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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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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Mar 17. 2020

서초동

마음의 무릎이 꺾인다면, 아마 지난 금요일 아침 같은 소리가 났으리라.

순간 모든 것이 털썩 주저 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좌절이나 실패, 불안 등 위험하고 흔들리는 것들이 아니었다. '털썩'이라는 의성어 그대로 무언가를 내려놓는 소리였다.

오랜 시간을 전전긍긍했다. 방향부터 걸음걸이, 속도, 팔의 각도 등등 모든 요소들이 딱딱 들어맞고 있는지 자신없었다. 이곳의 벽은 너무도 높고 두터웠고, 주변엔 뛰어나고 열심인 이들 천지였다. 나는 창백한 푸른 점만 못한 존재 같았다. 운 적은 없어도, 늘 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음의 무릎이 꺾인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우는 기분으로 잰걸음치던 날들이 내게는 최선이었다. '너는 할 수 있는 만큼 다 했구나.' 이곳에서 만 4년을 채운 끝에야 알았다.



서초동이 좋았고 싫었다. 그립고 지겨웠다. 애정하다가도 애증했다. 법 안에 있는 무언가를 직시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다가도 그 말쑥한 세계 밖 어딘가에 내가 놓친 무엇이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렇게 시간을 삼키고 게워내기를 되풀이하다가 이제야 알았다.

나는 온 힘을 쏟았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이유도, 불안해할 까닭도 없다. 출입을 뚫어야 할 때는 뚫어야 해서, 유지해야 할 때는 유지해야 해서 해야 할 일들을 있는 껏 해내려했다. 달성하지 못한 목표들은 그 자체로 현실이면서 이상이었다. 그저 자책하고 후회한다고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제는 정말 때가 됐다. 끊임없이 정의를 말하고 고민하며 때로는 정의를 묻는 이곳을 떠날 때가 됐다. 여긴 세상의 끝도, 전부도 아니니까. 웃으며 작별을 고하고 싶다. 언젠가는 다시 만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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