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관(가욕관) 여행기 1
중국을 좋아합니다. 어디가 좋은지 딱 꼬집어 말하긴 힘듭니다. 좀 오글거리지만 중국은 저에게 첫사랑 같은 존재입니다. 한 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계속 함께 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첫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겹겹이 쌓인 5,000년 역사의 토대 위에 중국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담론은 끊임없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글 몇 편으로 "중국"을 모두 탐색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의 시선에서 붙잡고 놓치기 싫은 중국의 단편들을 찾아서 편집해보려 합니다.
글을 쓸 때 지켜야 할 하나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중국에 대한 그 어떤 편견도 배제하자는 것입니다. 시대와 국경을 초월할 수는 없지만 과거도 현재도 아닌, 중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최대한 그 경계선에서 중국을 향한 시선을 세워보고 싶습니다.
사사로운 중국문화의 첫 번째 이야기는 실크로드에서 만난 도시 ‘자위관(嘉峪关, 가욕관)’ 여행기입니다.
간쑤 성 란저우(兰州) 역에서 야간열차를 탔다. 야간열차라... 얼핏 들으면 낭만적이지만 열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몸이 들썩여 마음도 들썩이기 십상이다. 황하 맥주 한 캔으로 몸을 잠재우고 좁은 침대칸에서 잠을 청했다. 햇살이 뭉근하게 눈을 찌르고 바깥이 소란스러워 깨어보니 오전 6시 즈음이었다. 찌뿌둥하고 눈이 뻑뻑한 게 밤새 요란스러운 꿈을 꾼 듯하다. 침대칸 밖으로 나와 스트레칭을 하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농가가 드물게 보이다가 아파트 단지로 이어지고 큰 규모의 공장단지들이 등장하니, 도시가 나타날 때가 되었는가 싶었다. 반대편 창으로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줄기는 치롄산맥(祁连山脉)이라 했다. 30분쯤 후 열차가 드디어 자위관(嘉峪关, 가욕관)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고속버스를 타니 잠이 쏟아졌다. 얼마 안 가서 허름한 관광호텔 앞에 세워준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뒤 목적지로 향했다.
대륙의 자랑! 세계 7대 불가사의!
만리장성은 중국 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 시황제 때에 완성되었다. 진시황은 흉노의 침공에 대비하여 춘추전국시대 때 각 나라에서 만든 장성들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을 쌓았다.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개축과 확장이 반복되었다. 성벽의 길이는 동쪽의 산하이관(山海关, 산해관, 허베이성에 위치)에서부터 서쪽의 자위관(간쑤 성에 위치)까지 6,000km를 넘는다.
흔히 만리장성이라 하면 베이징(北京)에 있는 빠다링(八达岭, 팔당령)을 떠올린다. 십여 년 전, 처음 중국 여행을 갔을 때 나는 만리장성은 베이징에서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베이징의 빠다링은 장성의 일부분이고 일반인에게 개방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이다.
만리장성의 서쪽 끝자락엔 자위관이 있다. 내가 지금 그곳에 온 것이다. ‘천하제일웅관’이라고 불리는 자위관은 간쑤 성 자위관 시 하서주랑(河西走廊)의 서쪽 가장 좁은 길목에 위치한 관성이다.
1372년, 명나라를 건국한 명태조 주원장 때 축조되었다. 군대의 주둔지로 사용하며 적의 침입에 방비하기 위해 지어졌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정복자라 알려진 티무르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1405년, 티무르가 대군을 이끌고 명나라로 원정을 향했다. 그러나 도중에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원정은 실패한다. 그의 사후 티무르 제국은 멸망했고, 자위관의 군사적 의미도 점차 사라진다. 명나라 이후 세워진 새로운 왕조 청나라는 이곳에서 훨씬 서쪽에 위치한 신장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이때부터 자위관은 서쪽 변방의 역사유적지라는 가치만을 지닌 채, 점차 세월의 모래바람에 묻혀간다.
자위관이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만리장성을 연결하는 관문들이 현대에 다시 지어진 것과 달리, 자위관만은 유일하게 역사 속 제 모습을 유지하고 있던 것이다. 1961년에 이르러서야 중점 문화재로 보호되기 시작하고, 198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국방의 의미가 사라진 군사적 요충지라니, 쓸쓸함이 자위관의 성벽을 한 바퀴 둘러친 건 아닌가 두리번거렸다. 지난 600여 년 간 자위관은 자신의 존재에 결핍을 느낀 적은 없었을까. 그래서 침묵으로나마 자신의 가치를 과시해온 것인가. 그의 음성이 듣고 싶었다. 너무도 빨리 쓸모를 다한 토성의 비애를 기대했으나, 이것은 지극히 인간주의적인 형태의 기대임이 분명했다. 그는 인간들의 무심함에서 비롯된 뜻밖의 고독을 즐겼을지도 모른다.
자위관은 석성이 아니라 흙을 주재료로 쌓은 토성이다. 흙을 층층이 다지면서 쌓아 올라가는 공법으로 만든다고 한다. 온통 황토색이다. 처음 보는 웅대한 황토성의 자태가 신기해 이리저리 거닐다 보니, 아침해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때는 8월이었다. 그늘진 곳 없는 자위관에서 곧 한여름의 태양이 쨍쨍 내리쬘 것이라 예고하고 있었다. 중국 서북의 마른땅에서부터 올라오는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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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