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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담 Jun 26. 2024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하정우가 책도 썼어?'


 책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다. 캠핑지에서 출발하는 길에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이 책을 발견했는데, 호기심에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결국 책을 펼쳐 들었다.

배우 하정우는 내게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에 대한 나의 인상은 흥행작이 많은 유명한 배우이고, 연기 잘하는 배우. 하지만 왠지 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어서, 만약에 비행기 옆자리에 같이 앉게 되는 기회가 생겨도 사인이나 사진을 부탁하기보다는, 착륙해서 문이 열릴 때까지 모른 척해야 될 것 같은 사람 정도?

 그래서 하정우란 사람이 어떤 책을 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글도 내가 생각한 이미지처럼 조금 냉정할까? 그런데 그의 글은 의외로 진솔하고 담백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다. 걷기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글을 읽고 있자니 꼭 나까지 같이 걷는 것처럼 힐링이 되었다. 그래서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나중에 이 책을 꼭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달이 지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왔다. 흥미로운 소설 두 권과 함께. 워낙 책 읽는 속도가 더딘 터라 아마 소설만 읽고 이 건 다 못 읽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소설은 별로 재미가 없었고 이 책만 끝까지 다 읽었다. 선입견을 깨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첫 감독을 맡은 '허삼관'의 실패에 대해 고뇌하는 그의 모습도 그랬다. 그 이야기를 토로하는 문장 자체가 너무 희한하게 보여서 나는 그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아니, 이렇게 성공한 배우가? 이 정도로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이면 나머지는 그냥 취미로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아니었다. 그는 실패에 주눅이 들었고 촬영장에 갈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불편해했고, 또한 패인이 뭔지를 진지하게 분석하고 후회하는 날들을 보낸다. 한 마디로 그는 정말로 고민하고 고뇌했다. 한 사람이 실패로 고통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난 참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일반인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흥행작이 몇 편이나 있는 배우의 마음은 여유로울 줄 알았다. 삶이 편안하고 마음에 평화만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 같은 것인지, 그 역시 하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와 실패와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연민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위로를 먼저 받았다. 위인전을 읽는 이유가 이것일까?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일상에서 나만 겪는 억울하고 가혹한 일들이, 그로 인한 고통들이 없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인간의 생에서 실패와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생각하니 더는 억울하거나 외롭지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인생이 항상 고단하지만은 않다.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작품에 대해 일하는 사람과 소통하고. 그런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내가 모르는 '배우의 삶'. 하지만 그것도 역시 선입견이었다. 중반부부터는 배우들이 다 이렇게는 못 살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걷기를 좋아하는데, 진짜 진심으로 좋아한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을 꼬셔서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거나, 실생활에서 걸을 수 있는 웬만한 거리를 걸어 다닌다. 나도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는 근방에 집을 얻어 매일 출퇴근을 걷기로 했고, 술 먹으면 주사가 걷기여서 1시간쯤을 열심히 걷다가 집에 돌아오곤 했다. '왜 자꾸 걸어 다녀요?'라고 누군가 이상하다는 투로 물어왔을 때, 그게 그렇게 이상할 일인가 하고 속으로 억울했다. 그저 밤의 공기가 좋았고, 몸에 닿는 바람의 감촉이 좋았고, 걷다가 만나는 도시의 풍경과 정취가 좋았다. 


 그래서 그때 억울했던 만큼 하정우에게 마음이 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흐뭇했다. 하지만 점점 당황스러워졌다. 왜냐하면 점점 그 강도가 내가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섬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니, 이 정도 거리를 걸어간다고? 처음에는 책을 읽으며 나도 같이 걷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았는데, 너무 많이 걸으니까 걸은 적도 없는데 같이 피로해지는 기분이 들더니(하루에 삼만보씩 걷는다니. 집에서 강일 ic까지.), 하와이에서 10만보를 걸을 생각을 하는 그를 나는 왠지 말리고 싶어졌다. 그러면서 걷는 기쁨이나, 걷는 것의 효용성 등을 설파하며 권유하는 그를 나는 살짝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책에서 이야기하는 그는 진심인데 나는 실실 웃음이 베여 나왔다. 와 이건 진짜 너무 진심이잖아?! 못 말리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의 진심은 걷기에만 한정되지도 않는다. 그는 정말 한 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성공한 배우이면서도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고, 전시를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렇게 책도 낸다. 배우가 다 이렇게는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 이 지점이다. 취미나, 일이나 이렇게 지독하게 성실하게 하는 것이 쉽지 않겠다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지금 에세이가 아니라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있나 싶은 느낌이 들게끔, 작가는 어느 누구보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책을 읽은 내내 느낀 작가는 건실했다. 그것도 지독하게 건실했다. 나는 그에게서 너무나 나와, 내 주위사람과는 다른 이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일반 사람들과는 한 차원, 아니 몇 차원 다른 그의 노력과 열정을 보면서 나는 나의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반성한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 역시 같은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또 놀랜다.


 걷는 것을 사랑하지만 매일 성실하게 임하는 데에 필요한 노력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인생은 걷기와 같다고, 좋아하는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투영하면서 가르침을 얻는다. 무명 시절에 자신이 힘들었던 일을 얼마나 노력해서 극복했는지, 허투루 하거나 샛길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요행 없이 한 걸음씩 걸으면서 배우로 성공한 이야기를 노력하는 다른 이들을 위해 담담하게 꺼내놓는다.


 처음에 책을 들었을 때는 그의 취미나 취향을 담은 에세이인줄 알았는데, 읽다 보니 자기 인생이야기였다. 책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면서 즐기면서 열심히 일에 임하는지, 인생을 얼마나 남김없이 열심히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동기부여가 되는 책이었다. 왜냐하면 문득 운동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 싶었다가, 결말쯤 가서는 또 무언가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 졌다가 문득 우선 나부터 무언가를 시작해봐야겠구나 싶었다.


 이제 마흔을 향해 가고 있는데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회사일을 하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는데 가끔 주변을 곁눈질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처지이면서 다른 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름 옆에 특별한 수식어가 붙는 사람들. 선생님, 스튜어디스, 큐레이터 등등. 나는 그게 부러웠다. 단순히 전문직이어서가 아니었다. 내 시선에서 그 이름은 그들이 인생에서 무언가를 목표하고 성취했다는 증표이자, 훈장이었다.


 지금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막연하다 여겼다. 30대를 넘어서니까 문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기대감이 현저히 없어다. 마치 나이 든 개처럼 무엇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 내가 느껴졌을 때 열정은 애저녁에 사그라든 상태였다. 무엇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원하는 것이 없다. 일상이 공허하고 원하는 것도 없는데, 중요한 건 또 있다. 가끔 장성한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달라질 것이다. 노력도 해보기 전에 나와 남을 비교하며, 가정환경이나 학벌을 핑계 대며 '나는 못할 거야.'라고 먼저 포기해 버리는 수많은 이들처럼(나 포함) 될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한계가 되고 싶지 않다. 그런 고민을 한 것이 최근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이 책이 고민의 답이 되어주었다. 잡생각 따윈 없다. 주구장창 걷는다. 잡생각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걷는다. 잡생각이 나기 전에 일단 걸어버린다. 그래서 성공해 버린다. 단순하지만 현명한 답이다. 그래서 그런 묵직한 가르침에, 글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에, 시작부터 끝까지 힘을 얻었다. 성공이란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최선을 다해서 걸음을 옮기는 상태가 아닐까. 나는 뭔가 시작해보고 싶어졌다. 아니 일단은 좀, 밖에 나가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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