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서 자유로
프롤로그에서 나는 물었다.
“인류는 어디에서 폭력을 배웠는가?”
이제 책의 끝에서 다시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는 대답한다.
구약의 학살, 신약의 지옥,
교회의 전쟁과 차별.
수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죽어 갔고,
성경은 그 폭력에 신성한 명분을 부여했다.
그러나 성경은 하늘에서 불러준 신의 속삭임이 아니다.
인간의 손과 머리,
욕망과 두려움이 함께 써 내려간 기록이다.
그 안의 폭력은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인간이 신의 이름을 빌려 쓴 권력의 언어였다.
창조주는 피를 원치 않는다.
그분은 칼을 쟁기로, 창을 낫으로 바꾸라 명하셨다.
폭력은 언제나 인간이 만들어 낸 산물이었고,
하나님의 이름은 그 폭력을 덧칠하는 데 이용되었을 뿐이다.
예수는 그 거짓된 신앙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오셨다.
그는 힘이 아닌 사랑으로,
율법이 아닌 자비로,
보복이 아닌 용서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죄인과 세리의 집에 들어가 함께 식사했고,
돌을 든 무리 앞에서 말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칼을 든 제자에게는 “칼을 거두라” 하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자신을 못 박은 이들을 위해
“저들을 용서하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른다.”라 기도하셨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이 진실을 외면한다.
그들은 알고 있다.
다만, 모르는 척할 뿐이다.
예수의 삶은 폭력에 대한 가장 완전한 부정이었고,
그의 죽음은 폭력의 사슬을 끊은 마지막 행위였다.
예수는 미움을 사랑으로, 배제를 포용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었다.
그분이 하신 일을 한마디 말로 바꾼다면,
아마 그것은 자유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과 차별을 걷어내고,
예수가 몸소 보여준 사랑과 비폭력,
그리고 약자와의 연대를 다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신앙의 시작이며,
예수를 잃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되찾아야 할 마지막 진실이다.
그리고 그 진실의 끝에는 자유가 있다.
성경의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것,
불편한 언어들을 무시하는 것,
하늘을 날며 땅에서 먹이를 주워 먹는 새처럼 —
하늘과 땅, 믿음과 이성을 오가며 사는 자유.
두려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모든 것을 이끄는 상태 —
그것이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였고,
폭력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인간의 해방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폭력의 기록이 아니라,
사랑과 자유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탈출의 기록이다.
우리가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해치지 않고,
인간의 이름으로 서로를 껴안게 될 그날까지.
그때, 인류는 비로소
하나님이 처음 의도하신 자유의 얼굴을
되찾게 될 것이다.
사랑은 숭고하지만, 자유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