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디즈니 영화의 전성기였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언킹'. 역대급 대작들이 연이어 탄생하던 시절, 어린 나는 엄마 손을 잡고 극장에 가서 그 모든 영화를 보았다. 나는 물론 신나지만 내 손을 잡은 우리 엄마도 나 못지않게 신나 보였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엄만 고취되어, 일 년 지사 중 가장 중요한 행사를 치르기라도 하듯 아이를 극장에 끌고 가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쨌든 이제는 내가 엄마처럼 꼬맹이 둘을 양손에 달고 영화를 보러 간다. 너무너무 기대되는 마음을 꼭꼭 숨기고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면서.
엄마의 취향과 신념이 나에게 그대로 옮아오기라도 한 것일까, 어쨌든 나는 디즈니, 픽사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를 아직도 너무 좋아한다. 그림도 예쁘고 캐릭터도 귀엽고 재미도 있고, ost까지 멋지다. 특히 픽사가 정말 잘하는 건 시나리오다. 결말에서 주제의식을 분명하게 드러내서 감동을 끌어낸다. 이번 인사이드아웃2도 그랬다.
전편에서 꼬맹이었던 라일라가 성장한 모습으로 나오자마자, '와, 잘 컸구나.' 생각이 든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라일라의 자아 앞에서 나도 기쁨이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이 장면이 너무 감쪽같아서 마지막의 반전은 상상도 못 했었다.
기쁨이는 라일라의 자아를 그렇게 뿌듯하게 여겼는데, 사실 그건 나쁜 기억들 다 버리고 기쁨이 마음대로 만든 가짜 자아다. 결국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닫고 과부하에 걸린 불안이를 겨우 겨우 안정시키는데, 불안이가말한다. "모든 건 라일라가 해야 해." 왠지 찝찝한 느낌이 드는 기쁨이지만 그래도 기대하며 '나는 좋은 사람이야' 자아를 도로 꽂아 넣는데 역시 통하지가 않는다. 결국 불안이의 마지막 말에 힌트를 얻은 기쁨이가 "나는 좋은 사람이야."자아마저 뽑아버리고.
라일라의 자아는 극도로 불안정해진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용감해.'
'아니, 난 너무 약해.'
'나는 착해.'
'아니야, 나는 못됐어.'
숨 돌릴 새도 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라일라의 자아. 그런 라일라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기쁨이가 결국은 라일라의 자아를 꼭 끌어안아줬을 때, 기쁨, 슬픔, 당황, 질투, 불안 등 모든 감정이 라일라의 자아를 함께 끌어안아줬을 때, 현실의 라일라는 그제야 안정을 찾는다. 좋아하는 친구들한테 다가가 눈물을 흘리며 자기진심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자아는 원래가 불안정하다. 내 속에 정말로 수많은 내가 있어서 그 수많은 자아들이 쉴 틈 없이 서로 다른 말을 한다. 잠깐 기분이 좋았다가도 사소한 일로 나빠지고, '그때는 왜 그랬지?' 하고 자책하며 실수를 후회한다. 불안해하며 걱정하고 긴장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 우리에게,
원래 사람은 다 그런 거라고. 살아가면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너무 많이 걱정하고 아파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괜찮다고.
이런 이야기를 이토록 센스 있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하는 법이 또 있을까?
애니메이션은 세상을 살아본 어른들이 이 세상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것인가를 고심한 결과물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끝도 없이 헤맬 것이 분명한 아이들에게 영화는 말한다. "어쩌면 더 많이 헤맬지도 몰라. 그래도 기쁨아, 네가 가지 않으면 우린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돼. 넌 가야 해. 우릴 이끌어줘야 해. 기쁨아."
아이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가득한 메시지. 그런 메시지를 주려는 어른들의 노력이 좋았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안심이 될 만큼.
그나저나 내가 같이 간 아이들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꼈을까? 일단은 이야기를 이해했는지, 전체적인 줄거리는 알고 있는지부터가 너무 궁금했다. 인풋이 있으면 응당 아웃풋이 있어야 하는 법이라는 기조를 가진 엄마는 양몰이개처럼 애들을 몰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이야? 재밌어? 뭐가 재밌어? 어떤 부분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것 같은 기운을 철석같이 감지한 아이들이 갑자기 순한 양처럼 앞만 보고 걷는다. 고 작은 발걸음이 척척 속도를 낸다. 아웃풋을 뽑아내기는 글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 포기하고 "재미는 있었어?"라고 물어보니 내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연신 커다랗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반응을 하는 걸 보니 재미가 있긴 있었나 보다. 이해도 못했고 줄거리도 모르는 것 같긴 하지만. 아마 내일이 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겠지.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의 반전.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침대에 늘어져 있던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고 보니 마루에서 놀고 있는 첫째의 발랄한 목소리. 밖으로 나가보니 요즘 한창 갖고 노는 마리오 장난감을 손에 쥐고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나는 왜 이 모양일까?"를 무한반복 중이다.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머릿속에 그게 남은 걸까.
좋은 걸 보여줘도 어떻게 꼭 그런 것만 쏙쏙 흡수하는 걸까.
아이의 뒤통수를 쳐다보다가 나는 그냥 한숨을 쉰다.
그래도 뭐라도 남았으면. 이 경쾌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이의 무의식 중에 남아서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아이를 지켜줬으면. 하고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