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소년기의 위로]

by 어풀

1992년 6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이른 아침 논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목포역에서 내렸다.

목포항에서 배를 타기 전, 유달산에 올라갔다.

한낮에 수백 개 계단을 오르려니, 오라지게 더웠다.


내려올 걸 뭐라러 올라가냐며 투덜대던 짝꿍 계봉이의 뒤통수를, 교련교사 탄감자는 플라스틱 도시락통 모서리로 후려쳤다.

어느집 어머니가 새벽부터 정성들여 싼 도시락이었을 텐데.


그날 하숙집 아주머니가 싸주셨던 도시락 김밥이 떠오른다.

네이버에서 주워온 김밥도시락 사진. 참 맛깔스러워 보인다.

특별한 재료가 안 들어가도 김밥은 참 맛있다.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에 빠지지 않는 벗거리였다.


김밥은 가난하고 고단했던 소년기에, 푸근한 위로 같은 특식이었다.

그래서 도시락에 빈 공간이 넓어지는 만큼, 얼굴에 그늘도 깊어졌나 보다.

탐구생활 안 해놓고 개학날 교수형을 기다리는 인민학생의 착잡한 마음처럼.

그래도 김밥은 꾸역꾸역 다 먹었다.


방금 엄마한테 김밥 싸달라고 말했다가 혼났다.

이 더위에 엄마를 고생시켜야 속이 후련하냐며 해바라기 오태식이처럼 포효하셨다.

불효의 아이콘이 돼버렸다.

우리 엄마는 자식 행동에 효불효가 분명한 분이다.

빌어먹을 김밥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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