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여자는 잠잠하라고?

성경 속 여성 혐오의 역사

by 신밧드

여성 비하는 구약에도, 신약에도 고루 스며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시대의 풍속이 아니라,
성경이 인류에게 남긴 가부장제의 구조적 유산이다.

구약의 율법과 신약의 교리는 모두
여성의 몸과 목소리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리고 그 질서의 이면에는 남성 권력을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한
가부장적 신앙체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는 그 역사를 따라가며,
‘거룩’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된 차별의 뿌리를 들여다보려 한다.


거룩 = 구별 = 차별

성경은 스스로를 ‘거룩한 책’이라 부른다.
그러나 히브리어 카도쉬(Qadosh)의 본래 뜻은 “구별, 분리”다.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과 구별되었고, 제사장은 백성과 구별되었으며,
정결한 것은 부정한 것과 철저히 구별되었다.

문제는 이 구별이 곧 차별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여성은 출산과 월경 때문에 반복적으로 “부정한 존재”로 규정되었고,
성전 접근조차 제한되었다.

‘거룩’은 사실상 가부장제의 종교적 언어였다.
여성은 신의 이름 아래 배제되고, 그 배제는 곧 질서의 유지로 포장되었다.


민수기 5장 ― 의심받는 몸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민수기 5장의 ‘간음 테스트’다.
남편이 아내를 의심하면 제사장은 여인을 성막으로 끌고 와
바닥의 흙을 긁어 물에 타고, 저주 문구를 그 물에 씻어 넣는다.
그 물을 여인에게 마시게 한 뒤, 결과를 기다린다.

“간음했다면 배가 불어나고 넓적다리가 마를 것이다. 무죄라면 아무 일 없을 것이다.”

이 의식은 여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다루는 종교적 폭력이었다.
남편의 의심만으로 한 여인은 공동체 앞에서 모욕과 굴욕을 감내해야 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행된 의심의 의식 —
그것이 바로 가부장적 신앙체계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이었다.


출산과 월경 ― 죄의 기호로 된 몸

레위기 12장은 여인이 아들을 낳으면 7일간 부정하고,

딸을 낳으면 14일간 부정하다고 규정한다.
생명을 낳은 행위조차 ‘부정’으로 여겨진 것이다.

레위기 15장은 월경 중인 여인을 부정하다고 명시한다.
그 여인과 접촉한 자도 하루 종일 부정하다.

여성의 몸은 정결과 부정의 경계로 설정되었고, 그 몸은 죄의 상징으로 격하되었다.
거룩은 결국 여성의 신체를 통제와 차별의 장치로 삼았다.


바울의 독단과 교회의 맹신

신약으로 넘어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울은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장)고 명령했고,
“여자는 남자에게 복종하라”(에베소서 5장)고 썼다.

교회는 바울의 문장을 맹신하여 가부장적 질서를 고착화시켰다.
여성은 가르칠 수도, 설교할 수도, 지도자가 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권위가 남성 지배의 신학적 근거로 작동했다.

예수가 품었던 여인들 — 사마리아 여인, 간음한 여인, 막달라 마리아 —
그들의 이름은 복음의 중심에서 사라졌다.
예수의 사랑은 교회의 제도 속에서 다시 침묵으로 바뀌었다.


마녀사냥에서 오늘까지

중세 교회는 여성을 “마귀의 통로”라 불렀다.
마녀사냥이 시작되었고, 수많은 여성이 불길 속에서 죽었다.
근대에 이르러서도 여성은 “가정의 순종자”로만 허락되었고,
정치와 교육의 권리는 “신의 질서”라는 이름 아래 배제되었다.

오늘날조차 일부 교단은 여전히 여성 안수를 거부한다.
그들은 말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그 질서가 정말 하나님의 뜻이었을까?
아니면 가부장제가 빌려 쓴 신의 목소리였을까?


결론 ― 침묵의 유산

성경은 여성 차별을 단순한 사회 관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했다.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을 만들었고, 구별은 배제를 낳았으며,
배제는 차별로 굳어졌다.

그 결과, 신앙의 이름으로 침묵이 강요되고, 침묵이 거룩으로 미화되었다.


“여자는 잠잠하라.”
그 말은 단지 한 시대의 구절이 아니라,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적 신앙공동체가 만들어낸 독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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