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h liebe dich
“이번엔 ‘이히 리베 디히’로 가볼까요?”
“선생님, 저 독일어라곤 후랑크소세지랑 *1)슈바인학센밖에 모르는데요.”
“곡이 짧아서 괜찮아요.”
그리고 신대두는 몇 달째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를 연습 중입니다.
제게 뜻 모르고 부르는 노래는, 빈 껍데기일 뿐입니다.
노랫말 속 단어들이라도 익혀보려고 뒤적였습니다.
하지만 애써 찾은 말뜻들은, 항상 두개골 언저리를 맴돌다가 증발해 버리곤 합니다.
괜스레 게르만족에 대한 서운함만 생겼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Ich liebe dich)’ 대신 주현미 누나의 ‘짝사랑’을 배우고 싶은 충동이 일렁입니다.
그래도 노래에 얽힌 스토리는 재밌습니다.
음악의 성인 루트비히 판 베에토벤의 동명곡이 아닙니다.
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시에, 노르웨이 작곡가 에드바르 하게루프 그리그(Grieg, Edvard Hagerup)가 곡을 붙였습니다.
안데르센은 연시(戀詩: love poem)는 소프라노 제니 린트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그 고백에 선율을 더한 그리그의 곡은 여성 성악가 니나 하게루프의 마음에 닿았으니까요.
훗날 부인이 된 니나가 원래 그리그의 사촌누나였다는 게, 21세기 한국의 큰 머리 아저씨에겐 다소 혼란스럽습니다.
Ich liebe dich는 2분이 조금 넘는 짧은 곡입니다.
하지만 여운은 길고, 울림은 깊습니다.
네 달 가까이 백 번도 넘게 부르면서, 이 노래로 고백을 받는 이는 평생 가슴 속 선물로 간직할 것 같다고 느낍니다.
“Du mein Ge-dan-ke, du mein Sein und Wer-den!”
첫 소절의 뜻은 대략 “그대는 나의 관념. 나의 사람이고 나의 사람이 될 겁니다”(You my thought, you are and will be mine) 정도 같습니다.(전 독일어 까막 eye입니다!)
한동안 얌전했던 궁금증이 씨익 웃으며 스멀거립니다.
관념을 뜻하는 ‘Gedanke’가, 길 가다가 주워들은 감사의 말 ‘danke’와 연결됐을 거란 짐작을 해봅니다.
독일어 danke와 영어 thank 모두 원시인도유럽어(PIE: Proto-Indian -European) ‘think’에서 왔습니다.
고마움을 “당신을 생각합니다”로 표현했습니다.
“(나를 배려하고 선의를 베푼)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정도로 여길 수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말 ‘고맙습니다’는 어디서 왔을까요?
‘감사합니다’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지금부터 쓰는 이야기엔 정보와 제 추측이 혼재합니다.
흥미를 느끼는 분들께는, 꼭 팩트체크 해보시라고 권합니다.
주로 bear로만 알려진 곰에 ‘신(god)’이란 뜻이 있답니다.
쑥마늘 단군신화는 거르겠습니다.
신(곰/검)은 인간을 지켜주고, 살 공간과 먹을 음식을 주는 위대한 존재입니다.
‘고맙습니다’를 ‘(내게 은혜를 베푼) 그대를 곰(신)처럼 존경합니다’라고 추측하는 견해들에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는 한자어 ‘감사(感謝: 느낄 감, 갚을 사)’에서 온 말입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란 뜻입니다.
중국어 ‘謝謝(셰셰: xiè‧xie)’도 갚을 사(謝)자가 반복됩니다.
“갚고 또 갚겠습니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일본어 “有難うございます(아리가또 고자이마쓰)”는 직역하면, ‘어려움님이 계십니다’란 뜻입니다.
“(당신의 은혜에) 이 자리에 있기 어렵습니다.”
우리말 표현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와 비슷합니다.
고마움을 전하는 프랑스어 ‘merci’는 영어 ‘mercy’처럼 ‘(당신은)자비롭습니다’를 뜻한다고 추정하는데, 원래 mercy는 ‘보상받아 마땅합니다’에 뿌리가 있는 듯합니다.
스페인어 ‘gracias’는 영어 ‘grace’처럼 ‘만족스럽습니다/기쁩니다’(pleasing)에서 왔습니다.
끄적대다 보니 조금 길어진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 독일/미국
danke/thank: 생각할게요.
- 한국
고맙습니다: 곰(신)처럼 존중합니다.
감사합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을 느낍니다.
- 중국
謝謝: 갚고 또 갚겠습니다.
- 일본
有難うございます: (이 자리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 프랑스
merci: 자비우십니다.
보답받아 마땅하세요.
- 스페인
gracias: 만족스럽습니다.
공통적 ‘고맙습니다’란 표현은, 각 나라의 문화와 사고에 바탕을 둡니다.
대개 우리는 우리말과 외국어를 1:1로 매칭시킵니다.
이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가치 있는 활동입니다.
여기에 호기심 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조금 더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행동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성악가 윤 선생님과 작고하신 작곡가 그리그 선생님께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생각할게요, 보답할게요. 베풀어주신 은혜로움에 기쁩니다.^^
*1)슈바인(Schwein)은 돼지(swine)이고, 학세(Haxe)는 무릎/다리입니다. Haxen은 Haxe의 복수형 단어라네요. 결국 ‘돼지(족)발’이로군요.^^*
*오늘도 이렇게 노안이 깊어졌습니다. 자일리톨 사먹어야겠습니다.
아… ‘지아젠틴’이라네요.
괜히 핀란드 국민들과 서먹해질 뻔했습니다.
[사진 설명: 니나와 에드바르. 박시후랑 아인슈타인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