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피드는 무엇을 담고 있나요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일한 지 반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직무와 업무 방식이 익숙해져 갈 때쯤이 되자 또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업무를 한 겹 벗겨내니 보이는 그 속의 사람들, (종종 이해되지 않는) 각각의 사고방식, 그들의 언어.
새삼 ‘처음 해보는 업무’보다 ‘가까운 사람의 속마음’이 더 익숙해지기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던 일 년 전의 내가 보지 못했던 것, 어쩌면 한 살 더 먹은 내 눈에는 보일 것들의 사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어서일까. 요즘의 나는 정작 내 연애보다는 다른 이들의 관계, 특히 그 시작에 어쩐지 더 관심이 간다.
SNS라고는 감성 폭발하는 상태명의 네이트온과 방명록이 사회성의 기준이 되었던 싸이월드 시대를 지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등등 다양하고 더 적극적인 플랫폼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그리고 어느새 SNS는 보이지 않으면 아쉬운 무언가가 되었다.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 내 근황을 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제 SNS는 그 자체로 사람을 만나는 ‘장’이 된 지 오래다.
즐겨 보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그렇지만 당장 내 주위의 지인들 중에서도 역시 인별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만났다는 소식을 종종(꽤나 자주) 듣는다. 그중엔 연인으로 발전하거나, 절친한 동네 친구로 발전하는 이들도 있다. 편집된 일상이 가득한 피드를 통해 사람을 만난다니!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솔직한 심정으로 나는 그 끝이 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신상이 불분명한' 누군가를 만나,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고도. 오프라인의 만남에도 상당히 회의적인 요즘의 나였기에 온라인 상에서 시작된 인연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관계’로 쉽게 단정 지어지곤 했다.
그러다 얼마 전, 피드를 봤다.
나의 팔로워도, 내가 팔로잉하고 있지도 않은 사람. 친하지도 않지만 누군지는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피드. 그 ‘도무지 알 수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금의 연인을 만나 꽤 오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여느 피드처럼 사진과 짤막한 글이 있는 게시물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달랐다. 똑같은 폰트로 쓰인 글인데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본 내용은 진솔하기도, 대담하기도, 사려 깊기도 했다. 고작 몇 줄의 글로 자신이 아끼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쓰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이었달까.
순간, 내 피드가 궁금해졌다. 소위 '눈팅(눈으로 다른 사람들 피드를 가볍게 둘러보는 행위)'으로 인스타그램을 즐기는 나의 피드는 초창기에는 고향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사진, 그 외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여행사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여행이 끝난 뒤론 화려함 뒤의 소박한 일상을 굳이 박제해두지는 않고 있는 공간이자, 내 삶의 가장 즐거웠던 순간, 남들에겐 보여줘도 될만하다는 기준을 통과한 사진들만을 공개한 공간. 사뭇 달랐다. 분명 내가 있었지만, 그 속에 나는 없었다.
여전히 완전히 믿지는 못하겠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익명의 공간에서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의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는 일. 얼마만큼의 확신이 있어야 가능한 일일까 싶다가도, 그런 피드를 보여주는 사람이라면, 피드 밖 그 모습이 어느 정도는 투명하게 보이겠거니, 그래서 불안전함을 무릅쓰고 얼마의 기대를 걸고 싶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새벽녘이었다.
피드 건, 사람이건.
뭐든 신비로운 적당함이 필요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