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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은 Sep 13. 2021

나의 작은 세계가 부서진 순간

이래서 여행을 가는 거야, 이러려고

2017년 1월, 페이스북에 남겼던 글


2016년 여름, 나는 호주에 다녀왔다.

리우 올림픽으로 일주일 정도 방송이 취소되어 열흘 정도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가지고 있는 돈에 맞춰서, 한국과 최대한 먼 곳을 찾았고

알아본 날 그대로 시드니 IN 멜버른 OUT 티켓을 끊었다.


호주가 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라는 걸 이미 결제를 마치고 난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래서 티켓값이 저렴했다는 것도.


적도 아래의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 채로

나는 적도를 넘어, 호주에 도착했다.


Martin place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충격은 시작되었다.

한국인들이 시드니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많이!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한국인 무리가 시티로 들어가는 지하철에서부터 곳곳에 보였다.

자연스럽게 들려오는 한국어 대화들. (야, 롤하러 갈래?)

여행객이 아니었다. 시드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데, 나에게는 낯설고 무섭기만 한 곳인데, 스물일곱에서야 처음 밟아보는 곳인데!


도대체 나는 그동안 호주 살이 한번 못해보고 뭐했나, 어안이 벙벙해하며

막 지하철 역에서 나온 나는 또 하필이면 조지스트리트 한가운데에 섰다.

겨울의 서늘한 공기, 차가운 아침 햇살 아래 조지 스트리트눈이 부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로 바쁘게 지나갔다.

그 사람들은 모두 달랐다.

조금 다른 정도가 아니라, '다양했다.'

한 인종이 대다수이고, 다른 인종이 조금 섞인 게 아니라

그냥 모두가 다 다른,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인종을 한데 모아놓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었던 광경,

그동안 여행을 다녔던 나라들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

지구 곳곳의 다양한 인종들이 골고루! 함께!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세계지?

너무나 넓은 세계를 ‘목격’했다.

있는 줄도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좁디좁은 세계 - 특히 직업을 가지고 더더욱 좁아진 - 에서 고개를 들고 보니

이토록 넓은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내가 그 좁은 세계 안 사소한 것을 전부로 여기며 목매달던 순간에도

이 큼지막한 ‘글로벌’한 세계는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바닷가


이 충격은 멜버른의 한 바닷가에서 정점을 찍었다.

처음 마주하는 남태평양의 바다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크기파도, 내 키만 한 파도가 넘실거렸다. 평화롭게!

그런 파도는 폭풍우 치는 바다 한가운데에나 있는 줄 알았다.

나는 그 자연스러운 거대함에 압도당해, 한참을 말없이 파도만 바라보았다.

이 정도 스케일이 기본이라니..

이렇게 크고 넓은 세계가 있었구나..


그동안 내가 전부라고 믿었던 세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밖으로 이렇게 거대한 세계가 펼쳐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왜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걸 몰랐을까.

왜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아니 아마도 나는 계속 들었지만,

직접 보기 전까지는, 온몸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똑바로 알지 못했던 것이겠지.


내가 알던 세계가 산산조각 나며 내 주위로 쏟아졌다.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면 기쁘고 설렐 거라 막연히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괴로웠다.

‘절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원망할 대상이 없는데, 원망스러웠다.

내가 그동안 죽기 살기로 매달려서 잡으려던 것들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허무함.


한국으로 돌아와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몇 달을 보냈다.

호주는 8월에 갔는데, 저 글을 포스한 건 다음 해 1월 하고도 31일이니까.

사실 그때까지도 아직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리가 안 됐었다.

그리고 그 포스팅에 렸던 여러 댓글 중 하나의 댓글이 당시의 내가 느낀 감정을 완전하게 설명해주었다.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내 삶은 오답이고,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나를 깎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 의미 없이’ 정해진 틀에 나를 욱여넣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의지가 아니라, 강압에 의해. 수동적으로.


이렇게 넓은 세계, 무엇이든 정답이 될 수 있는데, 나는 그동안 왜

남태평양 바다 앞에서 나는 깨달았 것이다.

그동안 스스로 공감하지도 못하는 잣대를 나에게 들이대며 나를 괴롭혀 왔구나.

고생해왔던 나 자신이 너무너무 불쌍하고 또 한편으로 미안했던 것이다.


Being Erica (2009)

누구에게나 세계는 주어진다.

주어진 세계가 전부라고 믿고 사는 것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잡는 것도

각자의 선택이다.

깨진 조각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다시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 용기 내보는 것도

모두 각자의 몫.

나는 16년의 저 순간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용기를 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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