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사람입니다만.

by 와초 Wacho

“너 정치에 관심 많지 않아?”


이런 질문을 들으면 나는 잠깐 멈칫한다. 내가 그렇게 보였나?

정치? 국회의원 이름도 잘 모르는데? 뉴스는 제목만 넘겨봐도 많이 본 거고, 공약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스킵하고. 정당 구도는 헷갈리기만 하는데? 아직도 국힘인지 새나라당인지, 열우당인지 민주당인지...나만 그런 거 아니지? 이름은 자꾸 바뀌는데, 이상하게 바뀌었다는 감각은 안 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꽤 정치적인 사람이다.

대통령 선거철이 되니 나라 전체가 캠페인으로 도배된다. 주택 담벼락, 빌딩의 공벽, 벽이란 벽에는 6명의 남자가 단정한 모습으로 인상 좋게 웃고 있다. 거리엔 후보의 이름을 넣은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흥은 나지만 선거에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없다. 그들의 세계에는 그들의 언어로만 가득 차 있다. 그곳엔 내가 없다. 우리가 없다. 일상이 없다. 그들은 나와 우리의 일상을 경험하기는커녕 들어본 적도 없는 것만 같다. 그들이 속한 세계는 민주주의라는 아름다운 이름 아래 정당과 국회가 있는 대의정치의 세계이다.


나는 대의정치보다는, 일상정치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국회에 들어간 적은 없지만, 이 세상 프레임이 총집합된 아이의 그림책을 삐딱하게 보며 정치한다.

국민청원을 쓴 적은 없지만, ‘아빠가 설거지 좀 한다고 칭찬받는 세상’을 이상하게 여기는 감각으로 정치한다.


예를 들어:

“결혼했는데 왜 애를 안 낳아?”

“아, 따님이시구나, 핑크색 잘 어울리겠네요.”

“남편이 설거지요? 와, 자상하시다!”

“40대에 그런 행동은 안 어울려.”


그런 말들 속에서 나는 어김없이 화가 났다. 보이지 않는 통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속내를 조심히 표현하면, “너 반골이구나!”라는 어이없는 답변이 돌아오곤 했다. 그래서 어릴 땐 나조차도 유치한 반항심 또는 예민함에서 비롯된 건가 고민하며 입 다물고 살았다.


그렇지만 차근차근 관심 가는 책을 읽어오면서 ‘이 감정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때 정의당에 가입한 적도 있었다.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지하고 싶었고, 나처럼 조용한 분노를 품은 사람들이 모인 곳일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거기도 대의정치 세계에 속한 정당이었다. 거대정당 틈에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외치는 그들의 노고는 치열했고 존경스러웠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어떤 다수가 권력을 갖고 소수는 목소리를 잃는, 민주주의의 허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더 다양한 논의가 오갈 순 있어도 결국 중요한 건, ‘몇 표’를 받아 ‘몇 석’을 얻느냐였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거였는데,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조용히 물러났다. 내 정치의 언어는 조금 다르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게 정치란, ‘나의 삶 그 자체를 사유하는 방식’이다. 당연한 일상에 의문을 가지는 감각, 그리고 질문하는 행위이다.

여성, 엄마, 환자, 40세, 경영자, 글 쓰는 사람.

이 이름표들이 내 삶을 규정할 때마다 나는 묻는다.


나를 구성한 건 나인가, 사회인가?

내가 쓰는 언어가 나를 더 좁은 틀 속에 가두고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질문들 속에서 나는 ‘정상’이라는 말의 폭력성을 자주 느꼈다. 그래서 나는 큰 것보다 작은 것을, 다수보다 소수를, 건강함보다 아픔, 강함보다 약함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소수자의 삶에 더 귀 기울이게 된다. 눈에 띄지 않는 차별, 말하지 못하는 감정, 보이지 않는 규범들 속에서 ‘왜 그런걸까?’를 자주 묻는다.


이처럼 일상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당연함’에 질문을 던지는 감각, 그게 바로 나의 정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이 문장은 내 삶의 좌표가 되었다. 1960년대 미국 2차 페미니즘 운동에서 ‘캐롤 허니쉬’가 했다고 알려진 이 말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내가 입는 옷,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 즐겨보는 OTT 프로그램, 아이에게 골라주는 그림책과 놀이재료까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나의 정치적 제스처이다. 그 속엔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가 던지는 질문과 해석이 다시 나의 일상을 관통해 들어온다. 지금 쓰는 이 글도 정치다. 그래서 기다린다. 누군가 이 글을 봐주기를, 나의 시선을 봐주기를.


정치는 정당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는 국회에만 있지 않다.

정치는 우리 집 거실에도, 어린이집 단톡방에도, 거울 속 내 얼굴에도 있다.

나는 오늘도, 내 방식대로 정치를 한다.



※ 이번 글은 정해진 연재 요일이 아닌, 번외로 올려봅니다.

선거를 앞두고 문득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 ‘정치적인 나’에 대해, 잠시 말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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