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에너자이저
"아부지마마, 배터리의 어원은 무엇이옵니까?"
지난 일요일, 논술시험을 마치고 나온 고3 아들과 저녁을 먹다가, 아이가 핸드폰에 보조배터리를 끼우며 묻습니다.
"아들 대감, 아부지가 에너자이저나 로케트에 다니지 않는데, 어찌하여 묻는 것이오?"
"신문에 2차전지 소재 기사가 자주 나오길래, 아부지는 아실 것 같아서 여쭈었사옵니다.”
아... 그렇습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원격 조정 자동차나 탱크를 선망하며 자라온 X세대 아빠에게, 배터리는 아직 건전지입니다.
유딩 때부터 핸드폰을 숟가락보다 자주 쥐는 2천년대 디지털 베이비 아들에게, 배터리는 핸드폰이고 전기차인가 봅니다.
이제 저도 어엿한 구세대인가 봅니다.
방망이로 한 대 얻어맞는 듯 멍했습니다.@_@;;
맞습니다.
배터리는 방망이에서 왔습니다.
battery의 말뿌리인 라틴어 battre는 '두들겨 패다(beat)'는 의미입니다.
이 말이 16세기 프랑스에서 폭격(bombardment)과 포병부대(artillery)로 확장되었고, 18세기 미국의 벤저민 프랭클린이 전지(電池)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프랭클린은 전지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구성요소를 묶음으로 적용했는데, 이를 대포부대와 연결하여 작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자어 '전지(電池)'를 '벼락 전(電)'자에 '연못 지(池)'자를로 쓰는 이유는, 최초의 전지가 병에 액체 상태로 담겨 있어서라고 추정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건전지(乾電池)는 액체가 아닌 고체 상태로 전기를 저장해, 전지 앞에 '마를 건(乾)'자가 붙은 듯합니다.
“문제는 어땠어?”
조심스레 아이에게 시험에 대해 묻습니다.
“재밌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썼어요.”
씨익 웃는 녀석의 표정을 보고, 여러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그래,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다니 다행이네. 아빠는 우리 귀염둥이가 자랑스럽다.”
조만간 합격자를 발표하겠죠.
결과가 어떻든 저도 최선을 다해 아들의 꿈을 지원해 주겠습니다.
힘세고 오래가는 배터리 ‘에너자이저’가 아부지의 숙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