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관(가욕관) 여행기 3
통행권의 여운을 소중히 부여잡고 서쪽 관문을 향했다. 자위관(嘉峪关, 가욕관)의 마지막 관문이다. 이 문을 나서면 고비사막이 황량하게 펼쳐진다. 하늘의 청명함을 시기했던 것일까. 사막의 온기는 하늘마저 황토빛으로 물들여버렸다. ‘고비(gobi)’는 몽골어로 '풀이 잘 자라지 않는 거친 땅'이란 뜻이다. 동서 1,600km, 남북 500∼1,000km에 이르는 고비사막은 몽골 남부와 중국 북부의 국경 사이에 위치한다. 장대한 넓이의 대부분은 암석 사막의 형태이고, 우리에게 익숙한 모래사막은 아주 일부분이라고 한다. 거친 땅을 지키는 키 낮은 풀과 메마른 바위들이 보인다. 밤이 되면 바람도 찾아와 이들과 함께 머무르겠지.
사막을 따라 이어진 만리장성은 수평선 자락을 향해가는 어선들처럼 점점 희미해진다. 아, 이 망망함이여. 여기서 더 서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로 가려면 반드시 고비사막을 지나야 한다. 그 옛날 낙타나 말을 벗 삼아 이곳을 지나야 만 했던 선비들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수많은 해와 달을 보며 바람을 맞았던 그들의 심정을 잠시 헤아려본다. 가도 가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아득함을 걷는 심정을. 게다가 고비사막은 황사의 발원지로도 악명이 높다. 시도 때도 없이 부는 매서운 바람은 예나 지금이나 외로움을 배가시킨다. 당나라의 시인 왕유는 그런 곳으로 벗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애틋한 마음을 담은 시를 많이 지었다.
不識陽關路 新從定遠侯
黃雲斷春色 畫角起邊愁
瀚海經年別 交河出塞流
須令外國使 知飮月支頭
그대 양관으로 가는 길 알지 못한 채
곧 정원후 장군을 따라나서겠구나
그곳의 황사로 물든 구름은 봄빛마저 끊어놓고
화려한 문양의 뿔피리 소리는 변방의 근심을 불러온다네
한해로 떠나는 이별은 얼마나 견뎌야 하는가
교하의 강물만이 변방을 나와 흘러오겠지
월지국 왕의 머리가 그대의 술잔이 되었노라고
사신의 기별이 올 그날을 고대하고 있으리
(와초 옮김)
누군가와 이별하며 지은 시를 송별시라고 한다. 중국에는 가족이나 벗을 멀리 떠나보낼 때 그 아쉬움을 노래한 송별시가 많다. 영토가 워낙 광활하다 보니 먼 지역으로 간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뛰어넘는다. 소식을 주고받는 것이 어려울 뿐 아니라, 한번 떠나면 언제 다시 볼는지 기약할 수 없다. 오가는 여정길엔 늘 위험이 도사리고, 고향 떠나는 이가 지금처럼 풍요롭고 안전한 생활을 하게 될 리는 만무하다. 특히 물이 많고 비옥한 동쪽과 따뜻한 남쪽에 비해, 간쑤 성이 있는 서북 지역은 춥고 척박했다. 집권 왕조의 입장에서 이곳은 항상 오랑캐의 침입으로 골머리를 앓는 지역이었다. 왕명으로 파견되어 떠나는 선비의 마음은 얼마나 근심으로 가득했을까. 또 그를 떠나보내는 친구는 얼마나 애통했을까. 그래서 송별시엔 이별 앞에 선 이들의 때론 격앙된 슬픔이, 때론 비장한 위로의 말들이 진실되이 표현되어 있다.
이 시를 지은 왕유(王維, 701~791년)는 당나라가 가장 번성했던 성당 시대의 시인으로,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견주어 시불(詩佛)이라 불린다. <송평담연판관 送平淡然判官>은 변방으로 부임하여 가는 친구를 향한 석별의 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양관은 간쑤 성 둔황에 위치한 관문이며, 당시 중국 영토의 가장 서쪽 변방에 위치한다. 한마디로 전쟁이 잦은 국경지대이다. 시에 등장한 월지국은 고대 서역에 있던 이민족의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는 오랑캐 수장의 머리를 베어오라는 시인의 기개 넘치는 소망도 내포되어 있다. 시를 읊다 보면 황토 바람이 불어 사방이 모래로 자욱한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5구에 등장한 한해(瀚海)가 바로 고비사막이다. 적의 습격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만 울려 퍼지는 황량한 땅의 묘사에선 비장함마저 흐른다.
渭城朝雨浥輕塵 客舍靑靑柳色新
勸君更盡一杯酒 西出陽關無故人
위성에서의 아침, 가랑비가 가볍게 바닥을 적시네
객사의 버들잎이 푸르고 푸르니 어찌 이리 새로운가
그대 다시 이 한 잔의 술 들기를 권하노라
서쪽 양관을 나서면 옛 친구는 볼 수 없을 테니
(와초 옮김)
내친김에 송별시의 으뜸으로 꼽히는 <송원이사안서 送元二使安西>도 읊어본다. 역시 왕유의 작품이다. 매 구절마다 이별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서려있다. 안서(安西)는 당나라 시대의 안서도호부로 지금의 신장(新疆) 지역이라고 한다. 시인은 당나라 수도 장안 근처, 위성이란 곳에서 벗을 떠나보내는 순간을 노래했다. 아침비가 공기를 맑게 가다듬듯 무거운 마음도 산뜻하게 만든다. 덕분에 버들잎에도 생동한 푸른빛이 돌지만, 예부터 버들은 이별의 상징이었다. 그저 아름답게만 늘어져있던 푸른 잎들이 이별을 앞둔 지금에서야 시인의 눈에 밟힌 것은 아니었을까. 맑게 내리는 가랑비가 되려 이별을 상기시키는구나. 친구가 떠나는 날 아침, 슬픔은 매우 깊으나 애써 빙그레 웃음 지으려는 그의 표정이 선하게 그려진다. 코끝이 찡해진다. 술을 재차 권하는 장면에선 친구의 시름을 덜어주려는 배려와 보내기 싫은 아련한 정이 동시에 은은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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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총 3편으로 쓰였으며, 이후 연재는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글 속의 사유와 감정은 지금의 나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절의 사유를 남기기 위해 아카이브 형태로 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