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지역정당을 꿈꾼다
“둘 다 마음에 안 드는데 어쩌지?”
총선 때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거다. 파란당과 빨간당 말고 다른 선택지는 없을까? 원주만 해도 갑·을 지역구 모두 양당 후보만 출마해 싫어도 둘 중에서 골라야 했으니. 저쪽이 싫어서 이쪽을 찍을 수밖에 없는 투표를 언제까지 해야 할까. 이래서야 “그놈이 그놈”이란 생각에 누군가는 정치를 향한 냉소와 무관심이 커지고 아예 투표 자체를 단념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의도정치부터 이럴진대, 지역정치는 뭐 말할 것도 없다. 양당의 독과점으로 따지자면 더 심하다. 지난 지방선거만 봐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광역의원 98.9%, 기초의원 95.4%, 기초단체장 92.0%를 차지했다. 두 당이 쌓은 견고한 벽에 제3정당이 끼어들 틈은 없다. 한 정당이 수십 년 넘게 계속 정권을 잡거나 양당이 자기들끼리 권력을 주고받는 구조가 만성화해 있다.
적대적 공생 관계인 양당이 지역을 지배하다 보니 지역정치인은 굳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고자 다채로운 정책 경쟁을 펼칠 이유가 없다. 상대가 못하길 바라면서 반사이익을 노리는 게 더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방의원 공천은 일정 부분 지역구 국회의원이 좌우하는 게 공공연한 현실 아닌가. 지역을 위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국회의원 눈치를 보는 데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지역정치가 패거리 문화 속에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니,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역정치가 내 삶에 무슨 도움을 주는지 가뜩이나 체감도 안 되는데,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은 툭하면 막말・갑질이나 외유성 출장 논란에 휩싸이니. 이런 데다 왜 내 세금을 쏟아부어야 하지? 걸핏하면 ‘지방자치 무용론’이 나오는 게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폐해가 심해질수록 주민들은 지역정치에 더 무관심해지고, 무관심해질수록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 지역정치의 폐해는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여의도정치만큼이나 지역정치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리가 가장 관심이 없지만, 실은 우리 삶과 가장 밀접한 게 지역정치 아닌가. 집 앞 도로를 깔끔하게 정비하고, 버스 노선을 편리하게 개편하고, 공공체육시설을 충분히 짓는 게 검찰개혁보다는 내 삶에 당장 와닿기 마련이다. 일상과 정치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역정치가 제대로 굴러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정치가 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주민들이 몸소 느끼고, 그 효능감을 바탕으로 뭉쳐 지역정치부터 바꿔 나가야 결국 중앙정치까지 개혁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떻게 지역정치를 망가뜨리는 거대 양당 중심 정치 체제를 타파하고, 일상에서 주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참여하도록 이끌 수 있을까? 뻔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시금 강조할 수밖에 없다. 대의제의 한계를 주민들의 직접 참여로 돌파해야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쑥쑥 자라려면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지역을 만들지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일상과 정치가 맞닿는 것이다. “의제를 설정하고, 문제점을 파악하고, 공익적 대안을 모색하며, 여론을 수렴하거나 형성하고, 동료 시민들의 연대를 결성하며, 이를 통해 합의된 대안의 제도화와 시행을 만들어 내는 각각의 절차에 이해당사자가 직접 개입(<주민에게 허하라! 지역정당>, 56p)”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단관극장을 보존해 시민문화공간으로 활용할지, 아니면 극장을 부수고 주차장을 조성할지를 소수의 관료와 전문가끼리만 의논해선 곤란하지 않겠나. 다양한 의견을 가진 주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폭넓게 참여해 숙의하고 결정해야 마땅하다.
이런 활동을 일상적으로 해내려면, 결국 주민이 중심이 된 정치결사체가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지역정당’을 주목한다. 지역정당은 그 이름처럼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여론을 형성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선거에 참여하고자 주민들이 주축이 돼 활동하는 정당이다. 불편한 대중교통을 뜯어고치고자 원주시민 일부가 ‘대중교통 천국을 위한 원주시민당’을 창당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사람을 모으고 지방선거에 시의원 후보까지 내는 장면을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지역정당은 뭐가 다를까? 일단 주민 당원의 참여를 바탕으로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반영한 정당 운영 구조를 만들기가 비교적 수월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중앙당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주민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활동을 펼칠 가능성도 태생적으로 크다. 일상과 정치를 연결해 주민 삶과 밀접한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정치에 참여하는 진입장벽을 낮추고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정치적 역량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건 물론이다.
이렇듯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정당이 생기면 좋겠으나, 아쉽게도 한국에선 불가능하다. 정당 설립 요건이 까다로워서다. 정당법은 중앙당이 반드시 서울에 소재하고, 최소 5개 시도당을 차려 각각 1천 명 이상 당원을 확보해야(총 5천 명) 창당이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원주에서만 활동하는 정당을 만드는 건 불법인 셈이다. 박정희 군부 정권이 정당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옥죄고자 제정한 법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60년이 넘도록 바뀌지 않고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한국과 민주주의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 대부분이 지역정당 설립에 제한이 없고, 전국정당과 연합한 선거 참여도 자유롭게 허용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결국 정당법을 바꿔야 하는데, 국회에서 몇 차례 개정안을 논의한 적 있으나 양당 모두 적극적이지 않아 늘 흐지부지 끝났다. 그러는 사이, 직접 행동에 나선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직접행동영등포당, 과천시민정치당, 은평민들레당 등 제도권 바깥에서 지역정당을 창당해 선거 후보 등록을 시도하는 등 법적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지금도 곳곳에서 펼치는 중이다.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현행 정당법을 두고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는데, 작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아쉽게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으로 판단했으나,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 6명에 한 끗 차로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정당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데는 다수가 공감대를 형성한 셈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와 지역정치 활성화를 바라는 입장에서 지역정당을 하루빨리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22대 국회에선 정당법 개정이 이뤄지길 바란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제까지 지역정당의 필요성을 줄곧 역설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환상을 갖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희망 편’이 있다면 ‘절망 편’도 있기 마련. 지역 토호 세력의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당이 될 수도, 기존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를 가진 정당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최소한 지금과는 다른 지역정치를 이끌 하나의 대안이란 점은 분명하다. 지역정당이란 틀을 어떻게 채울지는 결국 주민들의 몫이다. 언제가 원주에서도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는 지역정당을 투표용지에서 볼 수 있길 기대한다. 느슨해진 지역정치판에 긴장감을 주리라 확신한다.
참고자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외 2인, 《주민에게 허하라! 지역정당》, 2023
윤현식, 《지역정당》, 2023
전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