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피드백 모임, 세 번째 후기
이번엔 어떤 후기를 남길까, 고민하느라 밤이 늦었다. 마지막 모임이 있던 오늘, 말하였듯 나는 글을 잃었다. 언젠가 한 번 예전에도 글을 잃었다는 것에 대해 쓰고 나는 떠난 적이 있었더랬다. 나는 내가 써내려 온 활자의 무게에 짓눌려 있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혹은 욕구가 떠오를 때마다 마지막으로 써내린 것의 등을 쓸어보자면 너무 길고 깊어, 까마득한 동굴을 내려다보는 듯 망연해지다. 너무 깊이 파내려 버린, 그러므로 알아볼 수 없어져 버린, 이 혼란한 낱말의 ‘덩어리’를 바라보며 사랑이 지나간 후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내 글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토록 정열적인 것, 차마 영민하지 못했을지언정 열정으로 써내린, 기나긴 ‘낱말 덩어리’를 마른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 위로 십 수 시간 동안 굽어 있던 내 등허리를 기억해낸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기에, 이건 희극적인 일이다. 우스꽝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 자조하는 말 하진 않으리. 사랑하였고, 다만 사랑은 지나간 따름이다.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흩어진다. 모래처럼 바스러지는 단어들을 바라보았다. 태어나는 문장은, 장차 태어날 문장의 예감에 의해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글이 길어진다는 것은 단순히 분량의, 즉 양적인 문제만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일관성과 논리적 정합성을 고려한다면, 글은 커다랄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것, 누수가 많은 성긴 양동이 같다. 양동이가 커질수록 막고 덧대어야 할 구멍이 따라 커가고, 그 구멍으로 문장들이 새나간다. 그러기를 반복하는 어드메, 지치고 지친 다음에야 자포자기하듯이 마구잡이로 써내려 간 나의 글들이었다.
우리 만남의 마지막은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기에, 글을 잃은 지금 나는 고민한다. 글 없이 피드백 모임에 나갈 수는 없어서, 나는 새로운 모임에의 신청 버튼 앞에서 고민한다. 쓰고 싶다, 계속해서 쓰고 싶다, 지치지 않게, 그러므로 짧게 쓰고 싶다. 그대들도 짧게 쓰라고들 말한다, 그대들도, 알아볼 수 있도록. 다만 그럴 수 없었어. 사랑에 헤매이는 간신한 마음을 잘 알고들 있겠지.
나는, 혹은 나의 열정은 내 안의 무언가를 드러내 정확히 설명하게 되기를 갈구해 왔다. 그러매 말은 길어지기를 반복했고,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내 마음에 더욱 정확한 것이 그대에게 정확히 이해되는 것일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그 두 가지 사이의 단절을 나는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바야흐로 짧게 쓰고 싶다는 것은 내 안의 무언가, 깊이 사랑하였고 그러므로 집착하였던 것, 열정과 그 그림자, 정확하고 싶은 욕심과 그로 인한 고통마저 포기해야 한다는 것. 나는 또 한 번의 경계에 서 있다. 사랑이 지나간 후에, 드디어 작별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같은 고민을 안고 있는 여러분을 만난 것이 나는 참 반가웠다. 비록 한 명이 일찍 떠나갔지만 나는 우리 네 사람을 짧다라이, 다음과 같이 엮은 채 추억할 것이다. 이런 공교로운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 말하자면, ‘쓰고 싶다, 영영 어렵고도 가슴 졸이는 그것. 쓰고 싶다, 지금의 것이 아닌 다른 무언가, 더 높은, 더 정확한, 더 근사한 그 무언가를.’
‘황’은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써내려가는 것에 오래 흥미를 느껴왔지만 영영 그것이 조심스럽다고, 부정확하거나 과장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김’은 아직 사실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두고 글을 써내려 가는 것이 어색하고 몹시 어려웠다고, 그러나 이제 그것을 쓰겠노라 말했다. 그리고 ‘오’는 자신의 마음, 그 알 수 없고 끝내 그려낼 수도 증명할 수도 없는 것을 찾아 헤매노라 말했다. 그리고 나는 위에서 언급했듯 정확하게 설명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 모임이 있던 오늘, 그녀 ‘오’는 심해 가운데로 떨어지던 빛무리 같던 글, 끝없이 피어나되 맺어지지 않는 비유의 미궁과 같았던 일전의 글들로부터 작별했노라고 말했다. 모호함에서 벗어나 이제는 분명한 것을 쓰고 싶다고, 쓰고 있다고 말했다. 공교로왔다. 사람에 누구나 저 자신을 점유하고 있는 고민과 유사한 타인의 그것 앞에서, 느슨한 우연 같은 것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나 또한 정확하게 쓰느라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으로부터 떠나가고 싶었기 때문에 나로서는 이 우연이 미묘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우리는 서로에게, 일정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이럴 땐 이렇게 해야 해요, 저렇게 해야 해요’와 같은 말을 우리는 하지 않았다. 의견은 그 자신의 것일 뿐 곧잘 정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아는 듯한, 정숙한 침묵이 적절히 우리 사이를 감돌았다. 청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는 과히 말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대해서도 그렇거니와 각자의 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신중함을 기할 줄 알았다.
글을 써내려가는 것은 어떻든 어려웁다는 사실, 우리의 피드백은 그 사실 너머로는 미치어 뻗어 가지 않았다. 각자의 합평 경험을 떠올리며, 이 중 아무도 첨삭하듯이 피드백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글에 대한 감상을 나눴고, 각자 체험한 글 경험에 대해 공감하였고, 거기에서 멈출 줄 알았다.
저마다의 고민은 서로 나누인 다음, 감미로운 공감만을 얻은 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본디 그 고민이 똬리로 머물러 있던 곳, 상념의 집으로. 그리고 고민은 그 스스로에게 필요했던 것이 다만 이뿐이었다는 것, 공감 그뿐이었고 딱 거기까지의 일이었다는 것을, 단정히 정리된 자기 집 안에서 음미했다. 말인즉, 나와 나의 고뇌는 감미와 평안 속에서 사유한다. 일찍이 느꼈던 미묘함과 약간의 공교로움, 그것은 잔향처럼 상념을 지나쳐 흘러, 흘러간다.
아직은 더 쓰고 싶기에, 쓰고 싶은 것이 남아 있기에 사랑이 지나가고 나는 쓴다. 이별할 때이다, 이렇게나 더딘 이별이었다니. 만 4년을 꼬박 쏟아내고서야 드디어 작별을 생각할 만큼 강렬했던 나의 집착이, 이제야 꼬박 그 두 글자를 떠올려 볼 만큼 흩어졌다. 그러니까 오늘은 짧게 써야지. 덧붙일 말은 이만 줄인다. 평안했던 그대들도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