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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릭 Jun 28. 2020

시간의 힘

이탈리아 의회라고... ⓒ Marco Oriolesi
"시간의 힘이..."


며칠 전 한 취재원은 '관행'을 이렇게 말했다. 한 달 가까이 풀리지 않고 있는 원 구성 협상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판이 달라질 것 같지 않으니, 판을 깨야 뭔가 틈새가 생기지 않겠냐"고 답했다. 이른바 '18대 0', 민주당이 전체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해 서둘러 3차 추경 예산 처리를 매듭짓는 일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시간의 힘이라는 걸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동석한 동료 역시 맞장구를 쳤다. '거대 여당의 오만함', '입법독재'라는 당장의 이야기는 그렇다쳐도, 언젠가는 역풍이 불지 않겠냐고. 나는 생태탕을 후후 불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는 얘기니까.


사실 모든 얘기는 저마다 맞다. 각자 서 있는 위치와 바라보는 풍경에 따라 적절한 답을 낸다. 사회는 그 '저마다 맞는' 얘기들의 총합이고, 정치는 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정치인도 "권력은 뭘 할 수 있는 힘이고, 정치는 뭘 할지 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와 권력을 정의한 말들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닿은 표현이었다.


그런데 2020년 6월의 한국 정치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3주 동안 가까이서 목격한 모습은 무책임했다. 제일 큰 잘못은 야당에 있다. 아무리 '그들만의 맞는 얘기'를 가져온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국정의 발목을 잡는 일을 눈감아주긴 어렵다. 평시라면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K방역'에 취해 있는 쪽은 도대체 누구인가. 울며 겨자먹기로 가게문을 여는 상인들, 건물 곳곳에 붙어있는 '임대' 딱지, '비대면' 열풍에 일감을 잃거나 혹은 일감이 넘쳐 헉헉대는 노동자들은 아니리라. 오히려 이런 현실에도 명분과 관행을 내세워 협치를 말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K방역에 취해 달의 저편 같은 풍경에 무감각하진 않은가. 의심스럽다. 

ⓒ Pauline Loroy

이런 상황을 언제까지,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도 고민이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일을 대신 알아보는 것, 동시에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아도 알아야 하는 일을 파악하는 것이 이 업의 양대 축이다. 


그렇다면 국회 원 구성은 둘 중 어느 쪽일까. 현재로선 후자에 가까운 느낌이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느 당이 어느 상임위원장 자리를 가져가느냐에 있지 않다. '왜 저러고들 있냐'에서 출발해 지지정당에 따라 '분노의 타격점'이 갈리는 식이다.


장기적 -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에서 말하는 의미는 아니고 - 으로 생각해보면 원 구성이 중요하긴 하다. 어떤 법안이 어떤 부위는 깎이고, 어떤 부위는 덧대여져 본회의 문턱까지 나아갈 수 있냐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억지 화백회의 같은 면도 있지만, 단 한 명의 소신 있는 국회의원이 끝까지 정당한 반대/찬성을 할 때, 설령 결과가 실패로 남더라도 세상이 기억한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의 풍경에, "시간의 힘"에 동의하기 어렵다. 이 모든 아귀다툼이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냉방병을 걱정하는 사람들끼리 저마다 주판알을 굴리는 것처럼 읽힌다. 그 사이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기조차 버거운 이들은 픽픽 쓰러져간다. 이들에게 "시간의 힘"은 관행이나 명분이 아니다. 생존이고 위험이다. 삶 그 자체다. 


앞으로 여의도에서 무수히 많은 말과 말, 힘과 힘, 그리고 명분과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목격할 풍경들을 단지 '정치'의 이름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환멸을 느끼기보다는 희망을 발견하고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데 아직은 자신이 없다. 나는 무엇으로, 어떻게 존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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