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이름이 바뀐 거지, 내가 바뀔 쏘냐
눈 떠보니 햇수로 벌써 5년 차 직장인이다.
아직 20대 초반의 대학생 때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데, 어느덧 내 앞에는 매달 내야 하는 집세와 공과금과 각종 자동납부금이 아주 줄줄이 월급일을 기다리고 있다.
'5년 차'라고 해봤자, 내 직무는 이직할 때마다 계속 조금씩 바뀌어와서 매번 신입 같은 느낌이다.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온라인 대행사의 마케터로 1년 반, PR업무와 각종 공모사업 등을 맡았던 두 번째 회사에서 꼬박 2년을 일했다. 그리고 현재 다니고 있는 지금 직장에서는 기획팀에 몸담고 있고, 다음 주면 곧 1년이 된다.
매번 새로운 곳에서 조금씩 다른 업무를 하다 보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보통 이건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라기보다는 생존과 생계에 연관된 아주 현실적인 걱정이다. 내년이면 만 나이도 통하지 않을 진짜 30대가 될 텐데, 여전히 아주 제-너럴한 커리어를 가진 나는 과연 이 빡빡한 현대사회에서 전문적인 일을 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걱정. 묵묵히 한 우물만 파던 나의 동기들은 대행사에서 팀장도 하고 과장도 하고, 이제는 흐릿해진 각종 전문 용어를 쓰며 대화를 이어나가는데 그럴 때면 나는 아주 간략하게 내 일을 축소해 말하고는 한다. '아, 나는 뭐 이것저것 기획하고 있어.'
작년 입사 이래 전쟁 같던 지난 1년 동안, 내가 속한 팀의 이름은 무려 3번이나 바뀌었는데, 상품기획팀에서 전략팀을 거쳐, 지금은 이러저러한 수식어를 모두 생략한 그냥, 리터럴리, 진짜 그냥 '기획팀'이다. 짐작하건대, '상품'만이 아닌 '전략'만이 아닌 (시키는 것이라면) 뭐든 기획하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빙고-!)
기획팀에 있는 사람을 보통 기획자라고 하겠지만, 그러므로 나는 기획자가 되어야 마땅하겠지만 아직 나는 나를 '기획자'라고는 당당히 소개하진 못하겠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지난 1년 동안 맨땅에 헤딩을 하며 깨우친 여러 가지 살아남기 팁과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터득한 일종의 노하우 같은 것들을 말이다. 사수와 가이드가 없는 세상에서 나름의 뚝심과 도믿걸들이 알아보는 좋은 인상으로 그럭저럭 살아낸 고달픈 홀로서기팁. 그러니까 이건 화장실 칸에서 조용히 찾아보던 지식백과 속 용어들을 비롯해, 회사 앞 음식점에서 울며 씹어 삼키던 국밥 같은 것들에서 건져 올린 아주 사적인 일종의 일기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심지어 요것도 하는 기획자'이자 눈떠보니 어느덧 중간관리자가 되어버린 사회중년생의 일기.
기획자가 이런 일도 한다고?라고는 묻지 말길. 나도 몰랐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