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담 Jun 24. 2024

애증의 엄마

 이제 고작 일곱 살인 껌딱지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아직 엄마를 좋아할 때인지 두 녀석은 뭘 할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댄다. 식사 시간이면 전투적으로 내 옆 자리를 사수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샤워를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마치 표어처럼 '내가 엄마 옆에, 내가 엄마랑'을 외친다. 심지어 내가 화장이라도 하고 있으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엄마 백설공주 같아', '인어공주 같아', '엄마는 너무 아름다워.'라고 순도 100프로 진심인 눈망울로 감탄을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너무 가당치가 않아서 시킨 적도 없는데 스스로 죄책감이 든다. 몸둘 바를 모르게 고마우면서도 사실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한테는 인기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 친한 이웃집에는 3살, 5살 여자아이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봐주던 우리 언니를 그 애들이 어찌나 좋아하고 따르던지. 어린 마음에 질투를 심하게 했다. 하루는 그 아이들을 데리고 언니와 함께 동네 편의점에 다녀오다가 3살 아이한테 누구 손을 잡겠냐 물었는데, 그 아이는 말은 못 하고 손짓으로 우리 언니를 택했다. 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하고 말 못 하는 그 3살 아이 손을 억지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때 내 손을 자꾸만 빼려고 애쓰던 그 아이의 손길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렇게 어릴 적부터 꾸준히 인기가 없었다. 그다지 살갑지도 않고 무뚝뚝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아이들뿐만이 아니라 어디에서도 그다지 인기가 있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고. 그런데 어째 바깥에서는 없는 인기가 집에서만 폭발하고 있다.


 한 유치원 엄마는 자기 아들은 아빠만 좋아해서 걱정이라고 한다. 얘길 들어보니 엄마가 너무 엄하게 아이를 통제해서 아빠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 나왔다. 우리 집은 그 반대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못하게 하는 것이 많은 편이고 나는 그보다는 많이 허용해 준다. 그 때문에 아이들이 뭔가를 부탁할 때 (티비 봐도 돼요? 이거 먹어도 돼요?) 거의 나한테 와서 허락을 구한다. 아마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 때문일 것이다. 언제까지 내가 이런 지위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릴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누리려고 한다. 결국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엄마에 대한 애정을 까먹을 것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지는 이유가 있다.

  

 얼마 전 한 20대 여자분이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글이 엄마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했다. 본인이 엄마를 미워하는 이유들을 아주 세세하고 야무지게 적었는데, 그중 하나는 자신이 아기시절 아팠을 때의 기억이다. 몇 살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어린아이 시절 아파서 열이 펄펄 끓고 있는데, 엄마는 자기 옷을 다 벗겨서 알몸으로 만들어놓고 식구들과 옆에서 식사를 하며 하하호호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얘기를 보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엄마 입장에서 그분의 엄마가 너무 FM이었기 때문이다. 어린아이 열을 떨어뜨리기 위해선 옷을 벗기는 것이 정석이고, 보통 어린 아이가 한 번 열이 나면 3, 4일은 고열이 나기 때문에, 옆에서 걱정하며 지키고만 있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상황이 너무 잘 이해가 되는데, 글 쓴 사람의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걱정하고 기도하던 순간이 왜 없겠는가. 그저 자신이 서럽게 울던 순간 엄마가 웃던 모습이 머릿속에 각인되었을 뿐 아닐까.

 나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한 때 엄마를 미워했다. 머릿속 기억을 아무리 뒤져봐도 엄마한테 사랑받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사진 속의 엄마와 나는 항상 화목하게 웃고 있는데, 정작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은 잘못해서 혼난 장면, 무언가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엄마밖에는 없었다. 사춘기에 들어가서는 엄마가 더욱 잔인해졌다. '너는 허구한 날 니 세계에만 갇혀있는데, 니 세계에는 아무것도 없어.' 그게 엄마가 딸한테 할 소린가 싶었다. 그런 에피소드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수년간 엄마를 미워했다.

 지금은 안다. 정말로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혼낸 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혼난 것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원래 기억이란 가장 인상적인 것만 남기 마련이니까.


 오은영 박사가 말한 훈육법 중 하나를 소개한다. 아이에게 19번 참고 20번째에서 폭발할 거면 차라리 20번 다 시큰둥하고 무성의하게 대꾸하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19번 참고 있던 엄마의 모습을 절대 기억하지 못할 거다. 19번을 천사처럼 안 된다고 말하다가 화내면서 폭발하는 20번째의 엄마 모습만 기억한다는 것이다. 19번을 참았는데, 20번째만 기억하다니.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게 억울했다. 이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한 나는 내 육아법에 이 법칙을 철저하게 적용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가 하는 거의 모든 말에 기가 막히게 무심한 대꾸를 하는 엄마가 되었다.

 육아를 하면서, 어렸을 때 보아오던 타인의 역할을 내가 지금 대신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렇게 어른들의 삶을 내가 세대교체해서 살고 있는 느낌. 아무튼 나는 사실 10번도 못 참고 화를 낸 것 같은데 우리 엄마라면 어땠을까. 나보다 훨씬 인내심 있고 아이를 좋아하는 우리 엄마는 적어도 50번은 참았을 것이다. 그렇게 참고 나를 사랑해 주던 엄마의 순간이 정작 성장한 나에게는 고, 오직 화를 내고 날 미워하던 엄마만 내 마음에 남았다.


 언젠가는 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인어공주 엄마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질 것이다. 잘 때 자신을 도닥여주던 엄마도, 아팠을 때 보살피며 곁을 지켰던 엄마도 없고, 뭘 잘못했을 때 불같이 화를 내던 엄마만 그 자리를 꿰찰 것이다.  아픈데 화를 내던 엄마. 자지 않고 투정 부릴 때 혼내던 엄마. 무서운 얼굴로 훈계하던 엄마. 이렇게 내가 각인될까 봐 무섭다. 내가 지금 얼마나 잘해주는데. 생각해 보니 두려움보다 억울함이 크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열이 나면 밤중에도 2시간, 3시간 텀으로 해열제 먹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운 없게 잠깐 웃은 것만 기억하고 평생 나를 미워하면 살겠노라고 하면 나는 너무 기가차고 억울해서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들의 망각이 최대한 늦춰지길 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의 지위를 오래도록 누릴 것이다. 남편이 혼을 내면 옆에서 여우처럼 괜히 감싸주고 도와주면서 혼나고 무서울 때 비빌 언덕은 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무의식 중에 계속 세뇌시키면서. 하지만 그렇게 애를 써 언젠가는 아이들이 나한테 등 돌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몇 년만 지나도 자기 방 방문을 굳게 잠가버릴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래도 괜찮다. 정말이다. 갑작스러운 변덕에 나조차도 놀랍지만 이것 또한 나의 순도 100프로 진심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천사 같은 내 얼굴이  남아있지 않아도, 그래서 그런 내 모습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이 세상에서 영영 없어져 버린다고 해도, 내 아이들의 천사 같은 얼굴, 그로 인해 내가 받은 위로와 행복감은 내 가슴에 평생 남아있을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니 멋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