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만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 죽음이란
나름대로는 준비한 여행이었다, 깨끗한 새 운동화도. 가방도.
그러나 역시 듣던 대로 여러 번의 소똥, 오물 등과 마주쳐 소용없게 된 새 신발이 안타까웠다. 트렁크 대신 배낭을 메고 온 것만도 다행이었다. 여기저기 장애물을 피해 다니자니, 몸은 바라나시라는 땅, 그것도 바로 그렇게 궁금해하던 갠지스 강 코앞에 있지만, 아직은 이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닌 불청객 같은 관객이다.
한숨 돌리려 구체적인 여행 정보도 얻을 겸, 한인 식당을 찾아 만만한 볶음밥과 콜라로 배를 채웠다. 로컬 인도 요리에 도전할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던가. 인도까지 와서 중국식 볶음밥과 콜라라니.
숙소와 동네 지도 등을 얻고 근처의 가장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묵기로 했다. 도미토리도 아닌 싱글룸-250루피. 다녀본 세계의 숙소 중 가장 저렴한 가격대-5000원 정도-이다. 여행 취향이 달라 이번 인도행에도 함께하지 못했던 동료가 생각났다. 그녀라면 침침한 호텔 방에 섬찟 질렸을 것 같다.
사실 숙소의 안락함보다는 현지의 문화 체험에 투자하는 가성비를 추구하는 까닭에, 동행을 만드는 조율이 쉬운 편이 아니다. 그저 '이래도, 저래도, 좋아요' 과가 아닌 내 성정이 가끔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넘어가는 편. 서로를 괴롭게 하느니, 혼자가 나을 때도 있다. 어떤 면으론 뭐 적당히, 적당히 흘려보내기도 하지만 종종 까탈스럽기도 한, 일관성 없고 즉흥적인 성격 탓에 동행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외로워지는 건 감내해야 하는 것. give & take, 혹은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좋은 것들은 항상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란 생각은 세상살이에 염두에 두면 괜찮은 언명들 중 하나인 것 같다. 얻을 것이 있다면 포기할 것도 있어야 할 거다.
해가 지기 전에 짐을 풀고자 즉흥적으로 찾은 싸구려 방은 그럭저럭 몸을 누일 만했다. 덩그러니 놓인 매트리스의 정체가 다소 의심스럽긴 했지만, 더 나은 장소로 옮길 기운은 없으니 오늘은 그저 만족하기로 했다.
피곤했지만 먼저, ‘베드 버그’를 예방하기 위해 차단 작전을 펼쳤다 : 준비된 비닐 시트(김장용 비닐로 수제 제작)와 청테이프(몹시 ‘애정’하는 일상용품이다!)로 어디선가 기어 나올지 모를 벌레, 곰팡이 따위를 원천 봉쇄하고, 비닐 커버 위에 비상용 침낭을 펴 자리를 깔았다. 버석거림이 거슬렸지만, 금세 노곤해져 잠에 빠졌다.
머리만 기댈 수 있다면 어디서건 잘 자는, 나는 흔히 얘기하는 '축복받은 체질'을 가졌다. 새벽에 눈을 뜨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 인도에서의 첫날밤은 호락호락 밤을 보내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저렴한 방값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잠들 만하면 창밖으로 번쩍번쩍 장례행렬이 줄기차게 지나가는, 바로 그 길가에 있었다. 지켜보니 몇십 분의 간격을 두고 줄지어 운구 행렬이 계속된다. 생소한 노랫가락과 연기, 약간의 냄새가 조금씩 흘러들었다. 노랫소리는 흘려들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스테레오로 방안 공기를 휘감았던 냄새는 그야말로 자극적이었다. 요란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이벤트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지켜보니 장정들이 함께 들고 운구하는 사체 행렬이 그렇게 거창하지도 않았다. 그저 옮기기 수월한 들것에, 몇 장의 천과 꽃장식에 덮인 채로 실려 오고 있었다. 탄탄한 관은 없지만 나름의 치장과 장식은 있는. 번쩍이는 금빛, 붉은빛의 몇 장의 옷감은 가벼운 들것에 실려 강가로 '돌아오는' 그들의 마지막을 소중하게 감싸고 어루만지는 마지막 위로 같다.
밤에도, 새벽에도. 노랫가락도 함께. 그들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숙소에서 걸어서 5분이면 메인 화장터-‘마니까르니까 가트’였다. 화장장 근처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24시간 계속된다는 사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밤새도록 계속될 줄이야.
삶과 죽음이란,
시간대를 예정하여 벌어지는 공연이 아닌 것일진대.
숙박비로 미리 2일 치를 지불한 터라 하룻밤을 더 견뎌야 했다. 장례행렬의 노랫가락을 자장가로 들으며 잠을 청할 일이 또 있을까. 쾌쾌한 냄새와 가라앉은 밤공기 속에서 뒤척이다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그나마도 이 상황에 잠을 이룰 수 있는 체질로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다음 날 아침, 연기를 계속해서 피워대는 화장터로 나가 보았다. 하나, 둘씩 번쩍이는 천을 휘감고 강가로 향하는 행렬을 따라갔다. 강에 다다른 곳에 보이는 움막에는 장작더미가 쌓여있고, 화장을 진행하려는 가족들과 장작더미를 운반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관광객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잡는다. 힌두인들이 죽고 나서 여기 갠지스에 뿌려지는 것을 가장 큰 축복으로 생각한다고 하는 만큼, 그들은 죽기 직전에 모여들어, 여기서 죽음을 맞이하고, 강가에서 태워져, 강으로 돌아간다. 재력이 부족하면 장작이 충분하지 못해 사체가 다 타지 못하고 강물로 버려지기도 한단다.
가까이 갈수록 여러 가지 냄새들이 오감을 저릿하게 만든다. 그들의 의식이 끝나면 삭발을 한 상주들이 보트를 타고 나가 강에 재를 뿌리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육체가 사라지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사건을 바라볼 때 느끼는 그 순간의 망연자실한 생각들이 꽤 자극적인 연기와 냄새로 치환되는 것 같다. ‘육신이 사그라드는 순간’을 가까이에서 보려 구경을(?) 나섰지만, 생각만큼 가까이 갈 수 없는 두려움의 마음이 일었다. 호기롭게 나선 것과 달리 그들의 ‘의식’에 호기심만으로 쉽게 다가갈 구경거리는 아니었으니. ‘나름대로는’ 준비를 했다고는 생각했지만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던 게 분명하다. 그저 창밖의 먼 산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과의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어느 평범한 날, 찐하게 의지하던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무조건적 사랑을 넘치도록 퍼주셨던 아빠도 느닷없이 인사도 없이 떠나버리셨다. 정신 차리고 보니, 그들이 세상에 존재한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몇 년 전만 해도, 소중한 사람들이 곁을 떠난다는 걸 생각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평안한 생이었다. 아니, 겪기 전에는 내가 그 정도로 편안한 생을 살았다는 것조차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죽음’은 예상하기 힘든, 게다가 그 이후의 과정이란 상상조차 어려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경험의 하나라는 걸 온몸으로 깨달았다. 기가 막힌다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쓰는 것이다. 이별은 현실이다. 죽음으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을 겪으며 난 더욱 현실주의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라고 더 가까이 다가가기도, 깊이 지켜보는 것도 먹먹하고 어려웠다. 떠나는 사람을 그들만의 의식으로 배웅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그리움이 계속 차올라 더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다가가지도, 머물지도 못한 채 나만의 기도를 가슴으로 올리고 돌아섰다. 예고 없이 그렇게 내 곁에서 떠나버린 이들을 배웅하던 장면들이 여러 번 겹쳐 흘렀다. 벌써 몇여 년이 지났고, 충격은 흐릿해졌고, 지난 시간들이 강물처럼 흘러가버렸는데도. 말도 없이 급히 떠난 이들의 잔상이 강물에 계속 비쳐올랐다. 아직 마음이 단단해지지 못한 나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