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늦은 티몬 이야기
이 에세이가 연작으로 나올 줄은 몰랐네. 또 내 비행기 표를 도둑맞았어. 그것도 똑같은 일본행 비행기 표를. 예전에 도둑맞은 게 벌써 반년 전이었던가. 외국의 발권 대행사를 통해 오사카행 저가 비행기 표를 예매했는데, 취소했더니 환불수수료가 100%였다.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어. 약관을 미리 뜯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걸 알게 된 것은 이미 일이 일어난 다음이었다.
액땜했다 쳐야지- 하면서 그 일은 가슴 속에 묻었다. 왕복 행 43만 원이 아깝긴 하지만, 어찌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내 기억과 감정이 거기 남아 오래 맴도는 한, 영영 고통스럽기만 할 따름이라는 것을 지겨울 정도로 잘 알아. 그리고 한 가지 감정에 오래 노출되면 그 감정은 증폭되거나 또 다른 감정으로 전이되고, 그렇게 복잡한 사정을 낳아 가슴 깊은 곳에 똬리를 튼 채 서서히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나를 알 수 없는 곳으로 이끌리라는 것도. 그러니 지워야만 한다. 일은 벌어졌고 답도 이미 정해져 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부조리 앞에 놓이는 때마다, 저항하기보다는 받아들이기를 택하는 편이야. 익숙하지.
그래 지워야만 해. 기억으로부터 보내주어야만, 아니 기억을 내보내야만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될 일일까. 그런 능력이 있었더라면, 우리가 세상사로부터 조금은 더 자유할 수 있었을지도. 하지만 우리는 감정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하고, 그 감정을 유발하는 기억으로부터도 자유하지 못하다. 세상사에 휩쓸린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경험, 거기서 비롯되는 기억과 감정의 파도에 휩쓸린다는 것. 내 의지는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작은 나무배 같아서, 그야말로 해류와 풍랑에 따라 이리저리 인도될 따름이다. 나는 매일 그 배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따금은 어느 누구의 가슴 안에도 이 커다란 바다가 있어, 거기 파도가 치고 노을이 지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오늘은 내 바다에 폭풍우가 찾았다. 내일은 잠자코 파도가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아- 레테의 강물이 있었으면 좋겠어, 말끔히 씻고 강 위에 헹구어내 버릴 수 있도록. 하지만 끝내 기억을 내보낼 수는 없어서, 가슴 속에 묻었다. 대신하여 흙으로 덮어두었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 갖가지 의미와 미사여구로 허약한 봉인을 덧댄다. ‘액땜했으니 다음에는 이런 일이 없겠지’라는 도무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도박사의 문장이라든지, ‘그래도 앞으로는 항공권을 구매할 때마다 조심할 수 있겠다’라는 필요에 의한 교훈이라든지, ‘가슴 안에 묻어둔 것이, 품은 것이 늘었다. 가슴의 구덩이가 조금 더 깊어진 느낌이다’라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각에 대한 것이라든지.
가슴에 묻어버리는 게 많아질수록 점차 가슴 안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또는 무언가 조금씩 잃어버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기도 해. 저항력, 부조리에 대해 소리 높여 고하게 하는 힘찬 생명력이 사라지는 감각. 자기가 겪는 부조리에 대해, 지치지 않고 저항하며 소리 높여 말하는 사람들을 가끔 마주칠 때마다 우리 사이에 놓인 심각한 거리감을 확인한다. 나는 우리의 차이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그 문제적 사안에 한하여서는 자신이 올바르다는 무의식적 동의와 확신에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부조리를 완전히 자기 바깥에 두고, 타자화하여 논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음을. 하지만 여기서 그걸 다 풀어 얘기해보자니 너무 피로한 것 같다. 불필요하기도 하고 말이야.
가슴에 그저 매립하는 것이 늘어갈수록 저항력은 사라지고, 저항하지 않으므로 내 가슴은 아주 조금 더 빨리 고요해진다. 하지만 저항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다만 구덩이를 파 그 안에 쏟아넣고, 허약한 문장들로 덮어두는 것일 뿐. 이제 와 저항해보려고 하면, 이미 묻어버린 것들이 감은 눈을 부릅떠 나를 지켜본다. ‘이제 와서 저항한다고? 그럼 나는?! 내 억울함도 읍소해줄 텐가?’ 아이고 선생님 진정하십시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잠자코 옆으로 몸을 돌려 누우시요, 그 옆에 구덩이 하나를 더 파야겠소. 그래서인지 그저 끌어안고 포용하는 것이란, 대저 무력해지는 것과 조금 닮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들어서 자주. 그건 오묘한, 좋음과 싫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일이다. 나는 저항하지 않는 온순한 동물처럼 사고하고 또 행동하려 하고, 그건 썩 세상 살기에 나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흡족할 수도 없는 것. 나는 이게 삶 그 자체의 모습과 얼마나 다를런가 생각한다.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 이건 염세주의자의 낙관론이다.
두 번째 일본행 티켓은 도쿄행 티켓이었다. 대학 후배들이 단톡방에 예매 링크를 올렸다. 할인하고 있어서 매우 싸다고 하였다. 나는 그런 걸 잘 몰라서, 대강 시류를 보고 그 위에 편승했을 따름이었다. 안 그래도 얼리버드 항공권이니 어련 싸겠거니 하였으나, 후배들은 이 정도 할인이면 거저먹기라고 하였다. 다들 예매를 해 인증을 올렸고, 나는 회사에 앉아 모니터를 바라보는 자세 그대로, 책상 밑으로 손을 움직여 링크를 눌렀다. 그 링크는 ‘티몬’ 홈페이지로 이어졌다.
아, 그래 ‘티몬’이었지. 하지만 워낙 예전 일이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건 캘린더에 적힌 빨간색 별 표시였지, 항공권이 아닌 마련이니까. 그래서 티몬 쪽 시황이 불안하다는 뉴스를 보고서도, 흐린 눈으로 지나쳐 보냈다. 아직 환불 러쉬가 일어나기 전, 티몬과 지급 대행사에서 환불 중단 결정을 내리기 1주일 전부터 유통가 뉴스레터에서는 티몬의 불안한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1주일 뒤 마침내 티몬의 유동성 경색으로 인해 자금 흐름이 막혀버렸다는 뉴스가 모든 신문과 뉴스 섹션을 점거했다. 회사 사람들도 온종일 티몬 얘기뿐이었다. 즉, 그쯤 되면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현안이 되었다는 말이다.
‘아이구- 이를 어쩌나… 저기 코 꿴 사람들은 마음고생 깨나 하겠네.’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강 건너에서 하는 불구경 같이. 그 코 꿴 사람이 나였구나 하는 자각은 여행사의 문자를 받고 나서 밀려들기 시작했다. “티몬으로부터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해 귀하의 비행기 표는 발급 불가상태입니다. 예매 지위를 유지하시려면 당사로 추가 입금 바랍니다. 추가금은 기존의 프로모션(할인)이 적용되지 않는 본래가입니다. 기 지급분의 환불처리는 티몬 본사 측으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 그 불쌍한 사람이 나였구나.
일전의 오사카행 ‘비행기 표 증발 사건’은 발권 대행사가 외국에 소재했기 때문에, 자국 소비자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약관을 꼼꼼히 숨겨놓고선 ‘응- 환불 수수료 100%이고, 우리는 사전에 고지했다’ 해놓으면 그만일 문제였다면, 그렇게 세상을 대충대충 살 수 있었다면 이 세상에는 사기꾼이 지금보다 배는 많았을 것이다. 국내 회사와의 분쟁사항은 소비자원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거나, 애초에 소비자원이 회사 측으로 시정 명령을 내렸을 테다. 다만 소비자원의 권리와 의무가 국외에까지 미치지 못했을 뿐. 그래서 나는 첫 번째 사건의 원인이 그저 해외 소재 기업 간 거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국내 소재 기업을 통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 뭐야. 근데, 이게 내가 안일했던 걸까?
세상은 티몬을 질타했다. 한동안 매일 아침 신문과 뉴스레터에서는 연일 티몬 이야기뿐이었다. 딱히 알고 싶지 않았지만 이커머스 정산 구조가 원래부터 불안정했다느니, 정산금의 지급 지연은 보편적인 관행이라느니 하는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커머스 회사가 지급 정산금을 임의 운용하여 무차입 신용 거래를 한 것과 마찬가지라든지, 커머스 회사들 대부분이 산업의 미래 기대 가치를 인정받아 추가 투자를 유치하고 있었는데, 그걸로 금리 회피와 유동성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는 의혹들도 알게 되었다. 곧이어 어김없이 다른 유명 커머스 기업들의 자본 잠식 소식이 추가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그렇게 불안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해는 되지만, ‘옳다- 잘했다-’ 하고 인정해줄 수도 없는 노릇. 리스크는 결국 터졌고 시장의 기대는 꺾였다.
업계에는 정산금을 담보로 하는 신용 대출이 유행하고 있었다. 벤더사(공급자)들은 정산금이 지연 입금되리라는 것을 이미 관행처럼 받아들이고 있던 한편, 자금 흐름이 막히면 회사 운영이 어렵거나 심지어 채무 불이행으로 인해 부도 처리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쉽게 말해 어차피 들어올 돈이 있는데 늦게 들어오니 그걸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는 것, 이 또한 모던 코미디. 근데 그 담보인 정산금이 공중분해 된 것이다. 그건 내 물건을 판 정당한 대가이고, 좀 늦게 들어올 뿐 반드시 들어올 돈이었다. 정확히는 그랬어야 했다. 근데 유통사(커머스 기업)의 운영 미스 때문에 있던 돈이 증발하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그 많던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한 매출에서 일정 수수료만 떼고서는 그대로 있었어야 했던 돈이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나.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이쯤 되면 황당함을 넘어서 세상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생겨나려 한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불식시켜야 했다.
졸지에 벤더사는 판매 매출을 잃은 것은 고사하고, 신용 리스크까지 부담하게 된 셈이다. 티몬이 망하는 건 상관없지만, 그렇게 되면 수많은 벤더사들도 고사하게 될 일. 국가가 그걸 손 놓고 관망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거기에 또 세금이 투입되려나, 나는 조마조마하면서도 오묘한 관점으로 사태를 관망한다. 시장의 방만한 운영을 국가가 때우는 건 환영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말이다. ‘Too big to fail’이라는 불길한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머리 속에는 국내 금융 시장의 신용 리스크가 한 가지 추가되는 등 거창한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내 돈과 티켓은 증발했구나 하는 단출한 생각으로 수렴하였다.
‘티몬은 그래도 유명 기업이니까 기다리면 그래도 환불을 해주겠지. 지주회사인 ‘큐텐’으로부터 긴급 지원 자금이 들어오겠지, 아무렴, 시장의 신용을 잃어버리게끔 손 놓고 있지는 않겠지. 환불 될 거야.’ 이러한 낙관은 며칠 만에 산산조각 났다. 그러자 우리 단톡방은 난리가 났다. 환불이 되리라는 실낱같은 기대로 우리는 겨우 침착하려 애쓰고 있었을 뿐이었다. 티켓이 공중분해되었다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고 나서부터는, 겨우 유지하고 있던 인내심도 그 근거를 잃어버리고 만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여 울분을 토했다. 나는 그저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이전에 묻어두어 봉해두었던 것, 잃어버린 오사카의 기억이 땅을 비집고 나왔다. 그건 이번 18만 원 짜리 부조리보다는 커다란 것이었다.
여행사는 은근슬쩍 우리 티켓 구매 내역의 상태값을 ‘지급완료’로 고쳐두었다. 지급받은 적이 없는데, 나는 그 글씨가 괘씸했다. 너희가 설정할 수 있는 상태값이 한정적이라서 그런 걸까. 이런 건 홈페이지 관리자가 미리 정해둔 상태값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나 내가 이해하고 평안해야 할지, 굳이 이해하지 않고 화를 내야 할지 조금 아연실색해졌다. 여행사 측에 문의하니 우리한테 말씀하시지 말고 티몬으로 연락하라고 안내받았다. 자기들도 피해자라는 듯한 뉘앙스가 묻어났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아까와 같이 조금 아연실색해졌다. 티몬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못했다, 당연하게도. 최근 출장이 많아서, 나는 지하철 경강선을 타고 복귀하는 길 내내 전화 버튼을 눌렀다. 후배들은 대충 130번 정도 전화하니 받았다고 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96번 만에 연결되었다.
연결된 CS 상담원은 무척이나 고단해 보였다. 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실패했지만, 결국 그 대가를 최전선에서 감내하는 것은 언제나 CS팀의 롤이기 때문이다. 간신히 차분한 목소리와 태도를 유지하려는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괜히 옛날 생각이 나 갑갑해졌다. 수화기 너머 성난 고객의 목소리 앞에서, 할 수 있는 건 죄송하다는 말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마음속에 나는 CS팀이 아닌 티몬이고 완전히 타자화된 부조리이기 때문에, 아무런 양해도 호소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 목소리에 흔들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탈진했다고 해서,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더욱더 진심이 맺힌, 새빨간 송구스러움으로 범벅을 한 “죄송합니다” 뿐. 그쯤 되면 진심에 가깝게 고도화한 내 송구함이 고객을 향하는 건지, 내 인생을 향하는 건지 모호해진다. 그럼에도 울거나 화내는 건, 업무 시간 외의 일이다.
나즈막이 구매내역의 상태값을 환불 대기로 바꾸어 달라고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데 CS 상담원은 고도화된 송구스러움을 표하며 내게 공감하려 했다. 나는 괜찮다고 하며 재빨리 끊었다. 회사에 복귀하기가 싫어졌다. 가슴 속에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마구 들끓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내가 택할 것을 알고 있다. 말했듯 이제 와 울분을 토하며 부조리를 외치기엔, 묻어둔 것들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애초에 소리 높여 외친들, 바뀌는 건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따로 없다. 설마하니 휴가를 내고 티몬 본사 앞으로 찾아가랴. 그건 400만 원 짜리 슬픔의 몫이다.
가슴 안을 파 묻겠지, 다만 이번에는 되묻기가 조금 더 어려울 것 같다. 땅을 더 파야 하는데, 파야 하는데… 43만 원 만큼 파내린 땅에서 18만 원 만큼 더 파 내리자니 암반층이 너무 단단하다. 아, 어떻게 해야 할까. 실은 그 외에도 안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몰아쳐서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 8월 5일엔 알 수 없는 이유로 증시가 폭락해 주가는 곤두박질치고, 애널리스트들은 한쪽에서는 반등을, 다른 한쪽에서는 경기 침체를 말하고, 즉 혼란스럽고, 레버리지의 대가인 이자 지급일은 다가오고, 그 와중에 회사 일은 TF 하나로도 벅찬데 추가 프로젝트는 자꾸 들어오고,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은 알겠다가도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고, 여러모로 CAPA가 부족하다. 몸의 케파도, 마음의 케파도 부족해. 레버리지 2배로 주식에 물린 사람, 주담대 금리에 내리깔린 채로 버티고 있는 여느 사람들은 이런 날 훨씬 낫게 여기겠지. 나는 약한가. 그냥 쪼그려 앉고 싶다.
서울로 복귀하는 길, 지하철 경강선엔 앉을 자리가 없었고 회사로 복귀하기 싫어졌다. 그대로 출입문에 기댄 채 쪼그려 앉아, 하염 기다리고 싶어졌다. 파도가 가라앉기를. 회사 사람들은 이걸 재밌는 이슈 정도로 치부한다. 일본 여행에 두 번이나 ‘억까’를 당했으면 포기할 때도 되었다느니, 그러게 뭐하러 기를 쓰고 해외 여행을 가려 드는지 요즘 젊은이들은 도통 이해가 안 된다느니, 일본이 너를 거부한다느니, 조상 중에 거북선 노 젓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하며 저들끼리 와하하- 웃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내밀한 공감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아 근데 말야, 조금만 가만히 있을게. 썰렁한 거북선 농담 앞에서도 웃지 않을 수가 없어서 웃고는 있지만, 즐거울 리 없잖아. 내 가슴 안이 기억의 무덤이라지만, 묻어 온 게 많다고 해서 무덤 하나 더 늘리는 게 쉬울 리 없잖아. 하물며 그게 퇴비처럼 다 삭아 없어졌을 리도.
조금만 가만히 있을 게. 네 이해를 바라진 않는다.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마다 이 구구절절한 걸 다 늘여뜨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한들 그대가 이해해줄지도 잘 모르겠어. 파도가 가라앉을 때까지 조금 쪼그려 앉아 있을 게. 나는 매일 내 안에 떠 있는 나무로 된 배를 바라보고 있다. 파도에 마구 흔들리고 있다. 멀리서는 커다란 해일이 지평을 가리며 솟아오른다. 내일은 파도가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파도가 잦아들고, 그로부터 조금만 더 지나면, 여느 때처럼 내 가슴 안에는 조그마한 무덤 하나가 자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