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풀 Nov 17. 2023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 삭힌 청어 조

용자의 도전 요리

지난 주 ‘요리의 과학’이라는 음식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EBS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쿠팡플레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총 4부작입니다.

열, 힘, 발효, 맛이 각 주제인데, 이야기는 음식을 초월합니다.

유전, 진화, 생존, 철학을 맛/영양성분과 융합해,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나갑니다.

사이사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라 일시정지를 활용하니, 그런 여유를 즐길 수 있어 편리했습니다.


3부 ‘발효’편이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지금부터 들려드리는 발효와 그 음식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복잡할 수 있으니, 미리 키미테를 붙여 주셔도 좋습니다.(맥소롱 아닌 게 어딥니까~^^*)


‘발효(醱酵)’란 ‘술 괼 발(醱)’자에 ‘삭힐 효(酵)자로 이뤄집니다.

‘술 익히듯 삭힌다’는 뜻입니다.

영어 ‘fermentation’은 ‘부글부글 끓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fervere’에서 왔습니다.

발효가 진행될 때 거품이 일어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는 짜릿한 냄새를 풍기는 삭힌 음식들이 있습니다.

모험심 강한 미식가들의 투지를 불러일으키죠.

처음에는 도전이고, 익숙해진 후엔 즐깁니다.


아시아에선 우리나라의 삭힌 홍어와 중국 취두부나 송화단이 대표적입니다.

뜻밖에도 유럽에 이들을 뛰어넘는 세계에서 가장 독한 녀석이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삭힌 청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입니다.


항상 그렇듯 가장 먼저 형태소(形態素: 모양 형, 모습 태, 바탕 소. 말의 뜻을 가진 최소 단위. morpheme) 분석에 들어갑니다.


- sur=시큼한(sour)

- strömming=herring(청어)


‘발효되어 시큼한 맛이 나는 청어 절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청어(靑魚)’는 ‘몸색깔이 파란 물고기’입니다.

그렇다면 청어의 영단어 herring도 ‘파란 물고기’일까요?


아닙니다.

Herring의 정확한 어원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말뿌리로 추정되는 고대영어 har는 회색(gray)/흰 것(hoar)을 뜻합니다.


왜 같은 물고기가 어디에선 퍼랭이고 다른 데선 흰둥이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청어는 파란 색깔이 두드러지고, 유럽 청어 herring은 대체적으로 허옇습니다.

참 쉽죠?


그렇다면 오늘의 주인공인 ‘삭힌 청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의 청어 스트뢰밍(strömming)은 무슨 뜻일까요?

스웨덴어 스트뢰밍(strömming)은 개울이나 흐름을 의미하는 영어 스트림(stream)과 한뿌리입니다.

또한 스트림이 동사로 쓰일 때, ‘줄을 지어 이동하다’라는 뜻도 가집니다.

큰 무리로 집단생활을 하는 청어의 습성이 드러난 이름 같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언어가, 각각의 단어들로 1:1 매칭이 될 거라고 막연히 짐작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어’ 하나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 살아가는 지역이나 생태적 특성에 따라, 이름은 전혀 다르게 붙여집니다.

이러한 전제만 공감하더라도 어원풀이의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한국의 푸른 물고기 청어는, 유럽에선 허연 물고기 헤링이고, 스웨덴의 스트뢰밍은 줄지어 다니는 물고기입니다.

이 스트뢰밍을 시큼하게 발효시킨 생선절임의 이름이 ‘수르스트뢰밍(Surströmming)’인데, 악취음식의 세계 챔피언입니다.


이게 뭐라고 이틀 동안이나 끄적댔네요.

앞으로 TV 프로그램도 아껴서 시청해야겠습니다.

^^*

작가의 이전글 [부대찌개 투어] <하나> 동두천 가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