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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드즈모임 Jun 13. 2024

경제적 존재 너머 청년의 정체성 상상하기

청년을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기

청년 정책. 한때 화두를 장식했던 단어이며, 지금까지도 공론되는 영역 중 하나이다. 청년은 지방에서 소외되는 대상 중 하나인데, 안착하지 못한 상태와 불안정한 직업으로 지역은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그들에게 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대학생 또한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즉, 장기적으로 지역에 정착하지 않는 집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청년기본법>이 제정된 지 4년이 지났지만, 해법은 보이지 않고 방법을 찾으려는 이들은 흩어진 상태다. 정권의 변화에 따라 후퇴하는 청년 담론과 청년 인구 감소로, 그들의 삶의 모습은 모자이크처럼 뿌옇게 비치고, 청년 정책은 무색하게 추락하고 있다.


청년 취업난, 학자금 부담, 주거난 문제 해결하는 청년기본법 아세요? (출처: 정책주간지 K공감)


원주시에서 운영하는 청년정책과 사업들을 살펴보더라도 청년은 경제적 존재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는 지역이 청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지 근거한다. 인간은 노동하는 존재 외에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존재)’로 불리며, 하루 평균 일하는 8시간 외에는 놀이와 문화를 즐기며 살아간다. 사람들과 교류하고, 우정과 사랑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관계적 존재’이며, 자신의 존재를 탐구하고 이를 내보이는 욕망을 지닌 ‘철학적 존재’이다.


특별히 인간은 독립적 존재이다. 프랑스혁명에서 시작된 인권선언에서부터 UN에서 채택한 세계인권선언문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인정했고, 주권을 획득하기 위한 국가 단위의 독립운동부터 여성, 흑인 등 존재의 이름을 되찾는 집단적 운동까지 투쟁은 우리의 삶을 뒤바꿨다.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그 시작은 청년의 때에 시작된다. 청년(靑年)이라고 불리는 푸른 세대들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무엇으로 일하고, 어떻게 놀 것이며, 무엇을 주요한 가치로 품고 갈 것인지 결정한다.


그러나 청년은 자기 욕망을 오롯이 드러내는 장소를 박탈당하거나 자신의 주체성을 표현하는 기회를 잃어버렸다. 특별히 ‘입학-졸업-취업-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규범에서 소외되거나 스스로 소외되겠다고 선언한 지 오래다. 서로 피 흘리며 상대를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경쟁의 시대에서 청년은 흘리는 피를 미처 닦지 못해 온몸이 피로 물든 적년(赤年)으로 재명명해야 마땅하다. 놀이, 문화, 관계, 철학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오직 경제적 주체로서만 지탱할 것을 요구하는 시대 앞에 어떤 해답이 필요한가.


지역사회는 청년을 경제적 존재를 넘어 인식해야 한다. 청년은 노동을 통해 지역에 정착하며 지역사회는 청년의 경제활동을 돕는 정책을 양산한다. 그러나 (1) 경제 활동으로 진입을 주저하는 이들 (2) 경제 활동을 멈춘 이후 재진입하지 못하는 이들 (3) 경제 활동 외 다른 존재로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경제도시’ 원주의 방향을 되묻게 한다. 특별히 ‘관계적 존재’로 청년을 응시하는 담론이 더욱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1. 청년의 정상성에서 탈락한 이들 살펴보기

지자체는 정상적 청년을 기준으로 정책을 마련한다. ‘평범한 가족’을 가진 ‘대학을 졸업’한 ‘비장애인’ 말이다. 청년집단은 단 하나의 특성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2024년 청년재단에서 진행한 ‘청년 다다름 사업’은 자립준비청년, 가족돌봄청년, 장기미취업청년을 대상으로 사업을 운영한다. 가족과 함께 살지 않고, 시설에서 성장한 이후 퇴소하여 홀로 살아가야 하는 청년 혹은 아픈 가족을 부양하느라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없었던 청년 등 다양한 원인으로 노동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2024년 청년다다름사업 운영기관 선정안내 (출처: 데일리팝)


2023년에 개봉한 정주리 감독의 <다음소희>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취업전선으로 뛰어든 학생들의 현실을 들춰낸다. 지자체에서 마련하는 교육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관련 직무 경험이 필요하다. 연관한 경험과 스펙이 있어야 교육을 수강하고 배움의 의지를 증명할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는 자들에게 지자체의 청년 정책은 어떻게 작동되는가. 2024년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경계성 지능 청년 일경험 시범사업’을 추진하는데, 원주는 지난 4월, ‘경계선 지능인 지원 활성화 방안 논의’를 위한 청소년 기관 간담회를 개최했다. 청년을 대상을 향한 논의로 이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정상적 청년에서 탈락한 이들을 살펴보며 다양한 사업과 정책이 연결될 때 청년의 범위가 확장되고 이름이 되찾아질 것이다.


2. 독립적 주체로 지원하기

대학 졸업 이후 자연스럽게 취업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취업에 빈번히 실패할 때 이를 한심해하는 부모와 집을 견디지 못하는 자녀의 갈등은 빈번하다. 특별히 집에서 떠나갈 수 없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청년 대상의 주거정책은 부모와 같은 도시의 주소지를 가진 이들은 제외한다. 주거지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다른 도시로 떠날 수밖에 없다. 도시는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공동체의 총합이기에 도시를 떠나면 나를 지지하는 관계와 인프라를 함께 잃어버린다. 주거정책은 부모와 떨어져 자기 삶을 살아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시발점이다. 


청년들은 평생토록 구축된 부모와의 밀접한 관계로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기 어려워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정신세계에 남아 현재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등 내면에 과거 유아기적 모습이 남아 있는 내면아이는 부모와의 의존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취업을 시도하기 전 부모로부터 독립되지 못하는 상태가 근본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취업의 목적, 자아실현의 방향을 잃어버린 청년들에게 현재의 상태를 전복할 에너지는 남아 있지 않다.


'부모로부터 독립' 청년 10명 중 9명 "독립생활 만족" (출처: 잡코리아X알바몬)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세심하게 이뤄져야 한다. 단발적인 행사와 프로그램을 넘어서 지속적으로 교류를 돕는 문화 프로그램은 한 사람의 준거집단을 이동하게 돕는다. 집밖으로 향하여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지닌 이들과 소통한다. 과거에 결정한 정답을 재검토하며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나간다. 정보는 교환되고, 주체적인 논의는 구체화된다. 새로운 공동체를 만나 이야기를 얻고 내뱉을 때 청년들은 자기다움을 얻을 수 있다.


현재 상담 지원은 개인에 국한되어 있다. 한 개인이 마음을 먹고, 사회로 복귀하면 경제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지지하는 마음과 실질적인 지원이 없다면, 한 개인은 독립하는 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개인과 가족 공동체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두 주체 모두 변화를 맞이해야 한다. 가족상담을 통해 가족의 문제를 발견하고 풀어나가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집단에서 갈등은 당연하며, 문제를 인정하고 상담의 문턱을 넘도록 지자체는 세심하게 제안해야 할 것이다.


3. 실패의 존재 받아들이기

가족에서 이탈하는 과정과 취업에서 탈락하는 청년, 이직에 머뭇거리며 실패의 다다른 청년이 존재한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청년 삶 실태조사’와 2023년 청년재단의 ‘고립의 사회적 비용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립은 약 49만 명(4.7%), 은둔은 24만 명(2.4%)에 달한다. 이 숫자는 집 밖으로 향하는 벽의 높이를 절감하며 집 밖으로 향하지 못하는 청년을 포함하여 사회적 고립이 사회문제로 인식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더불어 정신질환 경험을 하는 청년들도 증가하고 있다. 


정신질환 당사자 또한 사회에서 단절된다. 고립된 이들은 다시 심리적 취약함으로 연결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공동체와의 고립은 이들을 밖으로 나서지 않게 하고 외출의 부재는 그들을 위한 공간 즉, 존재를 삭제시킨다. 이름을 잃어버린 이들은 니트족, 캥거루족으로 불리며 문제로 치부된다. 사회적 만남을 거부하는 집단에게 ‘취업’이라는 목표 자체가 소거된 지 오래다. ‘마음돌봄’사업은 단발적이고, 지원하는 데에 멈춰있다. 진료비를 지급하는 형태의 지원정책만으로는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청년의 고립, 국가와 사회의 지원방안 모색 정책 토론회 (출처: 청년재단 블로그)


취업하기 위해서는 취업을 결심할 조건이 필요하다. 고립·은둔, 정신질환 청년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구체화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이 그들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들이 지역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다. 정책은 법률적 지지에 가깝기에 자신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장소에 머무를 사람은 없다. 만약 취업을 준비한다면, 발붙이고 있는 이곳을 떠날 준비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실패한 자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다. 취업하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을 사려 깊게 듣고, 반영하는 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첫 직장을 그만두는 속도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일을 그만둔 이후 일을 찾지 않는 니트족도 늘고 있다. 노동의 경험은 마땅히 자신을 성장시키고 사회에 공헌하는 마음으로 이어져야 할 테지만, 노동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과도한 노동시간과 적은 임금은 미래를 상상하며 안정적으로 살아내도록 만들지 못한다. 청년들을 취업시킨다고 해서, 지역사회가 해야 할 역할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지탱해 내도록 만드는 일, 새로운 일로 전환하거나 스텝업이 되도록 지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다른 청년들과 연결되거나 자신의 직무에 깊이 있게 몰두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돈을 묶어서 3년 뒤에 더 많이 주겠다는 지원정책은 현실적이지 못하다. 3년이 되기 전에 청년들은 탈진되고 떠난다. 첫 직장을 원주에서 다닌 뒤 다른 도시로 이직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서울행을 꿈꾸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흔히 들어왔다. 일의 전환이 지역사회에서 일어나게끔 정책을 지원하여 청년 외부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 이직은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이라는 인식을 세워야 한다.


yay@flautas Madrid


청년문제, 공동으로 책임지기 


스페인에는 ‘야요 플라우타’라는 독특한 집회가 있다. 매주 월요일에 열리는 노년인구의 거리집회다. 이들은 정치권을 향해 청년들의 이해를 대변하고자 모인다. 청년실업이 개별 청년들의 문제가 아닌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인식하에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중략) 대신 ‘연결성’을 강조한다. 청년과 노년은 결국엔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하에, 청년이 잘돼야 연금도 잘 받는다는 다분히 실리적인 상생의 카드를 고른 셈이다. 청년의 월급 상실이 노년의 연금 붕괴로 이어지므로, 청년을 웃게 해야 본인도 웃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데서 나온 선택이다. 

 <한국이 소멸한다>(전영수, 비즈니스북스, 307p)


청년 문제는 다른 세대와 함께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물론 서로가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한국은 청년의 문제와 노년의 문제, 그 가운데 있는 중년의 문제가 분절된 지 오래다. 청년-중년-노년으로 향하는 생애주기 앞에 공동의 책임과 통감이 필요하다. 청년의 실패는 중년의 심리적 취약함과 공동체의 해체로, 노년의 복지 감소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한배를 탄 경제 공동체이자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이다. 


세대갈등을 부추기며, 극단화를 조장하는 정치에서 벗어나 전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관계 공동체를 상상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경제적 존재로서만 살아나가지 않는다. 가족으로 연결되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만나며, 일터의 현장에서 협업한다. 누군가의 존재로 내가 지탱되고 삶이 이어진다는 감각은 미처 보이지 않을 뿐 분명 존재한다. 중앙정부과 지자체의 구체적인 청년 정책과 더불어 관계한다는 감각이 더욱 일깨워지는 일상이 주어질 때 청년 세대는 다른 세대로부터 지지받고, 다음 생애주기를 준비할 수 있다. 이는 한 세대의 몫이 아닌 전 세대의 변화로 이어져야 하며, 우리가 경제적 존재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가능할 것이다.




박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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