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는 마음으로 하는거야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인사를 가르치는 법

by 와초 Wacho

(우리집 엘리베이터 안에서)

10층 할머니: 아유 이뻐라. 안녕~!

소윤: (할머니를 보고 쭈뼛거리며 소심하게 오른손을 흔든다)

나: 인사해 소윤아.

소윤: ...

나: 인사해야지. 고개 숙여서.

소윤: (고개를 아래로 까딱)

나: 잘했어. 그치만 더 고개를 숙여야해.


(버스 정류장 앞에서)

지나가던 아저씨: 안녕! 너무 귀엽다. 너.

소윤: (아저씨를 보고 작게 오른손을 흔든다)

나: 인사해야지 소윤아. 고개 숙여서.

소윤: (고개를 숙인다)

아저씨: 아이고, 인사도 잘하네. 이쁘다.

나: 잘했어! (아저씨를 향해) 감사합니다!


그때 나는 이런 인사들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윤이가 인사를 머뭇거리거나 대충하면 속으로 답답하고 민망했다. 그래서 더 다그치듯 인사를 시켰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억지스러운 강요였는지 알게 됐다.


소윤이는 장난기 많고 웃음도 많은 26개월 아이다. 얼마 전 어린이집 상반기 면담에서 소윤이는 굉장히 모범생 성향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식사시간엔 누구보다 먼저 식판을 들고 앉아 한자리에서 끝까지 식사를 하고, 야외활동 시엔 “양말 신자”라는 한마디에 혼자 씩씩하게 양말을 신고, 겉옷 입고, 신발까지 신고 현관문 앞에 서있는다고 했다. 한마디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규칙과 규율을 잘 따르는 FM 스타일의 아이다. 소윤이와 어디를 가든 “아기 순하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밖에서는 ‘아기’답지 않게 땡깡부리는 일은 거의 없고, 뭘 사달라고 조르는 일도 없다. 언뜻 들으면 아이가 순해서 키우기 쉽고 걱정이 없을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점이 걸렸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지 않을까?

소윤이는 왜 땡깡부리지 않는 걸까? 왜 청개구리처럼 굴지 않는걸까?


나는 어릴 때 모범생이었고, 늘 기대에 부응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소윤이는 다르게 크길 바랐다. 그런데 어느새 소윤이 안에 나의 모습이 비친다.


어른들 얘기 무시해도 좋고 백화점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불고 해도 좋았을텐데. 소윤이는 내가 기억하는 나의 어린 시절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그럼 지금의 나같은 어른으로 자랄텐데. 늘 주변의 기준에 맞춰 사느라 힘들텐데. 아니지, 주변이 아니라 자신의 한없이 높은 기준을 맞춰 사느라 지칠텐데.


나처럼 모범생 성향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굉장히 의식하면서 키워왔다. 그런데 아이에게 모범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말과 행동이 나도 모르는 새에 튀어나왔던 걸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무심하게 소윤이에게 시켰던 수많은 인사들.


소윤아 인사해.

인사해야지.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서 인사해봐.

봐봐. 배꼽인사는 이렇게 하는거야.


아기와 같이 다니다보면 고맙게도 많은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해준다. 길을 지나가다 만나고, 지하철에서 만나고, 엘리베이터나 밥 먹다가도 만난다. 소윤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 소윤이를 보면 활짝 웃고 인사를 건네는 행인들에게 소윤이도 그 인사에 화답했으면 했다. 예의있게.


그 수많은 인사 중에서 소윤이가 정말 마음이 내켜서 한 인사가 몇 번이나 있었을까? 소윤이에게 인사를 강요했던 지난날이 너무 후회스럽고 나 자신이 미워졌다. 정말 미안해 소윤아.


나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고 그렇게 키운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달았다. 나는 '예의 바른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그렇게 키운 아이를 통해 '나는 좋은 엄마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내 마음이 숨어 있었다.


나 스스로 한국사회가 기대하는 '공경문화'와 '가정교육'이라는 틀에 갇혀있었던 건 아닐까? “아이를 버릇없게 키웠네.” 라는 소리를 듣기 싫었던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대를 과하게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살펴야했던 건 소윤이의 마음이었는데.


앞으로는 소윤이에게 “인사해”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인사는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진심으로 하는 행동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누군가와 인사를 하고 마음을 나누었을 때야말로, 소윤이가 비로소 인사는 기쁨과 반가움의 표현이라는 걸 스스로 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사는 ‘해야만 하는 의무’가 아니라, ‘내 마음을 표현하는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걸 알려줄 생각이다. 자기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힘을 기르게 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마주치고 인사를 행하는 것은 하루 중 매우 사소한 일일테지만, 이런 미미한 사건들이 쌓여 소윤이의 마음창고에 차곡차곡 쌓일테지. 아이를 대하는 나의 작은 행동과 말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소윤아,

네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인사해.

네가 느끼는 기쁨과 반가움을, 네 마음으로 표현하면 돼.

엄마는 네가 네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으로 자라는 걸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보고 싶어.

세상의 기준보다,

엄마의 기준보다,

네 마음이 제일 소중하다는 걸 잊지 말아줘.

세상이 뭐라고 말해도, 엄마는 너의 편이야.




※ 매주 화요일, 하루를 사유하는 글로 인사드릴게요.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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