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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은 Feb 20. 2019

시사교양 방송작가가 하는 일, 일, 일

내게 어울리는 일은 뭘까? 업에 대한 고민과 나에 대한 들여다 봄

굉장히 오랜 고민과 치열한 내적 갈등 끝에 뉴미디어로 넘어오긴 왔다. 그런데 이곳은 또 새로운 한계가 있는 곳이다. 촬영과 제작을 하면서 기획도 하고 자막도 쓸 수 있는 사람이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다. 역량을 발휘할 일이 한정적이다. 그러니까 결국 작가라고 해봤자 PD 보조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고, 방송에서 하던 일을 거의 비슷하게 하면서도 오히려 성취감은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뉴미디어에서 작가라는 영역에 그렇게 큰 투자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다. '미디어 분야'에 반드시 종사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있는지, 어쩌면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그동안 해왔던 일 중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은 어떤 분야이고 어떤 곳에서 어떻게 성장시켜나갈 수 있는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놓고 생각해야만 하는 때가 왔다. '업'에 대한 고민과 '나'에 대한 들여다 봄.




방송작가는 참 많은 일을 한다. 기획도 하고 MD도 하고 마케팅도 하고 스토리텔링도 하고 취재도 하고 PD 역할도 하고 홍보도 한다..... 이 수많은 일을 막내작가 때부터 닥치는대로 하니까 웬만한 일에도 끄떡없다. 멘탈 갑. 거절 당하는 것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철면피가 된다. 시시각각 무너지는 계획도 그렇다. 계획은 지키려고 짜는 게 아니라 안 지키려고 짜는 것임을 알게 된다. Plan A가 제대로 지켜지는 일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대부분 Plan B부터 Plan Z까지 짠다.


제일 힘들고 공들이는 것이 (사람 피 말리고) 바로 출연자 섭외인데, 필요한 페르소나를 먼저 만들고 그에 들어맞는 사람을 무작정 찾는다. 없는 것은 없고 없어선 안 된다. (없다고 말하는 순간 = 나 능력 없는 작가예요 도태각) 구글을 블럭 걸릴 정도로 다 훑고 온갖 카페에 전화번호 올리고 블로그에 댓글 쓰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T.T...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연락처 찾는 것도 하늘에 별따기요, 가까스로 연락되면 무보수 촬영을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득해내고 만다. 커뮤니케이션 및 협상 능력이 저절로 길러질 수 밖에 없다. 교양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ONLY 전화로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취재해야 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법, 원하는 답변을 유도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시청자들에게 소구력 있는 좋은 아이템을 찾는 것도 온전히 작가의 몫인데, 경제, 사회 뉴스 면 매일매일 다 보는 것은 물론 지역별 맘카페에도 가입해서 동향을 살피고, 전혀 새로운 분야라면 정의와 발전 단계까지 머릿속에 쫙 그릴 수 있도록 꼼꼼히 자료조사도 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을 작가 혼자 거친 후, 촬영구성안을 바탕으로 연출 팀이 촬영을 나가고, 촬영을 마치면 촬영 영상을 20~30초 단위로 푼 다음, 편집구성안이라는 것을 쓰는데 이 편집구성안을 토대로 촬영 다녀온 PD 인사이트를 보태서 며칠 밤을 새워 가편 영상이 완성된다. (중간중간 팀장 시사, 국장 시사는 기본)


가편 이후 자막도 쓰고 대본도 쓰게 되는데, 중요한 건 영상은 자막의 할 일이나 대본의 할 일을 침범하면 안되고, 자막이나 대본 또한 영상의 할 일을 침범해선 안 된다. 영상이 할 수 없는 부분, 자막이 할 수 없는 부분, 대본이 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고 이 3가지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것이 좋은 결과물이 된다. 시작부터 과정, 그리고 끝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고, 방송작가가 쉴새없이 일하는 이유이다.





이 수많은 일 중에서 내가 가장 잘하고 보람을 느끼는 일은 어느 단계일까? 어떤 단계의 일을 잘한다면 왜 잘하는지, 어떤 단계의 일이 싫다면 왜 싫은지 그 이유를 찾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걸 알자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어떤 일에 흥미를 갖고 있고, 어떤 일에 재능이 있을까? 아니 재능이라는 건 뭐지? 아무래도 천재성은 없는 것 같은데, 있었다면 이미 발휘를 했을 테니까.


가장 초심으로 돌아가보면 내가 방송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한 재능을 결합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래, 그렇다면 나는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 너무 흔해서 이제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콘텐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그렇다면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영상과 디자인, 글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만들면 내가 지치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꼭 내 경력을 모두 인정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쓸모가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고 싶었다. 미디어라는 울타리를 넘어 더 큰 영역에서, 영상과 디자인, 글을 모두 활용하며, 가치 있는 메시지를, 기계처럼 찍어내는 것보다 좀더 크리에이티브하게 만드는 일. 자, 이제 페르소나를 정했으니 그동안 해오던 대로 '어떻게든' 찾아내볼까? 방송작가를 하며 배운 것. 아무리 막막해도, 도저히 없을 것 같아도, 절대 안될 것 같아도 '안 되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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