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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Jun 27. 2024

첫 시술 썰 푼다.

병원홍보 아닙니다.

작년 3월 초순이었다. 새순이 돋는 소생의,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  


문득 그동안 미뤄왔던 리프팅을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거울을 볼 때마다 마주했던 피부 스트레스가 드디어 폭발해 버린 것이다.

  

30대 후반이면 노화가 진행될 때긴 하지만, 나는 동년배들에 비해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20대나 30대나 내 이상은 꾸준히 말라깽이였는데 출산과 육아를 거치는 동안 흐트러진 몸매를 바로잡기 위해 나는 극단적으로 굶는 다이어트를 했다. 다이어트는 힘들었지만 매번 성공했다. 그런데 요요도 매번 성공했다. 그러면서 나의 얼굴 또한 원래의 탱탱함을 잃고 축축 처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좋아졌지 않은가. 나는 인터넷에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신뢰가 갔던 한 곳이 반포에 위치한 **클리닉이었다. 클리닉. 피부과 전문의가 개업한 병원이 아닌 다른 과 의사가 개업해 의사의 이름이나 해당 과의 명칭을 적지 못하는 비운의 병원. 그래서 '병원'보다 몇 배는 확실한 신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나는 넘쳐나는 광고 리뷰 속에서 옥석을 가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끈질긴 서칭 끝에 발견한 '반포의 허준', '주사기에 진심이시다' 등 짧고 무성의한 어조의 글들은 나에게 큰 신뢰를 주었다.


 병원을 예약하고 찾아가면서도 달리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 그저 오랜만의 서울나들이에 마음이 들떠, 끝나고 백화점에 들러 필요한 것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어야겠다는 생각만 잔뜩 했다. 들뜬 기분으로 병원을 찾았는데, 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피부과의 이미지는 그래도 뭔가 고급스럽고 프라이빗했다. 착 가라앉은 어두운 색상의 인테리어에 의사 선생님의 병실은 구석에 콕 박혀 있어서 진료는 몇 분 컷이고, 상담실장에게 가격을 확인해야 하는.


 그런데 이곳은 고급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설이 깔끔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그냥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 상가의 치과와 비슷한 느낌. 진료실은 거의 노출되어 있다시피 했고, 의사 선생님의 큰 목소리는 대기실에까지 울려 퍼졌다. 의사라기보다는 시장통의 장사꾼 같았다. 게다가 중요한 건 손님이 많긴 많았는데, 오는 족족 다 나보다는 연배가 많은 들이다. 알고 보니 여긴 지역 아주머니들에게 입소문 난 병원이었던 것이다.


 a4용지를 잘라놓은 네모난 쪽지에 내가 사는 지역명을 적고 돌아서자, 간호사들이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렇게 먼 거리에서 찾아오는 손님은 없는 듯했다. 진료실에 있던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손 대본 적 없는 완전 무공해의 얼굴이었다. 시술초짜에게 어떻게 경계심을 허물게 할 것인가를 그도 꽤 고심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성의를 끌어모아 영업을 시작했다.


 보톡스나 한 번 맞을까 해서 와봤는데, 의사는 사무라이 눈썹이 되기 때문에 이마 보톡스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그 대신 얼굴이 쳐진 건 리프팅을 해야 드라마틱한 효과가 있다며 실리프팅을 영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꺼리는 모습을 보이자, 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또 얼른 필러를 강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담만 받자고 생각했던 마음이, 그렇게 5분 넘게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우니 뭐 하나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생각보다 가격도 저렴했다. 결국 내가 필러를 하겠다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피곤해 보였던 얼굴에 갑자기 한 자락의 햇살이 보였다. 사람의 얼굴 표정이 그리 짧은 시간에 변하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었다.


 그다음, 나는 대기실로 가 벌벌 떨며 앉아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긴 했지만, 그래도 한 번 한다고 했으면 말 바꾸는 법이 없는 대쪽 같은 손님이라 결제도 순순히 했다. 그렇게 잠시  가방을 부여잡고 있으니 시술실에서 호출이 왔다. 나는 또 군말 없이 그곳으로 갔다. 따로 겉옷이나 가방을 놓아두는 바스켓이 없어서, 이미 시술을 받은 아주머니들은 오래된 침대 가죽시트에 놓아두었던 옷을 들고 사라졌다.


 나도 잔뜩 긴장한 채 겉옷과 가방을 침상에 올렸다. 뒤를 돌아보니 시술실에서 주사기에 이름 모를 약물들을 준비한 의사 선생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럭 겁이 났다. 약품 포장지를 확인시켜 주고 주사에 넣는 선진적인 시스템은 도입되지 않은 곳이었다. 게다가 어디 회사의 약품이고 어느 정도의 양이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하는 소비자의 권리는 소비자가 알아서 까먹어 었다. 내가 쭈뼛쭈뼛 들어서자 선생님은 긴장 풀라고 나를 격려했다. 그리고 진짜 예쁘게 해 주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병원 의자에 누워 눈을 감고 있자, 주삿바늘이 얼굴 여기저기를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그의 손길은 반포의 허준답게 무척이나 섬세하고 능숙했다. 신의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는 그답게 단순히 내가 선택한 시술만이 아니라, 얼굴 요기조기 자신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게끔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와 진짜 이뻐졌다'라고 스스로 감탄을 하더니 자랑스럽게 내 손에 거울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내 에 비친 것은 저기 대기실에 있는 간호사들과 마찬가지로 조금씩 뾰족해지고  빵빵하게 부어오른 얼굴이었다. 거울 속에 비춘 내 얼굴에서 실시간으로 눈에 고이는 눈물이 보였다. 그런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는 "이거... 돌아와요?"였다. 반포의 허준은 굉장히 무안해하면서 몸을 돌렸다. '그래도 내가 보기에는 이게 훨씬 나은데, 이 정도도 만족을 못하면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다.'라고 구시렁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굉장히 민망해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시술실을 빠져나왔다. 그는 날 돌아보지도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지막 인사도 안 하고 나온 것이 못내 미안하다.


 나는 카운터의 간호사에게 수영을 해도 되는지 무미건조하게 묻고는 몸을 돌렸다. 대답하는 간호사도 당황한 눈치였다. 의사한테 따지고 싶지도 않고 그럴 기력도 없었다. 내가 선택한 결과니 대쪽같이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그 길로 나는 병원을 나와 백화점 구경도 때려치우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도저히 뭘 구경하고 즐길 기분이 아니었다. 내 인생은 이제 망했다고 비통해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 퇴근한 남편은 주삿바늘에 여기저기 찔린 내 얼굴을 발견하고 도대체 뭘 한 거냐고 물었다. 나는 순순히, 하지만 사실을 다소 축소 왜곡하여 시큰둥하게 이야기했다.


"그냥 보톡스."


내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잡고 탐지기를 작동시키는 그의 눈망울을 나는 바로 보지도 못했다. 마음에 안 들면 계속 만지면 펴진다는 의사의 말을 또 열심히 들어서 내 얼굴은 이제 호떡이 되있었다.

그는 한 번 더 내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보더니 말했다.


"와. 진작할 걸 그랬다. 훨씬 예뻐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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