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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풀 Jan 27. 2023

[슬램덩크를 열 배 더 재밌게]

1. 캐릭터 이름엔 스토리가 스며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 중 한 구절입니다.

‘이름’이란 낱말은 ‘~라고 말하다’란 뜻의 동사 ‘이르다’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존재와 사물의 성질이나 작명인의 바람을 담습니다.

그래서 이름의 뜻을 알면, 이야기가 보입니다.


K연속극 3대 마에스트라로 꼽히는 문영남 작가는, 등장인물 이름을 참 맛있고 독하게 붙입니다.

꼭 지옥 불닭 같습니다.


대표작 ‘소문난 칠공주’의 칠은 7이 아니라 자매의 돌림자입니다.

어진 주부 첫째 ‘덕칠’은 남편 친구와 썸타다가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말 잘하는 여군 지휘관 ‘설칠’은 실속없이 엄청 설칩니다.

심지어 썸타는 어린 부하병사의 이름은 ‘연하남’입니다.


아름다운 간호사 ‘미칠’은 막무가내 개억지로 사람 미치게 만듭니다.

극 중 상대방을 넘어 시청자까지 돌아버립니다.


막내인 재수생 ‘종칠’은 식구제작프로젝트의 최종작입니다.

과외선생 황태자와 짝짓기로 임신이 돼, 마마보이 철부지 남편과 극성 시어머니의 시집살이로 인생 종칩니다.

반찬가게 주인인 시엄마 이름은 ‘반찬순’입니다.


아우, K연속극의 참맛에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담고 있다는 참 좋은 사례이긴 합니다.^^;;


작가는 작품 속 세계의 신입니다.

피조물들에게 적합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습니다.

슬램덩크 등장인물들도 이름 속에 각자의 특성을 품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강백호, 서태웅 같은 한국식 이름으로는 알 수 없던 재미를, 오리지널 이름으로 함께 느껴보시죠.^^;;


저는 일본문화를 잘 알거나 일본어 수준이 높지 않습니다.

사실과 다른 추측이 분명히 있을 거라 예상합니다.

어원 찾기가 일상인 슬램덩크 팬의 엉뚱한 상상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틀린 점들도 알려주시면, 은혜 갚겠습니다. (_ _)


[상북]


등장인물들이 다니는 학교의 이름은 북쪽의 산 북산이 아니라 상북(湘北: 강이름 상)입니다.

큰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먼저 상북팀 친구들의 이름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성명 중 성도 해석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다가, 스토리 개연성이 짙은 경우로 제한했습니다.


1. 강백호(사쿠라기 하나미치 - 桜木 花道: 벚나무 앵, 나무 목, 꽃 화, 길 도)

- 벚나무 꽃길.

싸움꾼 문제아가 어여쁜 여학생을 사귀고 싶어 농구부에 들어갔다가, 재능과 노력으로 진짜 꿈을 향해 달려갑니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는 벚꽃 같습니다.

눈부시게 성장하다가, 전국 최강 산왕공고전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습니다.

마지막 화에선, 어딘가에서 재활하는 듯해 보입니다.


왠지 “벚꽃은 다시 피어오른다!”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2. 서태웅(루카와 카에데 - 流川 楓: 흐를 류, 내 천, 단풍 풍)

- 흐르는 냇물 단풍.

붉은 단풍처럼 화려하게 눈길을 끄는 천재 바스켓맨.

심지어 잘생겼습니다.

원래 주인공은 이 친구였다죠.


*처음엔 대립했던 봄날의 벚꽃 강백호와 가을날의 단풍 서태웅이 화합해, 막강 산왕을 꺾습니다.


3. 채치수(아카기 타케노리 - 赤木 剛憲: 붉을 적, 나무 목, 굳셀 강, 모범 헌)

- 붉은 나무 굳센 모범.

성실하고 바르게 노력하는 강직한 귀감의 주장입니다.

무뚝뚝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배려심과우정이 깊습니다.

팀을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하고 모범을 보입니다.

학과성적도 좋은 모범생입니다.^^*


4. 송태섭(미야기 료타 - 宮城 リョータ: 궁궐 궁, 성 성, 료타는 한자 불명)

- 궁궐 성벽 빛내고 큼.

도내 넘버 원 포인트 가드를 꿈꾸며 성장해, 약체인 팀을 전국대회로 이끌어 빛내는 큰 인물입니다.


최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the First Slam Dunk)’의 주인공은 송태섭입니다.

농구팀 포지션에 1번부터 5번까지 숫자번호를 붙이는데, 1번이 송태섭의 역할인 포인트 가드입니다.(2번 슈팅가드, 3번 스몰 포워드, 4번 파워 포워드, 5번 센터)


*가타카나만 있는 ‘료타’를, 보편적 한자명인 亮太(밝힐 량, 클 태)로 추측했습니다.


5. 정대만(미츠이 히사시 - 三井 寿: 석 삼, 우물 정, 목숨 수)

- 세 우물 목숨.

농구를 목숨처럼 사랑하고, 오래 오래 하고 싶어합니다.

우리에겐 ‘불꽃남자’로 기억나는 슈터입니다.


중학 MVP로 선정될 만큼 뛰어난 선수였지만, 부상으로 농구를 중단하며 불량한 방황기를 겪습니다.

과거를 뉘우치고 팀으로 돌아온 후, 고질적 체력 부족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더 채찍질하며, 탈진상태에서도 초인적 실력을 발휘합니다.


전국대회가 끝난 후 같은 3학년인 채치수와 권준호는 은퇴를 예고하지만, 정대만은 이후로도 농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목숨 수(寿), 히사시’가 한 번 더 떠오르는군요.(알아요. 저도 억지스럽다고 생각해요. ㅠㅠ)


6. 권준호(코구레 키미노부 - 木暮 公延: 나무 목, 저물녘 모, 귀한 인물/함께할 공, 늘일 연)

- 나무 저물녁 함께 늘이는 이.

모범적이고, 성실하며, 배려심 깊고, 용기있습니다.


선수로서 마지막 해인 3학년에, 재능과 잠재력이 특별한 새 멤버들이 합류합니다.

티격태격 어수선한 상황에서, 특유의 부드럽고 선한 리더십으로 선후배의 화합을 유도하고 팀의 실력도 늘어갑니다.


7. 안한수(안자이 미츠요시 - 安西 光義)

- 평안한 서쪽 빛나는 의미.

감독 안 선생님.

KFC 마스코트 커넬 샌더스 대령과 모습이 닮았습니다.


원래 국가대표 출신의 불같은 성격을 지닌 맹장이었습니다.

대학교 감독 시절 아꼈던 제자가, 자신의 지도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비극을 맞는 사건에 충격을 받습니다.

지금은 온화한 모습으로 팀을 지도하며, 농구를 통해 빛나는 뜻을 이뤄나갑니다.


[기타]


1. 윤대협(센도 아키라 - 仙道 彰: 신선 선, 길 도, 밝을 창)

- 신선의 길 빛나다.

제겐 작품에서 가장 유쾌한 캐릭터입니다.

상북의 지역 라이벌팀 능남의 에이스 플레이어.

다른 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빛나도록 이끌어 주는, 신선처럼 지혜로운 인물입니다.

경쟁팀 에이스인 서태웅에게도 아주 소중한 깨달음을 줍니다.

윤대협의 선문답 같은 조언은 독불장군 서태웅에게 패스도 하게 만들어, 승리의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2. 변덕규(우오즈미 준 - 魚住 純: 물고기 어, 살 주, 진실할 순)

- 생선과 사는 우직한 이.

횟감을 받쳐주는 무처럼, 진흙탕 가자미처럼, 자신을 희생해 팀의 영광을 지원합니다.

오로지 팀과 농구에 진실한 주장이기도 하죠.


실제로 생선요리집 가문의 후계자로, 만화책에서는 산왕전에 요리사 차림으로 관중석에 등장해 채치수를 독려합니다.


3. 이정환(마키 신이치 - 牧 紳一 : 다스릴 목, 큰 띠/벼슬 신, 하나 일)

- 팀을 이끄는 넘버 원 주장.

산왕의 정우성과 신현철이 등장하기 전까지 끝판왕 같은 최강자죠.

슛, 드리블, 리바운드 능력에, 지략과 리더십까지 보유한 만능캐입니다.


4. 정우성(사와키타 에이지 - 沢北 栄治: 못 택, 북녘 북, 영광 영, 다스릴 치)

- (연)못 북쪽 영광의 통치.

영예롭게 코트를 지배하는 자.

세계관 절대최강자입니다.


코트 위에선 뭐든지 다 잘 하지만, 가끔 어리숙하고 엉뚱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주인공들의 적군 팀 에이스지만, 미워할 수 없습니다.


자,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일본어로 알아봤는데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면, 푸르렀던 소년 시절이 슬램덩크로 설렜던 분일 거라 짐작합니다.^^;;

오늘 함께 나눈 이야기로, 우리가 사랑했던 슬램덩크를 더 재밌게 즐기시면 기쁘겠습니다.^^*


See you soon~!



*틀린 내용이 있거나 더 좋은 이름풀이가 떠오르시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름의 뜻을 알면, 우리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쉬운 이해와 더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인지 찾아보기 전에 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짐작해 보세요.

이름풀이가 더 재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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