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선의 춤을 보고 울었다

by 와초 Wacho

https://www.youtube.com/watch?v=qshttiJ3EGk


며칠 전 유튜브를 보다가 ‘김완선’의 영상이 떴다. 김완선은 50세가 넘어서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전부터 배우긴 했으나 코로나를 기점으로 그림에 전념했다고. 그런 그가 최근에 뉴욕에서 개인 그림전을 열었고, 그 영상은 뉴욕 개인전의 첫날을 보여주었다. 개인전에는 다양한 관객들이 와서 작가인 김완선과 소통했다. 영어가 엄청 유창하진 않지만 자연스러운 바이브와 유쾌함으로 관객들과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을 굉장히 편안하게,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매우 호감이 갔다. 개인전 첫날을 마무리하며 김완선이 오프닝 무대를 보여줬다.

감사 인사와 소감을 전하고 춤을 추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게 정말 멋있었다. 그 몸짓은 음악에 맞춰 잘 추는 그저 그런 춤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토해내는 춤이었다. 영상인데도 그 장면을 보며 자꾸 눈물이 났다. 가슴속에 막혀있던 무언가가 터지는 것 같았다.

김완선의 춤이 그러했다. 그의 응어리가 춤으로 승화되어 바깥으로 분출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춤을 보고 있는 동안 ‘김완선’, 그 한 사람이 ‘멋’으로 느껴졌다. 살면서 겪은 녹록지 않았던 감정들이 춤 선에 켜켜이 쌓여, 그 자체가 춤이 되었다. 얼마나 많은 괴로움을 안고 살아왔는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김완선은 쉰이 넘어 미술 작가로 데뷔했다. 인생에서 꽃피는 시기를 한참 지난 나이에 정말 좋아하는 걸 드디어 만나고, 자기 안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한 사람. 그 사실이 나를 희망으로, 위안으로 찔러왔다.

영상에서 김완선이 한 관객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모와는 29년 전 이미 헤어졌고 내 갈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러나 계속 노래하고 춤만 췄다. 할 줄 아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자기가 다른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그것만 했다고.

그 긴 시간 동안 그런 생각으로 버티면서 얼마나 괴로웠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데 그 시기를 지나오면서 그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았다. 그게 그림이었다. 그 아팠던 시간과 새로운 희망을 찾았을 때의 희열이 동시에 느껴졌다. 그의 감정이 성큼 다가와 내 마음을 후비며 먹먹해졌다. 영상 너머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또 눈물이 났다.


덕분에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20대, 30대 초반에 좋아하는 걸 찾아서 그걸 업으로 삼아 평생 전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잘 몰랐다. 아니, 알았을 수도 있지만 그걸 업으로 삼을 수 없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던 걸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 말고 ‘원하는 것’을 찾아 방황했다. 그런데 그 ‘원하는 것’이 과연 내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사회가 원하는 것이었을까. 두말할 것 없이 후자였던 것이 문제였다.


나이가 들어간다. 좋아하는 게 뭔지는 이제 알겠는데,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젊을 땐 시작이 겁나진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나이를 그냥 먹는 건 아니다. 두려움이야 여전하지만, 그 두려움을 버텨낼 만한 시간도 함께 쌓여왔다. 젊은 시절엔 막막했다.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시작하더라도 늘 엉망이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철창 같은 감옥을 겹겹이 만들어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놓은 듯이.

김완선의 춤을 보고 나는 왜 울었을까. 단순히 멋있어서가 아니다. 그의 춤에선 시간이 보였다. 아주 오랫동안 묵히고 묵혀온 괴로운 시간이. 그렇게 자기 안에 갇혀 있다가 다른 형식으로 자신을 다시 탄생시키는 순간이 그 퍼포먼스에 담겨 있었다. 오랫동안 해야 하는 것, 사회가 바라는 것에 묶여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고.


나에게 세월이란 그 철창을 열어젖히는 과정이다. 지금은 망설임은 더 많아졌지만, 적어도 내 것이 뭔지 알아줄 대담함과 여유가 생겼다. 이 문을 열면 저 문이 보였다. 저 문을 열면 또 다른 문이.

이미 43세, 그러나 이제야 나도 해볼 수 있겠구나 싶다. 김완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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