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 금관의 예수

진짜 예수를 찾기

by 신밧드

예수는 사라졌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여전히 울려 퍼진다.

교회마다, 설교마다, 찬송마다 그의 이름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이름은 이제 기억의 껍데기, 복제된 기호일 뿐이다.

사랑의 혁명가는 사라지고, 그의 자리를 교리의 관리자들이 대신하고 있다.


구약은 피로 세워진 율법의 세계였다.
신약은 사랑의 얼굴로 포장된 하늘의 협박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신앙은 그 두 세계가 섞여 만들어진
새로운 제국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전히 권력자의 편에 서 있고,
예수의 이름은 제도와 교리를 정당화하는 문장으로 쓰인다.
그가 썼던 가시관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금관이 씌워졌다.
그 금빛의 무게 아래서, 예수는 다시 침묵하고 있다.


그가 십자가에서 허문 벽들은 다시 쌓였고,

그 위에는 더 높고 화려한 십자가가 세워졌다.
오늘의 교회는 더 웅장하고, 더 안전하다.
예배당의 불빛은 밝지만, 그 안의 신앙은 점점 어두워진다.

믿음은 사랑이 아니라 동조의 증명서가 되었고,
기도는 하나님께 올리는 말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충성 서약이 되었다.


예수의 이름은 여전히 불리지만,

그 이름이 지녔던 불편한 사랑과

위험한 자유는 사라졌다.

이제 묻자.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예수인가?
아니면 금관을 쓴, 안전한 우상인가?

예수는 여인을 제자의 자리로 불렀지만, 교회는 “여자는 잠잠하라”고 한다.
예수는 폭력을 멈추라 했지만, 신앙의 이름으로 혐오가 퍼진다.

예수를 잃은 신앙은 사랑 없는 열심이 되고,
진리 없는 정의가 되며, 빛 없는 믿음이 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예수를 잃었다는 자각이 곧 그분을 되찾기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금관을 벗기고, 그 아래 남은 가시의 자국을 보아야 한다.
그 자국이야말로 사랑의 흔적이며,
자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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