인 사람도 있는 거지.


바라나시는 이 강을 따라 도시형성이 되었다. 강변은 선착장이 필요한 곳 외에는 펄과 같은 자연환경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곳은 선착장 겸 가트(ghat, 강변의 계단식 구조)가 강을 따라 이어져 어디에서건 배를 타고 나갈 수 있도록, 어디에서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계단처럼 만들어진 가트(Ghat)는 몸을 씻거나, 배를 타거나, 쉬거나, 각종 의식에 적당한 공간이다. 가트로 잘 다져진 강변의 위쪽, 아래쪽에는 대표적인 큰 화장장이 들어서 있어 장례의식을 치르게 된다. 화장장들은 열린 공간이라 주변만 접근해도 장작과 시신, 다양한 것들이 타들어 가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의 내를 풍기고 있다. 그럴듯한 저택 혹은 호텔들도 강변에 늘어서 있다. 가트 주변의 으리으리한 집들은 예부터 신성시되어왔던 이곳에 머물기 위해 왕족이나 귀족들이 지어놓았다 했다. 이 건물들 사이로 복잡한 골목들이 이어져 시내로 연결되고, 거주지역이 생겨났다.


그들은 이 갠지스강을 ‘강가’라고 불렀다.


현지인들은 우리가 ‘강’(江)이라 부르는 것처럼 힌디어로 갠지스(Ganges)를 ‘강가’(Ganga)로 칭하고 있다. 강가라는 이름으로 수천 년간 불려 왔고, 한자어 江, 우리말 강, 힌디어 ‘강가’가 큰 차이가 없는 소릿값을 갖고 있다는 점은, 언어의 변천과 문화 이동, 종교의 영향 같은 깊은 지식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묘한 연결고리가 있다. 이곳에선 길을 잃으면 ‘강가’를 찾으면 해결된다. 골목을 좀 헤매다 보면 금세 ‘강가’가 나왔고, 햇볕이 그리우면 ‘강가’에서 늘어져 있으면 되고,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곳을 따라가면 ‘강가’에 이른다. 그들은 그곳에서 기도를, 생명수를, 만남을, 마지막을 얻고, 새로 태어남을 기린다. 사람들과 강물이 어우러져 오랫동안 도시를 이루고 많은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문명을 이루어 온 곳, 마지 현대에서 과거로 들어온 듯한 시공간의 이동을 한 듯 감격에 벅찼다.


이 바라나시에서 6일을 지내기로 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강가/가트에만 나가도 흥미로운 것들이 널려있으니. 몸을 씻고 있는 사람들, 이리저리 가트 저편까지 오며 가는 보트들, 각종 표정의 다양한 인종들. 온종일 걷을 시간도 있었다. 마치 영화 필름처럼 길게 늘어선 강변의 무대에서는 살고, 죽고, 생을 소망하는 이들의 몸짓들이 고스란히 실사로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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