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남긴 치명적 유산
폭력은 단지 인간의 본능이 아니라,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때 가장 정교해진다.
성경은 그 역사의 시작점에 서 있다.
구약의 땅에는 학살이 있었고, 신약의 하늘에는 지옥이 새겨졌다.
그리고 그 사이,
여성 차별과 불평등이 ‘거룩’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신·구약 성경은 2천 년 동안, 국가와 교회, 제국과 개인에게 폭력의 언어를 가르쳤다.
그 언어는 시대를 거듭하며 형태를 바꾸었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그것은 더 이상 칼과 창이 아니라, 기도문과 교리, 설교와 신앙의 옷을 입은 폭력이었다.
민수기의 간음 테스트, 레위기의 월경과 출산 규례, 바울의 침묵 명령.
성경은 여성을 반복적으로 부정한 존재로 규정하고,
그 차별을 단순한 사회 관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선언한다.
교회는 바울의 문장을 맹신하여 가부장적 질서를 고착화시켰다.
그 결과 여성은 지도자의 자리를 잃고, ‘순종과 침묵’이 신앙의 미덕으로 강요되었다.
달란트 비유와 포도원 품꾼 비유 또한 부자의 논리를 은폐하거나 노동자를 억눌렀다.
결국 성경은 불평등 구조를 신의 뜻으로 포장한 교과서가 되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은 “동정심을 버리라”는 명령으로 시작되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몰살하는 행위가 하나님의 뜻으로 기록되었다.
그 서사는 이후 수많은 전쟁에서 “거룩한 전쟁”의 모델이 되었다.
십자군 전쟁은 “하나님을 위해 싸운다”는 구호 아래 이루어졌고,
수십만 명이 죽고 도시가 불타며, 이교도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성경은 이 모든 살육 위에 신성의 깃발을 세웠다.
유럽의 제국주의는 성경과 함께 확장되었다.
“땅을 정복하라”는 창세기의 구절은 식민지 정복의 구호가 되었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호주의 원주민들이 학살되거나 노예화되었다.
선교는 제국의 첨병이 되었고, 성경은 총과 함께 식민지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언어와 문화가 사라졌다.
성경은 원주민의 신앙을 파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는 문명화된 무기가 되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또한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중세 기독교의 반유대주의에 닿아 있다.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마태복음 27장)
이 한 구절은 유대인을 예수의 살해자로 낙인찍었다.
유럽 사회의 반유대주의는 신학적 구조 속에서 자라났고,
20세기에 이르러 그것은 최악의 학살로 폭발했다.
종교적 배제가 인종적 폭력으로 변한 것이다.
21세기에도 성경은 여전히 폭력의 도구다.
동성애를 죄라 선포하는 설교,
여성 안수를 거부하는 교단,
타 종교를 배척하며 전쟁을 정당화하는 근본주의.
심지어 세계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군사 행동을 “하나님의 뜻”이라 포장한다.
교회에서 오가는 말들은 여전히 성경에 뿌리내린 가부장제와 억압,
그리고 폭력의 언어를 되풀이한다.
그러나 폭력의 기원은 단지 문장 속에 있지 않다.
더 깊은 곳, 인류의 무의식 속에는 잃어버린 원형이 숨어 있다.
인류의 원시 사회는 모계 중심이었다.
여성은 생명을 낳는 존재로서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여신은 풍요와 자연, 생명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농경과 전쟁이 사회의 축이 되면서
생명을 낳는 힘보다, 생명을 지배하는 힘이 숭배되었다.
그때부터 남성 신들이 여신의 자리를 차지했고, ‘아버지의 신’은 ‘어머니의 신’을 몰아냈다.
창조는 더 이상 자궁에서가 아니라 말씀에서 이루어졌다.
여성의 몸이 낳던 세계는 남성의 언어로 다시 쓰였다.
그 순간, 가부장제는 종교의 얼굴을 쓰고 세상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성경의 폭력은 신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제도,
특히 가부장제가 신의 이름을 빌려 정당화한 욕망의 구조였다.
하늘의 명령(신약), 땅의 권력(구약), 그리고 인간의 폭력.
결국 이 셋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움직인다 —
지배하고, 구분하고, 배제하려는 욕망.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남성 중심적 질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