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니저러니 해도 히브리대학 교환학생의 백미는 수업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수업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역사 수업, 예루살렘 다윗의성 발굴 고고학 수업, 유대교와 여성 인권 수업, 이슬람 종교 수업 총 6개를 들었는데 모두 한국에선 듣기 어려운, 상당히 희귀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다윗의성 발굴 고고학 수업이었다. 솔직히 고고학을 잘 몰랐고 발굴 기법 같은 어려운 내용은 거의 이해를 못해 고개만 끄덕였던 것 같다. 나는 함께 수업을 듣는 중국인과 헝가리인, 폴란드인 친구와 친해졌다. 늘 그렇듯이 미국인들은 상냥했지만 나와 친해질 의사는 없어보였다. 그 수업을 듣는 수강생 8명 중 우리를 제외한 네 명이 그러했다.
수강생 중에는 고고학 전공인 슈퍼 엘리트가 한 명 있어서 그가 수업을 주도했다. 우리는 퇴적층이 쌓인 순서와 발굴된 도자기 조각 등을 토대로 당시 시대를 추측하는 법을 배웠지만 나는 칠판에 그려진 지층 그림만 들여다보며 언제 끝나지, 하고 지루해 했다. 그러다가 가끔 교수님이 히브리대학 안에 있는 고고학과 작업실로 우리를 데려가 거기 보관된 도자기를 만져보고 용도를 추측하게 하곤 했다. 2~3주의 이론 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고고학 수업이 잡히자 새벽6시에 기숙사 앞으로 셔틀버스를 보낼 테니 타고 오라고 했다. 첫 고고학 현장 발굴이어서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발굴 현장은 이렇게 생겼다
현장의 첫 일과는 아침 커피 한 잔 때린 뒤 목장갑을 끼고 삽으로 땅을 파는 것이었다. 도자기 조각들이나 동물 뼈 같은 게 나오면 씻어서 바구니에 담았다. 이미 도자기조각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미 현장 담당자들은 조금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도 체험 삼아 해 보라는 것 같았다. 잠도 안 깬 상태에서 버스를 타고 다윗의성으로 들어가 땅을 헤집는 게 유쾌하진 않았지만 발굴된 유물에 표식을 붙이고 발굴 서류를 작성하는 일은 흥미로웠다. 우리는 발굴 현장을 그림으로 그리고 도자기와 동물 뼈가 묻혀있는 공간의 시대를 가늠하려 애썼다.
유물 발굴하는 모습
도자기 귀같이 생긴 부분을 씻어서 만져보았다
양이 엄청나게 많다
다윗의성은 예루살렘의 가장 오래된 유적지로, 약 기원전 1000년에 다윗 왕이 여부스족(에비스인)을 물리치고 그들이 살던 자리에 쌓은 성이라고 성서에 기록돼 있다. 1867년 고고학자 찰스 웨렌에 의해 처음 발견됐고 1978년 이갈 실로 히브리대 교수가 본격적으로 발굴에 나서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지금도 아직 다 발굴되지 못한 유적지가 남아있어 작업이 진행 중인데, 우리는 그 작업의 아주 미미한 부분을 맡은 것이다.
저 양동이 한가득 도자기조각이나 동물 뼈가 나온다
발굴이 다 끝나고 현장 뒤 막사에서 수업까지 듣고 나면 정오가 다 되었다. 끝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그날 다른 수업을 안 잡은 게 천만다행으로 여겨졌다. 기숙사에 도착하면 대강 점심을 해 먹고 바로 곯아떨어지곤 했다.
3학점인데 하루에 6시간짜리 현장학습 수업이라니. 한국 대학이었으면 폐강 위기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