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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잠의 끝에서 1

기면증 진단 후기

by 풍금이 있던 자리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다. 깨지 않는 가위에 눌린 듯 생시만큼 생생하고 생시만큼 기나긴 꿈. 안개처럼 뿌옇고 졸음처럼 나른한 매일의 끝, 진득한 백일몽에서 깼다. 의사가 기면증이란다. 약을 먹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쨍하게 부신 세상의 명도와 채도가 너무 낯설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내 영혼도 그랬다. 거리 가장자리에 서 잠깐 낯설어진 세상을 바라보다간, 지나 걸어온 길과 이내 지내온 시간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날은 평소보다 이른 주말을 맞았다. 아침에 예약해 둔 병원에 갔다가 곧장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기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핸드폰을 켰다. 나는 항상 일정이 있기 2~3시간 전에 깰 수 있도록 알람을 맞춰둔다. 잠에서 깬 직후 유튜브 볼 시간을 마련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늦게 일어난다 하더라도 기어이 할당된 유튜브를 전부 봐야 직성이 풀리는 건 아니겠지만, 여전히 기상을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는 습성 때문에 지각할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늦잠은 자지 않는다, 최근엔 오히려 잠이 부족한데도 눈이 자꾸 멋대로 떠지곤 다시 잠에 들지 못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준비를 미루느라 지각하기가 일쑤이고, 나의 아침은 자주 달리는 풍경이다. 이런 사정으로 이젠 아예 질릴 때까지 몸이 놀 수 있도록 아침 시간을 마련해주기로 한다, 육아에 지친 어른처럼. 떼쟁이 어린아이 같은 나의 육신은 의식이 뱉는 말과 지시를 좀체 따르지 않는다. 나는 육신을 혼내기도 윽박지르기도 하고 어르고 달래보기도 하며, 자주 철없는 아이처럼 대하곤 한다.


일어나자마자 주식을 확인하고 유튜브를 보고 커피를 마시고 화장실에서 웹툰을 본 다음,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는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의 공존. 아침은 반드시 이런 순서를 따른다. 하지만 결혼식이 있는 날의 아침 풍경은 평소와 아주 약간 다른 루틴을 따르는데, 아무래도 머리 손질을 해야겠기 때문이다. 그래야 하는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공적인 자리가 있을 때마다 머리 손질을 했다. 그래봤자 드라이를 하고, 왁스를 바르고, 스프레이를 뿌리는 것 정도라지만, 평일 아침엔 그 20분 남짓한 겨우가 식사보다 귀한 법이므로 공적인 일정이 있을 때만 행하기로 겨우 협의한 실정이다. 정작 나는 덮은 머리보다 깐 머리의 나를 좋아한다.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좀체 몸이 내 청을 들어주지 않는 것일 뿐, 하여 어딘가 소외되는 기분이라고 말함이란 몹시 요상스럽다.


내 하루는 아주 규칙적인 모양을 띤다. 그 발자욱을 위에서 바라본다면 필시 오륜기를 닮았을 터이다. 날마다 요일마다 이미 길 위에 깊이 팬 발자국을 따라 걸어가는, 반복되는 삶의 품속에서 나는 평안과 안도를 느낀다. 권태보다 커다란 위안을, 그러므로 나는 대체로 행복하다. 내 루틴 안에서 나의 삶과 몸은 저절로 움직인다, 따라서 시간은 저절로 흐른다. 천재지변이 아니고서야 매일 아침 회사로 가고, 심히 아픈 것이 아니고서야 퇴근 후 체육관에 간다. 쉼을 위해 빼둔 시간은 없다. 오히려 그 끝없이 빠져드는 멈춤을 삶으로부터 몰아내기 위해 루틴이란 고루한 것은 태어나게 마련이므로. 출·퇴근길엔 책을 읽기로 한다, 책을 좀체 읽지 않으려 하는 나의 나태를 위해 미리 고정된 시간을 안배해 두어야 했다. 그 외엔 약간의 약속과 예기치 않게 내 삶을 침범하는 회식 및 출장이 있었을 따름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나와 연락하지 않더라도, 그때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높은 확률로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쇼핑을 잘 하지 않는다. 쇼핑은 성가시거니와 그것을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할 때까지 미루는 편이다. 물은 쿠팡에서 시켜 먹지만, 그래서 마실 물이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있고 그게 공교롭게도 오늘이다. 내일은 머리를 깎아야 하는 날이고, 나는 12년째 같은 미용실을 다닌다. 그 미용실과 나는 충분히 긴밀하거니와, 새로운 변화를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는 그것을 성가셔하므로. 학교를 졸업하고 이미 타지로 이사 온 지 오래지만, 새로운 미용실을 찾는 것보다 이제 멀어진 나의 미용실에 가기 위해 따로 시간을 떼어두는 편이 좋다. 원장님과 나는 이제 아무런 대화조차 필요 없는 사이가 되었다. 2주에 한 번씩, 똑같은 스타일로 머리를 자르기 때문에 그녀로선 더 이상 내게 물어볼 것이 남아있지 않다. 이렇듯 삶은 반복된다. 물이 떨어지고 뒤늦게 물을 시키는 것마저도, 그리고 격주 주말엔 미용실에 가서 똑같은 스타일의 머리를 자르는. 오늘 물을 시켰으니 아마 3주 후쯤이면 물이 떨어질 것이고, 내일 머리를 자를 테니 다다음 주말에는 머리를 자르고 있을 것이다. 내 삶은 아주 명확한 소나타 형식이다.


나는 몹시 나태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내 의식이 아닌 내 육신만이 그러하다는 점, 그로써 이 두 가지 상충하는 요소의 결별과 대립이라는 지독한 역설이 내 삶의 악장의 메타포가 되어버렸다는 것에 있다. 나태가 변화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 탓인지, 무기력함 탓인지, 또는 건망증 탓인지는 모르겠다. 기억하기로는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나는 가정통신문이나, 각종 신청 서류, 그리고 납부 고지서가 어렵다. 그런 것은 일상 속으로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사소함보다도, 그것의 느닷없음이 내겐 터무니없을 정도로, 부조리할 정도로 크게 다가온다. 고로 나는 연체에 아주 익숙하다. 대여한 도서, 공과금 및 주민세, 서류 제출 등 무엇이건 연체한다. 눈앞 잘 보이는 곳에 그것을 배치해 두어도, 손가락은 좀체 움직이지 않았다.


손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 게 아니다. 일찍이는 그런 시절도 있었지만 나는 무기력하지 않다. 의식과 육신 사이의 연결이 희미하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그렇게 뜬 눈으로 연체를 일삼는 짓은 다 표현키 어려울 정도로 질리는 일이다. 지긋지긋한 일이란 말이다. 이럴 때 의식은 육체 안에 갇힌 무력한 영혼처럼 여겨진다. 인식 속에서 이원화되어 버리는 것. 누군가에겐 의식과 육체가 한 몸처럼 가까이 있겠지만, 그 둘 사이의 불화와 덜커덕거리는 불협화음은 우리 둘을 떨어진 채 바라보게 한다. 불편을 통해 거기 희미하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구분 및 경계선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 의식과 육신이 한마음으로 정다이 나태한 것이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내 근면한 의식은 불합리한 육체에 갇혔다. 쇠창살 속의 영혼은 악을 쓰고 있지만 사방 십 리 안에는 그것을 들을 귀가 없는 듯한 광막함. 의식은 제 말을 들으라고 비명을 지르지만, 그것을 실천할 육신은 묵묵부답이다. 자기 육신 안에 갇힌 영혼이 느끼는 부조리함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내 안에서는 대답 없는 부름과 소리 없는 아우성이 넘실거리고, 주변의 세상은 고요하기만 했다.


루틴은 내 영혼이 육신을 두고 벌인 중대한 실험이었으며, 아주 성공적인 실험으로 판명 났다. 이 사소한 것을 위해 내가 바쳐온 시간은 그리 짧지 않았다. 누군들 자기 의지대로 곧잘 육신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라지만, 이제 다들 알게 되었듯 내 경우는 그 정도가 몹시 고약하기에. 무용한 의식은 육신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없으므로, 나는 육신에 미리 정해둔 루틴이란 일정표를 건네주었다. 아침에 일어나 집에서 나서는 시간부터, 타게 될 지하철의 시간까지 모조리 다 적어둔. 심지어 언제 유튜브를 끄고, 화장실에서 양치를 마쳐야 하는지 맞혀둔 분 단위의 알람마저. 정해진 시간의 정해진 루틴을 따라 육신은 저 알아서 움직이고, 내 영혼은 그 꾸준함 앞에서 드디어 쉴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이의 간격은 너무 멀었다.


일찍이 얼마나 나 자신을 부정하고 경멸하였을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오래도록 내 육신을 조종할 수 없는,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이지 못하는 무력한 왕이요, 무용한 관찰자였다. 한때는 육신이 의식을 거절한다고, 거역한다고, 반역을 꾀한다고 생각했지만 더는 아니다. 육신은 미리 정해진 루틴대로 오늘도, 어제도 잘 움직이고 있음으로써 우리는 최소한의 화해에 이를 수 있었다. 육신이 의식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저 너는 너무 멀리, 바다 저편 너머에 있었고 우리 사이에 해저 케이블은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거꾸로 의식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내 육신은 움직였고, 그렇게 피로와 싫증을 덕지덕지 묻힌 채로도 매일 나는 체육관에 ‘도착해 있던’ 것이다. 너무 피곤해 보인다는 말에 그렇다, 정말 피로하다고 말하면서도 이미 정해진 대로 몸은 절로 움직일 수 있었다, 나와 상관없다는 듯 외따로이. 쟁기를 인 소와 같은 나를 두고 누군가는 ‘근면하다’라고, 정말 그렇다고 힘주어 말하곤 했다. 나로서는 가당치 않은 말이지만, 사람들은 자꾸 내게 용기를 북돋으려 들었다. 나의 나태란 자기 부정도 뭣도 아니라 그저 메마른 ‘사실’로서 명백히 그러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럴수록 자꾸 그를 부정하며 위안하려 들었다. 해학적인 일이다. 그렇다 하여 열심히 설명해 본들 사람들은 이 낯섦 앞에서 의문이나 의혹, 또는 또 다른 연민을 느끼게 마련이라 언제부턴간 웃고 치운다. 네 말이 맞다, 나는 정말이지 근면한 인간이구나!



예상할 수 있듯 이 루틴 안에 새로운 것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사이엔 바다와 시차처럼 까마득한 시공간적 거리가 있다는 것. 그러므로 설득하고 협상하는 일, 육신이 스스로 원할 때까지 집요하게 요청하고 기다리는 것에는, 저편 바다 너머로 목소리를 건네 보낸 다음 다시 응답의 메아리가 되돌아 퍼질 만큼의 긴 시간이 필요하다. 답답했을 것이다, 내 삶에 너무 가까이 있는 누군가는. 내 일상의 군데군데 자리 잡은 나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서는 내가 너무 게으른 동시에 완고하다고, 그저 나태하고 또 나태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다. 그는 나를 이해하려 애쓸 뿐, 결코 공감할 수 없을 까닭이다.



“선생님은 기면증입니다.”


의사의 이 말이야말로 내겐 구원의 메아리 같았다. 나는 구원이란 말과 친하지 않아 자주 쓰려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나 스스로가 아닌 바깥에서 찾는 것이야말로 가당치도 않거니와 결코 그 몫을 양보해 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건 내게 참으로 기꺼운 동시에 낯선 단어이다. 그것이 흔하고 빈번해질수록, 그것이 지니는 가치와 위계는 산술적으로 감소하게, 즉 흔하고 검소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아껴온 낱말이고, 내가 아껴온 만큼의 환희를 나는 이 순간 가리킨다. 가리킬 수 있게 된다.


내 육신의 부조리. 의식의 근면성에 대비됨으로써 더욱 열렬히 타오르는, 근면한 의식과 나태한 손가락이라는 모순의 원인은 한순간 자명해졌다. 갑자기 모든 것이 환해졌고, 더없고 이를 데 없이 이해되었으며, 급속도로 화해되는 것을 나는 그때 느끼고 있었다. 미결로 남겨두곤 낡은 철제 서랍 속에서 먼지 쌓여온 미제 사건과, 공소시효를 한참 지난 때늦은 범인의 자백 같은. 허나 퍼즐을 맞춘 건 내가 아니었고, 그것은 저절로 맞추어지며 매우 빠르고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완성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잠깐 숨을 고르며 차근차근 파악해 보기 위해 멈춰보려 했던들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재빠름과 역동성과 환희가 현기증처럼 이지러지자, 기어코 내 입은 구원이란 단어를 택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자주 피곤했다, 아니 매일, 아니 단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하지만 그것이 단 하루의 예외 없이 꾸준할 수 있는 것이면, 나로선 그 바깥의 것을 알 수 없으므로 그것만이 자기 삶의 전부이자 표준, 즉 가장 보통의 상태로 자리한다. 피곤하다는 것을 모를 리야 없지만, 내가 알 수 없는 건 그것이 정상 궤도를 충분히 벗어난 이상 상태라는 사실이다. 자기 경험 내에 비교군이 없으므로 불합리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일견 다행이기도 하지만, 그러므로 그 상태에 적응하는 것만이 택할 수 있는 전부라 그 자리에 오래 남게 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부분이다.


눈은 마음뿐 아니라 몸의 창이기에 우리는 항상 피로한 자의 눈을 바라보게 되듯이, 다만 그의 피로를 우리가 엿볼 수 있던 것은 눈동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크기의 변화에 있었다. 늘 같은 눈을 한 상태에서 우리는 그의 변화를 잘 감지할 수 없다, 심지어 그 자신도. 내 눈은 항상 반쯤 감겨 인상은 게슴츠레한 편이다. 서부극 쇼츠에서 자주 보곤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장씬의 눈빛 같다고나 할까. 근데 그것도 사람 나름이라 그리 좋은 인상을 줄 수 없었다는 건 거울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고, 그것이 자기가 뜨일 수 있는 전부인 양, 윗 눈동자의 반이나 가린 눈꺼풀이 일으키는 인상은 아무리 애써도 칭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약을 먹고 약효를 기다리며 온갖 궁금증의 나래를 펼치던 중 가장 먼저 약효를 느껴온 것도 눈꺼풀의 감각이다. 눈의 위아래에서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듯, 별 힘들이지 않고 산뜻하게 뜨인 눈꺼풀과 또렷한 눈동자의 감각이 나는 놀라웠다. 오래돼 익숙해진 것으로부터 느닷없이 전혀 다른 모습을 알게 되었을 땐 그러기 마련이다.



세상은 자기 전과 후 모두 불투명한 유리와 안개처럼 흐릿했다. 다시 한번, 그것이 볼 수 있는 풍경의 전부라면 그것을 보편이자 실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거리 위로, 여느 때와 같아야 할 세상이 전혀 다른 채도와 선명함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바라보는 심경은 설명한들 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경험 바깥의 세상을 알 수 없으며, 자신을 세상의 유일한 기준으로 여길 수밖에 다른 방법일랑 없는 갇힌 존재라는 말이 지금 이 순간처럼 와닿은 적은 없었다. 나의 세상은 굳이 비유하자면 미세먼지의 세상이다. 먼지가 사방 어디에나 공평히 끼어 있으면, 거기 한 줄기 햇살이 비치지 않는 한 잘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


누구의 마음속에나, 아마, 고교 시절은 엎드려 조는 교실의 풍경일 것이고 그 시절이라면 누구나, 아마, 아침에 자고 일어나 강건한 개운함을 느껴볼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다만 나의 하루는 억지로 일어난 직후로부터 관자놀이에서 느껴지는 선명한 맥박과 늘 함께 간다. 잠이 너무 적어도, 너무 많아도 꼭 그러했다. 수면 부족은 아니다. 나는 늘 8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그러므로 많이 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일어난 직후의 고된 피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허나 내겐 그 상태로 하루의 시작과 끝이 일정히 이어진다. 기상과 동시에 머리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약동하는 맥박은 적당한 힘과 꾸준한 리듬으로 두드리는 망치를 연상시킨다. 편두통을 달고 살았고 머리는 언제나 무거웠다. 그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무게이다, 그러므로 내 머리가 커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일찍부터 느껴온 만성 피로의 감각, 두개골 안쪽에서 모든 것을 보고 느끼는 뇌의 어느 부위가 꾸물렁거리는 감각이 자주 분명하게 걸리적거리곤 한다. 점성이 낮은 물 속이었다면 수월히 통과하며 감지되지 않았을 움직임이, 진득한 액체 속에선 커다란 저항을 받아 굴곡진 파동을 낳게 되므로. 머리를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뇌의 앞쪽 부분이 자주 꾸르륵거린다, 진득한 슬라임 안에 넣은 쇠공을 굴리는 듯. 말귀를 알아듣기가 어려울 때가 왕왕 있었고, 특히 글귀는 단번에 이해되는 법이 없다. 무언갈 보고 이해하려면, 미간이 강하게 오므라든다. 아직도 내가 자주 찡그리는 까닭은, 그러므로 안 그래도 그다지 관계에 유리하지 않은 인상에 흉터 같은 획 하나를 더 긋게 되던 것은, 그게 집중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같은 국어 지문을 두어 번 보며, 글귀를 눈 속에 밀어 넣은 다음 되짚어 분석해야 한다. 글귀의 형태와 의미가 동시에 뇌리 깊은 곳으로 배달되지 않는다는 퍽 유감스러운 사실, 뜬 눈으로 점자를 핥는듯한 기분. 글의 형태만을 인식하며 의미를 더듬거리다 보면 이미 피로해 반쯤 감긴 눈은 더욱 쉽게 피로해지곤 한다.


자주 졸음으로 빠지는 것도, 이 맥락에선 전혀 이상할 것도 아니다. 더구나 고교 풍경은 태반이 엎드려 자는 풍경이므로, 이상함을 인식시켜 줄 수 있도록 비추어줄 무엇도 없다. 꼿꼿이 앉아 있는 그 자세 그대로 졸았고, 선생님은 자주 복도로 나를 보냈다. 그러면 선 채로 졸았다. 수험 생활은 수능 공부와 잠의 반복이었다. 모의고사를 풀다 잠들고, 수면에서 뭍으로 빠져나듯 깨어나 제 따귀를 치고 다시 공부하는 일의 반복. 헤비메탈을 아주 큰 소리로 듣느라 주변 친구들의 핀잔도 많이 들었고 야간 자습 동안 서서 공부하느라 종아리가 아팠다. 그러면서도 졸 수 있는 건 차라리 장할 지경이다. 귀청이 터질 듯, 이어폰과 귀의 좁은 공간을 비집고 나올 정도로 커다라이 울려 퍼지는 헤비메탈의 기타 리프는 자주 내가 아닌 내 주변 사람들의 몫이었다.


그렇게 수능이 다가왔고, 어김없이 3교시 영어 듣기 도중에 나는 기절하듯 잠으로 빠진다. 이건 아마 여러분도 공감할 수 있을 텐데 깊은 잠의 한가운데에서, 아직 그 이유를 채 떠올리지 못한 상태로도 반드시 깨어나야만 한다는 긴박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하얀 점액 같은 잠은 우리를 그리 쉽게 놓아주지 않더라는 사실을. 영어 듣기가 끝나고도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서 숨을 들이켜며 나는 잠에서 깼다. 오래전 일이므로 정확히 얼만한 시간이 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만, 그때 분침이 가리키던 지점이 내가 27번 지문을 풀고 있어야만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 것만은 또렷이 기억한다. 수험생은 분 단위로 자신을 훈련하기 때문이다. 뒤늦게 따라잡으려 한들, 듣기를 전부 날려버렸으므로 무용한 일이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대신 점심 도시락을 너무 푸짐하게 싸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갔다. 혈당 스파이크라고쯤 생각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나오며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곳은 어머니께이다. 기면증을 확진 받았고 약을 처방받았노라고, 먹지 않는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이 약은 남은 평생 먹어야 한다고. 그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아팠다. “네가 왜 도시락을 그렇게 많이 쌌냐고, 그것 때문에 졸아서 수능 망했다고 칸 게 이때까지 가슴 속에 남았는데, 우린 그런 줄도 몰랐다…” “엄니는 그걸 안직도 기억하오.” “하모… 그걸 내가 어찌 잊겠노… 가슴이 씨-커멓게 탔다. 학원도 못 보내줘놨는데 지 알아서 잘 해나가는 게 그저 신기하고 고맙디마는, 내가 다 망치뿠다고 생각하니까 엄마는 아팠다.” 그 해묵은 일이 1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끝났다는 것보다, 아직도 그것을 기억하는 그녀가 너무 설웠다. 그래, 이상했지, 뭔가가 이상했지하면서 자꾸만 읊조리는 그녀를 가만히 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가슴 속에서도 그 단 한 가지, 가장 명백한 단서 하나만으로 삽시간에 퍼즐이 다시 정렬되기 시작하며, 가슴 깊숙이 안도가 차오르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왜 자도 자도 피곤해 보이던지, 왜 그렇게 예민했던지, 왜 그렇게 만사 귀찮아했던지, 그걸 그저 가만두고 볼 수밖에 없었던지. 이제 와 생각하니 이상한 게 많았다고 읊조리는 그녀의 말 속에 선뜻 기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재수 시절 이야기는 굳이 늘여볼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부하고 기절하듯 잠으로 납치당하고 일어나 제 따귀를 치는 삶의 연장이었으니. 그런 자신에 대해 치밀어오르는 경멸과 분노는 역설적으로 나의 좋은 힘이었고, 내가 지닌 몇 안 되는 재능은 그러한 정신적인 부정에 관한 미련한 인내와 마구 휜들 끝내 부러지진 않을 지구력뿐이다. 재수는 잘 치렀다. 전년도의 교훈으로 점심을 거의 먹지 않다시피 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경멸과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아 공부했고, 그건 이상하게 쾌감이 이는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고집 센 무소처럼 말을 듣지 않고 자꾸 멈추어 퍼지려고만 하는 육체가 움직여준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영혼으로서는 읍소할 만한 일이니까.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 중, 후자에는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는’ 동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인간이 자기 몸으로 실험한 것 중, 그 육신을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을 자기 경멸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면 그 사람으로서는 오래도록 그것을 선택하고, 점차 그것의 기원을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제 와 일찍이 생각하던 바와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그것을 돌아본다. 도파민이 잘 나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도파민 수용체가 너무 과활성화되어 도파민이 너무 빠르게 재흡수되어 버린 탓인지까지는 여기 앉은 자리에서 명확히 할 수는 없는 것이나, 추측건대 후자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한다. 처방 약의 약효 중에서 눈에 띈 것은 도파민 수용체를 억제하는 기전인데, 약효가 돌기 시작한 몸은 놀라울 정도로 고요했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듯한 고양감이라든지 자신감이 아니다. 무엇에든 군말하지 않을 듯한 육신의 다소곳함이야말로 내겐 터무니없는 일이다. 이 기쁨과 허탈함, 마찬가지 놀라운 심경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답답하다. 누군가에겐 터무니없을 정도로 우습게 다가오겠지만, 나는 자가 실험을 위해 연체된 고지서를 바라보며 몸에게 명령을 내렸다. 몸은 아무런 반향 감정 없이 그것을 수행했다. 집 안 청소를 조금 해볼까? 성질이 고약한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부드러이 물어보았고, 몸을 의자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마치 귀가해 재빨리 의자에 앉으려던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은 더 들뜬 채로, 동시에 이것이 착각이거나 일시적일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생각하는 조심스러운 사람의 그것처럼, 빨래 정리와 설거지를 시켜보았다. 아무런 감정 없이 몸은 그것을 이행했다. 그토록 많은 반감과 저항을 일삼던 몸의 자아가, 고요한 침묵 너머로 이미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요란하게 묘사한들 내가 되찾은 것은 여전히 터무니없을 정도로 소박한 것이다. 밥을 먹고, 곧바로 설거지를 하는 정도의 삶.



무언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비교군이 필요하고, 육신과 감각의 영역에서는 그 내적인 비교군을 찾기가 어렵다. 과활성화된 도파민 수용체가 약으로 인해 진정됨에 따라, 의식의 말을 육체가 묵묵히 수행하게 되는 이 사소한 세계에 이르러 내 과거는 새로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도파민을 통한 보상 체계가 잘 작동하지 않았기에 분노와 복수심처럼 강한 감정을 통한 동기 유인만이 유효하게 작용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는 동시에, 조금 허탈한 결론에 이른다. 이렇게 별것 아닌 것, 겨우 약 한 알의 결과를 위해 내가 쌓아야만 했던 것들이 너무 많고 지난했다는 생각. 그리고 제아무리 그것이 충분했다고 한들 겨우 약 한 알의 결과를 넘어서기는 어려웠다는 생각. 다들 약 잘 챙겨 먹으라고 하는 말이다.


나는 의지를 몸과 정신의 불화 사이에서, 정신이 자기 몸을 타도하고 매 순간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열정이라고, 그건 대결이고 주어진 것에 대한 일구어낸 것의 승리라고 생각해왔고 그것을 긍정했다. 별다른 작용 없이도 매 순간 끊임없이 느껴지는 몸의 감각을 타도하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정신의 꾸준함에 더불어 그것을 가능케 하는 체력과 지구력이 필요했으므로, 포기나 나약함의 있을 자리를 허락지 않았고 가혹한 자기 극복만을 긍정했다. 내가 의지를 긍정했던 까닭은 그것이 나의 오로지 필요였음이며, 자기 실패와 나태를 용인하려 한들 그것과 타협할 수 있는 가운데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깊이 아나, 그러므로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경직되고 엄격하며 편향된 태도가 그저 그림자처럼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또한 안다. 지금까지 열렬히 긍정해 오던 것을 정반대로 해석할 수 있음이란 언제나 기쁨이자 슬픔이다. 해석은 언제나 감각에 후행하기 때문이다.


아마 짐작건대 주변인에게 이 생각을 전하면 이렇게 답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그로 인해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고 그건 이미 지나간 것이며, 이제는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될 수 있을 테니 차라리 긍지와 추억으로 삼는 편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그렇게까지 정교하게 비판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허나 의지, 그것만을 떼어놓고 보았을 땐 모쪼록 좋음에 가깝다는 인상을 낳지만, 나는 그 과정이 내게 남긴 것을 알아본다.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없으며, 자신의 나태를 하나 빠짐없이, 그리고 높다라이 경멸하는 자로서는 타인의 티끌만 한 그것에 조그마한 긍정조차 내비칠 수 없었다는 것. 그러한 일련의 것이 내 성격과 가치관으로 자리해있다는 것을, 나를 가혹한 인간으로 만들었음을 돌아본다. 위안과 멈춤을 긍정해 줄 수 없는, 힘들면 쉬었다 가라는 그 간단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없었던 딱딱한 인간이 되어버렸다는 것. 이건 내 과거가 남긴 그림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내면적인 문제를 그 자신이 채 드러내놓지 않은 이면에서부터 분석하는 습관, 실로 지금 이 긴 글과 정확하지 않을지언정 상세한 자기분석도 내 과거의 꼬리 긴 그림자가 아니었겠는가. 나라는 이상 인물을 해석하고 유도해 내기 위해, 내 안 깊숙이 파고들어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 거기에도 모두 명암이 존재하는 딴에 나는 그림자를 응시한다. 좋음은 부러 그리할 필요 없이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내 오랜 습관일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 당시의 내게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의지와 열정과 끈기, 고난에도 지칠 줄 모르는 정신력 같은 것이라기보다는, 내 증세를 의심하고 진단을 강하게 권고하고 끝내 그것을 관철할 수 있는, 강건하고 고집스러운 인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기면증 진찰을 위해 1년이 넘게 나를 설득해야 했다. 전기료와 가스비도 연체하는 인간이, 아프지도 않은 일에 병원 예약부터 잡기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니까. 심지어 아플지언정 참아볼 만한 것에는 병원을 먼저 떠올리기보다 인내하기를 손쉽게 택해온 사람에게는! 더구나 그것이 스스로 자각할 수 없는 희미한 것이었던 이상, 내가 아무리 상세히 써도 지금 겪고 있는 것들을 온전히 전달할 수 없을 것처럼, 그때의 내게 그것을 미리 알려줄 방법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 내 멱살을 쥐고 강제로 병원 안으로 던져버릴 수 있을 만큼 심지 굳은 사람이 있었더라면 어땠을지 심심하게 생각한다. 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들과 결말이 명확한 행복을 위해 지나와야만 하던 것, 결과와 현실 사이를 가로막는 망설임과 외면을 찢고, 거기 수반될 약간의 불쾌와 잠깐의 원망 따위 무시해 버릴 만큼 담대한 인간이 내게 주어졌더라면 나의 지금은 어디로 흘러와 있었을까. 공감하기 어려워 우습게 들리겠지만, 그건 아직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우리의 이상이란 일찍이 가지고 싶었으나 가질 수 없었던, 찾아 헤맸으나 찾아내지 못한 인간의 모습이며, 인간은 그렇게 자신이 바라던 어른을 서서히 자기 스스로에게 투영하고, 그렇게 되어가기를 희구하는 동시에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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