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자란 건 나였다 –엄마의 하루

하원길에서 배우는 삶의 리듬

by 와초 Wacho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닌지 세달 차.


아이는 요즘 정말 잘 걷는다. 매일 어린이집에서 2시간씩 나들이를 나가는데, 덕분에 체력이 눈에 띄게 강해졌다.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까지는 차로 10분, 어른 걸음으로 20분 정도 걸린다. 4월 어느 날부터 "빵빵 안 타!" 라며 차를 가져오지 말라던 아이는 하원하고 나서도 또 걷는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아이의 하루 중 가장 버라이어티한 시간일지도.


어린이집에서 버스 타러 가는 길은 굉장한 내리막길인데, 그 길이 참 예쁘다. 청량하고 화사한 기운의 소박한 정원을 품은 주택들이 길의 양옆에 줄지어있다. 하원 시간이 겹쳐 친구들과 함께 하원 하는 때는 더 신이 난다. 집에 갈 생각은 멀리 내팽개치고 친구들과 꽃을 보고, 돌멩이를 줍고. 어제는 왕개미도 봤다.


하원길 중간에 잠시 타는 22번 마을버스가 있다. 종점에서 탄다. 움직이는 버스에 오르는 게 아니라, 기사님이 잠시 쉬고 계신 평화로운 시간에 우리가 탄다. 고요함을 뚫고 우리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공주님 어디가?” 라며 반갑게 웃어주신다. 내릴 땐 다른 승객들이 있어도 큰 소리로 “공주님 잘 가요!” 라며 인사를 건네신다. 그 전엔 얼굴도 모르는 ‘버스 기사님’으로만 지나쳤을 분인데, 요즘은 우리 하원길의 고정 멤버 같다.


버스에서 하차한 뒤에는, 오전에 어린이집에서 갔던 흥천사도 한 번 더 둘러보고, 마트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나 블루베리도 한 팩 챙긴다. (먹고 싶은 게 날마다 다르다)

얼마 전에는 정류장 벤치에 30분 넘게 앉아서 지나가던 사람들과 자동차를 구경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는지, 옆에서 달걀 홍보를 하던 영업사원분께서 갓 삶은 달걀 하나를 주셨다. 그 자리에서 까달라며 정류장이 자기 집인 줄 아는 아이.


그러다 보면 4시 반에 하원 하는데 7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한다.

아이는 매일 한 뼘씩 더 크고 한 톤씩 더 까매진다. 나는 매일 한 걸음씩 덜 힘들다.


그리고 요즘, 내가 사는 동네가 이렇게 멋진 곳이라는 걸 처음으로 또렷하게 알아가는 중이다. 작고 큰 것들이 옹기종기 연결되어 ‘우리 동네’라는 풍경이 되어 있었다. 관심을 두고 보니, 그 전엔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마음에 오래 머문다. 이어폰을 끼고 목적지만 향하던 예전의 나는 이 길을 걷고 있었지만, 사실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때 나에겐 걷기는 그저 ‘이동’ 수단의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걷다 보니, 걷기는 우리의 일상의 리듬이 되고, 추억이 되고, 어떤 이와 작고 느린 관계 맺음이 되어간다.


아이는 하루를 걷고 나는 그 옆에서 세상을 다시 본다.

빠르게 살면 느끼지 못할 것들. 아이를 통해 천천히 배우는 중이다.




※ 매주 화요일, 하루를 사유하는 글로 인사드릴게요.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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