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틀에 쫄지 말고 나의 이야기를 하자
가끔 어떤 질문에 머릿속이 새하얘질 때가 있다.
끝나고 나면 꼭 아, 그건 이걸로 연결해서 대답했으면 되는데 싶은 것들.
하지만 타이밍은 지나갔고, 나는 아무 말 못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가장 큰 이유는 질문 언어 안에 내포하는 의미를 언어라는 형식에 갇혀 순간적으로 놓쳐버리기 때문이고,
그건 내가 너무 과하게 긴장해서이기 때문이고 어쩌면 순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번 경험하고, 스스로 돌아보고, 연습에 연습을 하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리라.
방송작가는 주로 질문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질문을 올바로 하는 연습을 한다. 올바른 질문에도 흐름에 자꾸 엇나가는 답변을 하는 인터뷰이가 있는데 그러면 참 답답하다. 외려 조금 어설픈 질문을 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원하는 답변을 쏙쏙 내뱉는 인터뷰이들도 있다. 너무 고맙고 기회가 있다면 다시 인터뷰 요청을 드리고 싶기까지 하다.
방송작가를 하면서 전화 취재나 현장 인터뷰를 숱하게 했다. 보통 한 테잎에 서른 명 이상 인터뷰가 담기고 거기서 쓸만한 인터뷰는 몇 개 없다. 그러니까, 좋은 질문과 좋은 답변은 원래 어렵다. 잘하는 사람이 드물다. 수만 시간의 프리뷰(촬영 영상을 20~30초 단위로 풀어내는 일)를 하면서 쓸 수 없는 인터뷰를 보며 욕도 많이 했지만, 역으로 내가 저 인터뷰이였다면 원하는 답변을 찰떡 같이 해줄 수 없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좋지 못한 사례들의 특징을 분석해서 저것만 피하자는 목표가 생겼다.
1) 주어가 없거나 맺음말이 없다.(완벽한 문장의 형태가 아님)
2) 구어체가 잦으면 좋지 않다.
3) 쓸데없는 말을 같이 한다
4) 겹겹겹겹겹문장
5) 아예 의도와 벗어난 답변을 한다.
예를 들어, 김치찌개 맛집 촬영의 경우 "여기 김치찌개 어때요?"라는 인터뷰를 한다. 베스트 답변은 이거다. "이 식당의 김치찌개는 다른 곳보다 고기가 많이 들어있기 때문에 국물이 진해요." 이유가 명확한 답변.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한다. "맛있어요" 두리뭉술하다. 이어지는 왜냐는 질문에 "조미료를 넣나?" 의도와 벗어난다. "김치가 맛있어가지구.. 고기도 많이 들어있어가지구.." 맺고 끊음이 없고 과도한 구어체 문장이다. 또는 "여기 김치찌개는 고기가 많이 들어있는데, 고기가 많이 들어가야 맛있는데, 고기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 돼지고기가 왜 김치찌개랑 잘 어울리냐면요..." 한 문장엔 하나씩만 이야기하자.
나도 말보다는 글에 강한 스타일인데다 말이 워낙 약해서 방송작가를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지금도 좋은 예를 보면서 따라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좋은 단어를 찾지 못해서 쓸데없는 말을 붙이는 편이고, 편한 자리에서는 그나마 똑부러지게 이야기하는데, 극도로 긴장하면 정신 나간 답변도 한다..... T.T (2018 MBC 연예대상에서 횡설수설하던 기안84 느낌) 한창 매일 몇 시간씩 전화 취재하고 프리뷰 수십 시간씩 할 때는 그래도 입이 좀 풀렸었는데, 요즘 이직 준비하면서 집에 혼자 있은지 너무 오래돼서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1) 같은 의미를 가진 질문들 리스트 뽑아보기
2)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로 한 문장에 하나의 메시지만 담기
3) 더듬거리지 않을 때까지 실제로 말해보기
4년동안 방송작가로 일하면서 터득한 '좋은 질문하기'부터, 좋은 인터뷰이를 취재했던 경험을 이상적인 모습으로 설정하고, 그들의 표현을 쏙쏙 빼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