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기본사회 유감

기본소득은 공짜가 아니다 –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

by 신밧드

요즘 다시 기본소득 이야기가 들린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본사회’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유연하고 조심스럽게 돌아온 느낌이다.

이재명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말은 곧 정치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간다.
누군가는 열광하고,
누군가는 조건반사처럼 비난한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그가 던진 화두만을 꺼내 놓고 생각해보고 싶다.

지금 우리에게
기본소득, 혹은 기본사회라는 개념이
왜 다시 필요한지를 말이다.


예전에는
‘일하면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자동화는 인간의 노동을 조용히 대체한다.

마트 계산원, 콜센터 상담사, 택배 기사,
프리랜서 작가, 운전사, 통역사…

누구나 자기 일자리가 언제 사라질지 불안해하는 시대다.

물론 사람들은 말한다.
“새로운 일자리는 언제나 생겨왔다”라고.

그 말도 맞다.


하지만 이제 그 ‘새로운 일자리’는
더 높은 기술과 자본을 요구한다.

기계에 밀려난 사람들이
그 자리에 곧장 들어갈 수는 없다.

이제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들을 요즘은 이렇게 부른다.
무용 계급.

더는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생산자로도, 소비자로도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이 사람들을 돕자고 나온 게
기본소득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기본소득이란

우리가 이미 참여하고 있는
디지털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매일 검색하고, 클릭하고,
사진을 올리고, 리뷰를 쓰고, 좋아요를 누른다.

이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어
기업의 수익을 창출한다.

기업들이 어떤 상품을 만들지,
어떤 광고를 누구에게 붙일지—

그 결정은
우리의 디지털 흔적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결국 우리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디지털 자본주의의 새로운 노동자다.

그런데 이 노동은
아무런 보상이 없다.

이익은 기업에 쌓이고,
우리는 여전히 무료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수익의 일부가,
그 데이터를 만든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과연 공짜일까?

나는 그것이 지극히 정당한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이 기본소득을 처음 말했을 때
많은 이들이 그를 사회주의자라고 몰았다.

그러자 그는 단어를 바꿨다.
기본사회.

그가 왜 단어를 바꿔야 했는지,
나는 짐작이 간다.

정책보다 프레임이 먼저 씌워지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준다’는 말은
곧 포퓰리즘이나 빨갱이로 번역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사회는 분명히 어떤 전환점에 와 있다.

기본소득은 과거의 ‘공짜 돈’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사회계약으로 읽혀야 한다.


이재명이 본 방향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미래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통찰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시대에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고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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