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중동여행기7_너무 좋다 안식일!

추석이 매주 있네

by 소다
우리의 소소한 안식일 식사

"너 이번 샤밧(안식일) 저녁식사 때 뭐 먹을거야? 우리 방으로 모일래?"

친구 엘리가 이번에도 나를 안식일 식사에 초대해 주었다. 요리를 잘 하는 그는 곧잘 이스라엘 전통 요리인 에그엔헬이나 감자부침 같은 것을 안식일 식사로 내 주곤 했다. 엘리가 만든 브라우니는 늘 맛이 좋았다. 음식에 자신 없는 우리는 늘 엘리의 음식을 얻어먹으려고 그의 방 초인종을 누른 뒤 와인을 멋쩍게 내밀곤 했다.


이 세상에 유대인만큼 안식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을까.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를 안식일로 정하고 함께 식사할 사람들을 미리 모은다. 가족과 함께 산다면 가족과 보내는 게 맞지만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은 이스라엘에 가족이 없으므로 삼삼오오 모여 안식일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안식일의 시작은 사실상 목요일 즈음에 미리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재래시장인 '슉'(히브리어로 시장을 뜻함)에 가서 장을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안식일에 다함께 먹을 요리도 필요하거니와 일요일까지 식당을 열지 않아 꼭 집에서 먹을 식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안식일 동안엔 버스조차 거의 다니지 않아 예루살렘 도시 전체가 '얼음 땡' 놀이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사실 나중에 여행을 다닐 땐 요 안식일 제도 때문에 상당한 고충을 겪기도 했다.


안식일을 앞둔 슉은 생기가 넘쳤다. 싱싱한 연어를 내다파는 생선 가게나 치즈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치즈 가게, 고소한 빵 냄새가 나는 베이커리를 쏘다니다 보면 어느 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우리는 매주 안식일이 되기 전 장바구니를 들고 슉으로 향했고 그주에 먹을 빵과 야채 등을 가득 담았다. 기숙사 앞에도 마트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시장이 더 싸고 맛이 좋았다. 마트에선 못 사는, 갓 구운 빵도 많았다. 대신 그런 빵은 쉽게 상하기도 해 구매 후 며칠 안에 먹어야 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슉

슉에서 장 본 것으로 무슨 음식을 할지 요리조리 고만하다 보면 어느 새 토요일이 다가왔다. 나는 할 줄 아는 요리가 별로 없어 기껏해야 브라우니 같은 것을 구워서 가져갔지만 그것은 극도로 맛이 없고 퍼석거렸다. 한국에서 쭉 나고 자란 나로서는 외국 재료로 남에게 먹일 만한 뭔가를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웠다. 혼자서 대강 때우는 용도의 파스타나 샌드위치는 만들어도 그걸 남에게 먹이기는 창피했다. 하지만 도전했다가 실패한 것을 남에게 먹이는 게 더 창피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윌리엄은 낄낄거리면서 이 브라우니는 너무 퍼석거려서 잘 때 침대로 써도 되겠다고 놀려댔다. 자기도 요리 못해서 매번 와인만 가져오는 주제에!


토요일 저녁이 되면 엘리의 방에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 엘리가 만든 맛있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식탁을 정돈하고, 함께 모여 음식을 먹었다. 한 주 간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갔다. 디저트로 우리가 가져 온 와인이나 케이크까지 다 먹고 나면 설거지는 나와 반이 주로 했다. 그러고도 차를 끓여서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대화를 했다.

한 주를 끝내고 그 다음주를 시작하기 전, '완전히 멈추고 안식하는' 날이었다.


각 가정마다 조금씩 다르긴 해도 안식일을 쇠는 덴 일종의 순서가 있다. 엄격한 제례식을 하는 곳은 식사 전에 랍비 역할을 맡은 이의 주도로 손을 씻는 예식을 하고 먼 옛날 이집트를 떠나던 히브리 노예를 형상화해 빵을 던지는 퍼포먼스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간단한 기도로 대체하는 가정도 많다. 식사를 할 땐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한 주의 기억나는 일과 한 주 동안 새롭게 경험한 신의 은총을 나눈다. 이 과정 역시 친해지고 나면 자유로운 근황 대화로 바뀐다.


이스라엘에 짧게 머무는 동안 여러 사람들과 안식일 식사를 했다. 한국 교회를 방문해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어보기도 했고 유대인 룸메이트 초대로 엄숙한 제례식 식사를 하기도 했다. 정통 유대인들의 가정에 일일 홈스테이로 방문했을 땐 장장 3시간이 걸리는 안식일 식사를 하기도 했다. 스타터-메인-디저트 코스요리를 먹은 뒤 다같이 찬양을 하고 또 다시 메인-디저트요리를 먹는 식이었다. 끝나고 나면 거의 해가 질 즈음이라 밖에 나가 어깨동무를 하고 유대교 찬양을 또 불렀다. 이런 안식일 식사는 새롭고 신선했고 입도 즐거웠지만 역시 다 겪고 나면 편한 사람들과 나누는 안식일 식사가 가장 좋았다.


우리가 안식일에 제대로 쉴 수 있었던 건 그날 우리가 속한 사회 전체가 쉰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으로 따지면 추석 당일처럼, 모든 국민들이 '인간적으로 오늘 쉬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맙시다' 같은 정서를 매주 공유하는 것 같았다. 식당과 상점이 다 닫아도, 트램이 다니지 않아도, A/S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도 그게 이상하지 않다. 그날은 그냥 다 쉬는 날인 것이다.

물론 금요일이 쉬는 날인 이슬람교도의 경우 토요일이 평일이기 때문에 아랍 식당을 열긴 한다. 하지만 히브리대 기숙사의 경우 안식일에 갈 만한 아랍 식당이 주변에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선택지가 되지 못했다.


한국에 와서도 자체적으로 토요일을 안식일 제도로 운용해 보려 했지만 잘 되지는 않았다. 일단 토요일에도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함께 사는 친구들도 각자 약속이나 개인 할 일 등을 마치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귀가했기 때문에 밤 시간을 보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안식일이 시간만 낸다고 되는 게 아니라 함께 모일 사람이 필요하며 그들 모두가 기꺼이 저녁 시간을 내야만, 그만큼 또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유지할 수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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