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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Aug 09. 2024

소소하게

소소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기를 쓰고 노력해도 소소하게 살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냥 만족하면서 소소하자. 

 

고등학교 때 불교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틀째 되는 날 절에서 섭외한 어떤 가수가 노래를 하러 왔다. 

말이 가수지 실은 인맥 덕에 겨우겨우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있는 캠프에 소정의 일당을 받고 자기 무대를 가진 사람이었을 것이다. 부슬부슬한 머리와 뭔가 체념한 눈빛, 그리고 어딘가 자신 없어 보이는 태도는 이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결코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꽤 의욕을 보이며 그는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슬프게도 그 노래는 사실은 너무 형편없고 지루했다. 특히 그 나이 때 아이들을 만족시키기에는 정말 역부족이어서, 아이들은 곧 집중력을 잃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노래하러 온 가수는 투명인간이 되고 그만하라는 소리도 아이들을 투과했고, 결국에는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노랫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게다가 노래를 듣던 아이들이 구려, 더러워. 이런 소리까지 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가 더 비참해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진짜 안 된 일이고 꼭 막았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분은 결국 중간에 무대를 멈추고 떠드는 아이들을 향해 화를 낸 후 나가셨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고 비아냥이 난무하고, 스님이 들어와서 뭐 하는 거냐고 화를 냈다. 그날 벌로 108배를 했던가 안 했던가. 

아무튼 그 가수의 얼굴은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안 되고 불쌍하고 우스꽝스러운 어떤 사람의 장면으로. 내 인생에서 나의 어떤 장면들도 그 모습을 닮아있지 않을까. 


나는 가끔 사람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처음 시작과 끝을 모두 알 수 있는 근처에 있는 사람들, 아빠나 친척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해서. 내가 처음과 끝을 가장 세세히 알 수 있는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결국 엄청나게 위대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한 인생들뿐이다. 사실 이런 인생은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인생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의미 없이 스러진다. 그런데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나는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의미가 너무 없다. 그럼 우리 인생이 의미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면 되는 것일까. 왜 사람은 죽어서 잊혀지는가. 


 밀란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인간의 생은 너무 허무하고 치가 떨리게 의미가 없다고. 인생은 회귀가 없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이나 대중을 공포스럽게 한 악당이라도 결국 죽음이 있고 난 후는 되돌릴 수가 없다. 위대한 사람들이 그럴진대, 우리 소시민들은 어떨까. 몇 십억 년이라는 지구의 시간을 스펙트럼으로 나타내보면 우리 한 개체들은 점 하나도 찍지 못할 신세일 것이다. 그치만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죽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을 억울해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생은 원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 생은 피어나고 살았다가 결국 죽음으로서 깔끔하게 다시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라고. 왠지 너무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은 이보다 더 공평할 수가 없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가난하고 곤궁하고 그래도 노래를 좋아하는데 사실 재주도 없다. 평생 하긴 할 건데 내 재주 없음을 탓하면서 살았을까? 아니면 아주 소소하게나마 그런 기회가 오면 즐기면서, 좋아하면서 보냈을까. 그래서 결과적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선택지는 딱 이 두 가지인 것뿐이다. 


 생에 어떤 의미를 갖고 싶다면 스스로 정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 자체가 너무 어렵다. 너무 공포스러워서 사실 정하지 않는 것을 택할 만큼. 나는 가끔 내가 살아가는 인생이 중학교 2학년 미술시간과 같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뭔가를 정해주면 좋겠는데 몇 주나 되는 시간 동안 자유주제로 그림을 그리라는 것이다. 뭘 그릴 것인가. 뭘 하고 싶은 것인가. 나는 도대체  뭘 원하고 뭘 갈구하는가. 몇 주차동안 소름 끼치는 백지의 시간이 계속되다가, 결국 뭘 해야 할 지의 방향은 막판이 되어서야 생각난다. 열심히 소재를 선택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림을 그려도 역부족이다. 약속의 시간은 너무 빨리 도래한다. 그리고 결국 내가 얻는 것은 아주 형편없고 너무도 아쉬운 결과물일 뿐이다. 그냥 아쉬운 마음뿐이다. 


결국 나는 마지막에 가서도 이렇게 아쉬워만 할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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